심대평 의원 “충청도, 새 그릇이 필요하다”
심대평 의원 “충청도, 새 그릇이 필요하다”
  • 김범수 발행인
  • 승인 2009.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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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선진당 탈당한 심대평 무소속 의원
   
 
  ▲ 자유선진당 탈당한 심대평 무소속 의원  
 


“말을 많이 하고 싶은 생각이 줄었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생각하는 게 훨씬 유익한 일이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일입니다. 지난 얘기를 자꾸 읊으면 노인네 됩니다. 이제 이 정도로 접어두는 것이 내 스타일에 맞습니다.”

심대평 의원은 만나자마자 말을 줄이겠다는 의사부터 표명했다. 탈당 이후 몇몇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은 그는 그동안 ‘자유선진당을 박차고 나온 것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자기 확신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자기 행동에 대한 확신이 안서면 후회하게 됩니다. 바람직한 선택이었나 하는 질문에 제가 올바른 선택을 했고, 그렇게 한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가치관과 맞다고 생각합니다.”

심대평 의원은 2006년 국민중심당을 창당했고, 2008년 2월 이회창 총재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다. 이회창 총재가 심대평 총리카드에 반대하면서 지난 8월 말 탈당을 감행했다.

-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당하셨는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후회보다는 미안한 부분이 있죠. 지금도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사전에 설명 못했습니다. ‘새로운 정치의 샘물이 되겠다, 충청권의 정치세력을 좀 더 전국단위로 키워 충청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겠다’는 약속을 보고 저를 지지해준 충청인들께도 죄송하지요.”

- 탈당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아쉬워합니다. 자유선진당에 있으면서 잘 견뎌 총리하는 거 한 번 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분도 많았습니다. 총리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과분한 생각을 했고, 겸손치 못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더 훌륭한 분에게 임무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두 세 번 물망에 오르자 이번에 총리가 되어서 지역 현안을 해결해주고, 푸대접받고 있는 많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 분들이 아쉬워하고 있죠. 나의 탈당이 내년 선거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 정치세력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서 힘을 받게 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1인 중심 당 체제에 실망

심대평 의원 탈당 이후 여러 매체에서 충청권 향방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는 심 의원의 탈당이 자유선진당에 미치는 파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충청권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심 의원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심 의원은 그런 결과에 대해 ‘탈탕 사태까지 오도록 한 이회창 총재의 포용력에 대해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 이회창 총재가 심 의원의 총리 카드를 세 번이나 반대했는데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저도 이해 못하겠어요. 자유선진당은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당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권에 동참하는 게 옳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서거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통합과 화해가 시대적 소명이고 요청이다. 국정운영의 틀을 바꾸겠다’고 한 뒤 당이 다른 심대평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조건을 내세울 게 아니라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한 게 없으니 조건을 달 게 아니라 ‘미흡하지만 통합과 화해의 카드로 쓴다면 보내겠다’고 해야지요.”

심대평 의원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지만 행정적 경험과 경륜으로 이 대통령의 중도 실용주의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고 전했다.

“저는 국민중심당 때 창조적 실용주의로 이념정치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가졌습니다.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 정책과 서민중심 정책은 제가 국민 국민중심당 때 일관되게 추구했던 ‘따뜻한 보수’와 일치합니다. 당에서 ‘심대평이 총리로 가면 자유선진당이 야당이냐 여당이냐’는 말이 나왔다는데 총리의 정책적인 부분은 야당 역할로 감시하고 지역을 도울 때는 여당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무기력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는 자유선진당에 새로운 힘 불어넣을 수 있는데, 왜 안 보내는지 이해가 안가는 일이지요. 지난 4월 경주 보궐선거에서 자유선진당의 득표율이 3%였습니다. 전국지지도는 2%, 충청도 지지도는 10%가 안 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이 잘해보겠다고 하는데 국가원로로서 ‘심대평이 안 되면 나라도 가서 도우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건이 안 맞아서 못 보낸다, 없는 일로 해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심대평 의원은 자신의 탈당은 결국 자유선진당에 “집 무너진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충청도를 두 개로 쪼개느냐는 걱정을 하는데, 집 무너지니까 새로 짓자고 나온 사람입니다. 무너질 거 뻔히 아는 사람이 다시 들어가서 집을 떠받치고 있을 수는 없지요. 무너진 집 사람들을 다시 담아줄 수 있는 새 그릇이 필요합니다. 1인 중심 정당이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안 됩니다. 총재라는 당직을 갖고 있는 건 자유선진당 밖에 없습니다. 과거 한나라당도 이회창 총재일 때만 총재 직책이 있었습니다. (이회창 총재가) 많이 변했다고 해서 변한 줄 알았습니다.”

