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철 前김일성대교수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은 순진한 발상”
조명철 前김일성대교수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은 순진한 발상”
  • 미래한국
  • 승인 2009.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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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장·전 김일성대 교수
▲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장·전 김일성대 교수

추석명절 즈음이 되면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배가 된다. 남한에 온 지 15년이 되도록 아직도 ‘이제는 잊자, 잊자’라며 날마다 다짐한다는 탈북민 출신의 조명철 박사(50·북한경제학). 그러한 점에서 그는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여느 이산가족과 다름없어 보였다.

1994년 북한 김일성종합대 교수로서 ‘의거 귀순’을 단행한 조 박사는 누구보다도 북한 체제와 그 밑바닥의 생리까지 생생하게 체험한 사람이다. 수백만의 북한 동포들을 여전히 아사지경에 몰아넣고 있는 ‘북한경제’란 도대체 무엇인지, 파경위기에 놓인 개성공단 사업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또 북한정권이 드러내고 있는 강경책과 유화책의 양면성과 그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대북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의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 등에 대해 북한경제문제 전문가인 조 박사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누구나 남북통일을 주장하지만 사실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정권보다는 남한 내부의 현실에 있다.”

조명철 박사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 내부가 먼저 변화해야 북한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한 내부가 먼저 변화하고 그 다음 북한이 변화하는 순차적 전략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이것을 거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론이 분열되고 부패한 자유민주국가는 똘똘 뭉친 수령독재국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남북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개성공단사업이 사실상 중단 상태입니다. 억류됐던 현대산업 직원이 얼마 전 가까스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이로 인해 개성공단 사업 자체가 큰 영향을 받았고 관련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불거졌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를 과연 어떤 각도에서 풀어가야 할까요?

“개성공단사업은 남한이 대북한 경제행위를 한다는 의미에서 ‘경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꼬여만 가는 개성공단 문제는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즉 ‘왜 경협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 되거든요. 당초 남한이 개성공단이라는 경협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순수한 남북한 협력이 이루질 때 남북의 미래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남북은 결국 통일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통일의 기회를 단계적으로 만들기 위해 과도적 과정으로서 개성공단 사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당위론적 경협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로 북한의 변화론에 기초한 경협론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폐쇄된 국가이고 고도의 정보정치, 강압정치, 폭압정치를 일삼는 나라입니다. 만약 북한을 이대로 방치해두면 외부에서 북한 내부로 진입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껏해야 삐라를 뿌리거나 중국으로 나온 탈북민을 데려오는 일 밖에 없어요. 그것으로 북한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여러 가지의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개성공단이 바로 그런 기회의 하나로서 구멍을 뚫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개성공단사업에서 어떤 기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최근 중단되었던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었다고 합니다만,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는 것 자체가 북한사람들에게는 어쨌거나 ‘정신적 충격’을 가져다주리라 생각합니다. 남한사람들의 번들거리는 얼굴, 옷차림새, 머리 모양, 화장한 모습, 이 모든 문화적 현상을 만나는 것 자체가 충격일 것입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실물을 목격하고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이미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남북의 사람들이 어쨌든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적 교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문화 교류나 방송교류 등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직접 자주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사람들은 문화적 충격, 이념적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대통령에 대해 자기 친구나 다름없이 어떤 얘기도 스스럼없이 해대는 모습 자체가 그들에게는 충격일 것입니다. 수령숭배를 일삼는 독재국가의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들여온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보는 것도 충격일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론적 차원에서 이러한 만남과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 인적 교류, 경제 협력 등을 초기에 좀 더 확대하자는 생각입니다. 북한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가치가 있고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단순히 남한기업이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남한 문화를 제대로 만나는 현장으로서 북한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 개성공단 사업은 통일의 기회를 만드는 수단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수단을 쓰자면 우리가 감수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북한당국에 일정한 이익을 보장해주어야 이런 일들이 용인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북한에 이익을 주어서라도 체제를 뿌리부터 흔드는 변화의 구멍을 만들기 위해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경협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는 북한주민의 어려움인데, 지금 당장 죽어가는 취약계층의 북한주민들을 살리고 보자는 생각에서 경협을 시작했지요. 하지만 이 경협을 통해 남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과정으로 유도하고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처럼 변화론적 측면에서 경협이라는 수단을 쓰자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출발한 것이 개성공단 사업입니다.”

- 개성공단 사업이 처음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보십니까?

“교류와 협력을 북한의 평화적인 체제변화의 수단으로 삼아 개성공단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협력이 협력을 위한 협력이 되고 말았어요. 변화의 수단으로서 협력이 되어야 하는데, 협력 자체에만 몰두한 것이지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수해방지, 남북철도 등 남북당국 간의 갖가지 경협 합의는 이루어냈지만, 합의를 따온 순간부터 합의를 완성하는 일에만 몰두한 것이지요. 공직자나 기업인이나 저마다 열심히 일을 하기는 했는데, 북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비효율적 사업을 조정하고 북한주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등 본질적인 일들은 방치된 것입니다. 그런 일을 맡을 담당자도 없고 시스템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협력과 교류를 한다며 남한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 것이지요. 평화가 별 것 아니고 변화가 별 것 아니란 생각을 한 것이지요. 오히려 북한체제의 본질과 그 본질로부터 출발하는 미래의 부정적 상황을 준비하지 않은 겁니다. 개성공단이 그 전형적 케이스입니다. 금강산관광도 마찬가지고요. 북한 정권은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는 유일독재 체제요, 지도자의 감정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정권인데,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잘못이지요.”