- 새 집을 지으면 무너질 집의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생각 없었으면 이런 선택 안 했지요. 안에 있는 사람은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충청도 민심에 관한 한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만이 아닙니다.”

- 충청권에 대한 영향력은 언제부터 발휘하실 겁니까.

“내년 선거에서는 확실한 활동을 하게 될 겁니다. 당을 만들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든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 탈당 이후 ‘새로운 한국정치의 틀을 바꿔나가는데 앞장서겠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취지의 정치 강연을 하셨는데 새로운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정치인들만 정치하는 것으로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국민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이런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이상을 추구해서 행정이 뒷받침해야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행정이 우위에 올라가 있지도 못한 그런 나라가 되어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행정이 같이 가야 합니다.”

- 관선 충남도지사를 거쳐 세 차례 민선 충남도지사를 역임하시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얻었는데 행정을 오래한 정치가로서 정치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국회의원 개개인은 다 하나의 헌법기관입니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정책을 창안해 내거나, 법을 만들거나, 국회에서 결정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의 생각과 관계없이 정당 대표나 지휘부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당론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당에 공천권이 있으니까요. 당론에 따라 집단적으로 결집된 행동을 해야 국민들이 ‘저 당이 뭘 하는구나’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개개인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가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묘한 나라입니다. 이런 정치구조를 갖고는 정치개혁이 힘듭니다. 국회의원이 당론에 따라 길거리에 촛불 들고 나가고, 전기톱 들고 부수라면 부수는 건 정치가 아닙니다. 그런 정치를 깨보고 싶어 국민중심당을 만들었고 분권형 정당을 논했는데 너무 빨랐습니다.”

 

 

 

‘맹주’ 아닌 검증받은 리더 될 것

- 요즘 세종시 문제 때문인지 충청권이 영남이나 호남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충청권의 맹주’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맹주’ 같은 개인중심주의적 정치는 끝났습니다. 제가 맹주가 될 수도 없고 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사랑과 기대를 받는 신뢰의 정치인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십수년간 3선 도지사로 검증받은 신뢰의 행정인입니다. 전문성과 일관된 행정정책 추진을 보고 저에게 사랑과 기대를 주셨다고 봅니다. 과거 ‘3김 시대’와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심대평 의원은 국민중심당이 전국 정당이 아닌 충청지역 정당으로 평가받은 것에 대해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당만 빼고 다른 모든 지역에서 도당 창당을 했습니다. 충분한 인재 영입을 못해서 다른 지역에서 한 명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지역을 기반으로 80%, 90%의 지지를 받아서 전국 정당이 되어 가는데 우리는 충청도에서 40%도 얻기 힘듭니다. 충청인들은 선비정신과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조금씩 나눠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깊습니다. 그동안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이 다른 지역에서 단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했습니다. 충청지역의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그렇지 전국을 생각하지 않는 정당은 아닙니다.”

심대평 의원은 충남도지사 시절 신행정수도 정책이 위헌 판결을 받자 국토균형발전을 주장하여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세종시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시작된 겁니다. 박 대통령은 안보적 차원에서 서울 인구를 500만으로 한정하려고 했습니다. 1971년에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임시행정수도 계획을 차용한 거죠.”