- 현 시점에서 북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이번 현대아산 직원 억류사건은 북한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남한이 상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번 보여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북한의 변화, 붕괴를 위해 우리는 어떤 수단도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진보정권은 협력수단만 집중하고 보수정권은 심리전 수단에만 집중하는데, 이것은 결국 절반의 수단만 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든 모든 수단을 강구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협력수단이든 심리전 수단이든 100%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오면 상대하고 만약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 단호히 거부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적시에 다양한 칼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 개성공단 사업을 흔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북핵’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이 핵을 통해 얻고자 하는 변치 않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체제수호지요. 이것은 그들의 가장 큰 가치입니다. 자기들이 시작한 체제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욕망이지요. 그러나 현존하는 상황은 북한체제를 끝까지 끌어갈 수단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핵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핵개발의 첫 출발점이 미북대립이나 남북대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북한은 냉전시절부터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독립과 자주를 지향해 왔어요. 주체사상, 자주, 자립 등 이념과 통치방법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체코나 폴란드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련으로부터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적게 받게 됐지요. 지원이 적다는 말은 국가의 위험도가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결국 독립 지향의 대가로 경제적 불이익과 국제관계의 한계를 초래한 것이지요.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북한은 핵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어떤 자본주의 국가나 어떤 사회주의 국가와도 대립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죠.”

- 그렇다면 이런 폐쇄성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북한 정권은 마치 ‘여론조사는 믿을 게 없어, 반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당선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선거 출마자와 같습니다. 지더라도 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끝까지 해볼 거라는 생각이지요.”

-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그랜드 바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목표는 체제수호에 있다는 점을 누누이 말했지만,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핵이라는 수단을 쓰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해 ‘당신을 위협하는 세력은 더 이상 없다’라고 해주면 과연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부시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침공은 없다’ 등의 약속을 했어요. 그러나 이 문제는 한 국가의 체제와 운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정권을 신뢰할 수 없고 몇 년 뒤에는 정권이 바뀌는 국가’라는 불신의 벽을 넘기 어렵습니다.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구상은 불신의 악순환을 넘어 이 제안이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해요.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천진난민한 생각입니다.”

- 만약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려고 한다면 핵에 대해 강경한 군부세력을 숙청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뜻이 있을까요?

“그것은 정말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북한이 유일 독재국가가 아니라는 오해를 가져와요. 북한은 김정일 독재체제이고 김정일을 유일 수령으로 받드는 독재국가인데, 또 다른 통치 집단으로 군부세력이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체제수호에 집착하는 사람은 김정일입니다. 누구도 그 집착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군부세력은 김정일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 많은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을 방치하고 있는 ‘북한경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북한경제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목표에 이르기까지 시간대별 과정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 과정을 무시한 대안이란 있을 수 없어요. 이 과도기적 과정을 통해 체제가 변화하고 그 결과로 경제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게 많아야 나오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경제 원리지요.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부를 창조할 수 있는 먹이를 줄 수가 없어요. 먹이를 줄 수 있는 힘, 자원, 자본, 기술이 모두 외부에 있어요. 하지만 북한의 통치이념, 통치방식, 핵, 미사일 때문에 외부에서 먹이를 들여보낼 방법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정권은 체제유지비용을 최소화하는 정치, 군사, 외교, 안보의 전술을 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외부로부터 먹이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북한 경제의 기막힌 실상입니다.”

- 남한으로 귀순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잘 적응해온 것 같습니까?

“귀순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습니다. 귀순자니 탈북민이니 새터민이니 하는데, 맘에 와 닿는 말이 없어요. 그저 동포라는 말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여서 한국 사회에 왔어도 평범한 시민사회 세계와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지요. 매일 집, 연구소, 대학, 학계모임 등에만 다람쥐바퀴 돌 듯 활동을 하다 보니 남들과 부딪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현실을 모를 수 밖에요. 이것저것 충돌할 일이 없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마치 적응을 잘 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다른 탈북민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저 역시 안고 사는 겁니다. 고향 떠난 사람으로서 입장은 그들과 똑같습니다. 다만 인복(人福)이 있어서 그런지, 직장에서 좋은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지요.”

- 고향은 어디십니까?

“평양시 만경대 봉수동입니다. 지금 김일성 동상과 봉수교회가 세워진 동네입니다. 거기서 태어나 자랐지요. 불과 15년 전 일이니까 지금도 가족과 친구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러나 이제는 그 생각들을 애써 지우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 생각들을 자제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북한 현실을 생각하면 비참해 가슴이 메어집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금 핍박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더욱 그렇지요.”

조 박사와 한 시간이 넘게 대담을 나누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의문들이 남겨져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 경제와 북한 동포는 김정일 정권이 주체적 독재체제를 유지시켜가는 한, 대안 없이 악순환에만 빠져드는 희생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비극적 미래가 떠오른다. 명절을 앞둔 탈북민들과 실향민들과 또 우리 모두의 아픔이 더 깊어만 가는 가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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