세종시 논란은 수도권 과밀화로부터 출발된 것이지만 두 가지 특별한 당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은 서울로 가야 출세한다는 의미입니다. 서울이 지금처럼 모든 게 집중되어 있으면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지역에서 인간다운 삶과 미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대한민국 경쟁력이 살아납니다. 세계의 경쟁력은 도시의 경쟁력입니다. 서울 이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1996년부터 투자에 의한 생산유발효과가 서울보다 지방이 더 높아졌습니다. ‘수도권 집중요인을 풀자, 행정과 정치를 분리하자’ 이것이 세종시의 기본 논리입니다. 규제에서 밀려난 것만 받지 말고 지방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 자신감을 갖고 지방경쟁력 강화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세종시 정치 쟁점화 반대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세종시 원안 추진 반대 입장을 밝히자 심 의원이 “세종시 문제와 총리 인준은 별개, 세종시 문제가 정치쟁점화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혀 충청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신행정수도가 위헌판결을 받은 뒤 3당이 머리 맞대고 의논하여 17대 국회에서 선택하고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세종시입니다. 정치적 결정을 했으면 정책적 검토를 해야 합니다. 정책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안을 총리지명자가 원안대로 추진하지 못한다고 문제 제기를 한 건데 정치권이 모두 달려들어 정치 쟁점화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정치적 문제는 끝난 사항이고, 정책적 선택을 통해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단계에서 행정 책임을 맡을 분이 한 얘기입니다. 충분한 검토가 된 연후에 확실한 추진안을 갖고 행정적으로 접근해가야 합니다.”

정치권이 달려들어서 국론을 분열시킬 게 아니라 다시 행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 누구도 장담 못 합니다. 행정은 충분히 논의하여 결론을 내면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입니다. 말만하다가 아무 준비 없이 결정하고 터트리는 건 행정이 아닙니다.”

심 의원은 정운찬 후보자에 대해 “경제가 어려울 때 경제학자 출신이어서 좋다”고 평가하면서 “서울대 총장도 하고 잠재적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됐던 사람이니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했다.

 

   
 
     
 

- 심 의원님에게 또다시 기회가 올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자질로 봐서 제가 총리감으로 적격인가 스스로 반문해보니 반성할 일 뿐이었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아요.”

스스로를 ‘정치 초년병’이라고 말하는 심 의원은 정치 변혁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저는 YS가 대통령이 된 뒤 민주투사가 없어지고 길거리 정치 없어질 걸로 생각했습니다. 민주화의 상징인 YS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세력이 나라가 잘되는 쪽으로 힘을 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DJ 노무현 정권까지 투쟁의 정치가 계속되었습니다. 길거리 정치로 국민표를 얻겠다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극우나 극좌로 갈 때 중도세력들이 중재해서 함께 통합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촛불 시위하고 머리띠 두르고 싸워서 관심 끌려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행태입니다.”

- 지지부진한 정치인에 비해 국민들은 좀 달라지지 않았나요.

“그런데 선거를 해보면 달라요. ‘선거는 바람’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지난 총선 때 안 그럴 거 같더니 한나라당 일색이었잖아요. 저 사람보다 이 사람 나아도 당선이 안 돼요. 충청도 의석을 자유선진당이 차지한 것도 그런 거죠. 하지만 국민들이 바람 부는 대로 투표하는 비율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아마 다음 선거에서는 개인의 평가가 굉장히 커질 겁니다. 그와 함께 정당에 대한 선택 기준도 많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합니다. 투쟁력으로 정당을 선택하는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 요즘을 ‘스타 정치인이 없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혹시 국민들에게 각인될 복안을 갖고 계신지요.

“저는 스타 탄생의 주인공이 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너무 오래 행정을 했습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정치 초년병이기 때문에 소박한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술수라든가 정치적 식견이 훨씬 더 쌓인 노련한 정치인이라면 지금처럼 말하는 걸 우습게 생각할 겁니다.”

실제로 심대평 의원은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이고 ‘정치인스럽다’를 기분 나쁜 말로 꼽는 시대에 그는 시종 진지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행정의 달인 심대평 의원이 ‘건전한 정치의 달인’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

인터뷰/ 김범수 발행인

글/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 이승재 기자 l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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