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탈북청소년 교육자,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인터뷰-탈북청소년 교육자,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 미래한국
  • 승인 2009.11.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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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탈북청소년 가르치지 않으면 장차 엄청난 사회적 비용 감수할 것”
▲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최근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극심했던 북한 식량난의 여파로 당시 태어난 북한 청소년들의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져 미국 기준으로 볼 때 징집대상자 10명 중 2-3명은 군대조차 가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10대와 20대의 북한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30%가 영양실조의 결과로 이른바 저능아 현상을 겪고 있다니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표적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이러한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폐쇄된 북한의 현실과 탈북과정의 고통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외상을 입은 탈북청소년들은 ‘새 땅’ 한국에서 과연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설립 초기부터 동분서주하며 탈북학생들을 위해 헌신해온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40)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여명학교는 북한을 돕는 몇몇 NGO와 교회가 뜻을 모아 설립한 대표적 탈북청소년 학교다.

2000년대 들어 탈북민들의 국내입국이 급증하면서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교육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현실과 현행 교육체제의 한계를 알게 된 교회들이 이에 발 벗고 나섰다. 2003년 1월 높은뜻숭의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우리들교회, 남서울은혜교회, 남포교회 교회 등을 중심으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설립위원회가 결성됐고 같은 해 9월 ‘여명학교’가 정식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남산동에 교사(校舍)를 마련해 이전한 지 1년 남짓 된 지금 여명학교는 12명의 교사들이 65명의 탈북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있다. 조명숙 교감에게 탈북청소년들의 사회 적응과 교육과정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 어떤 학생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있습니까?

“여명학교는 중등과정과 고등과정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현재 학생들의 중심 연령층은 15세에서 25세 사이입니다만 그 이상 되는 학생도 몇 명 있어요. 남한학생들에 비해 나이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은 그들이 제3국에서 탈북생활을 하면서 학업 적령기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 이들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일반 한국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에 비해 어려움이라면 몇 배가 되겠지요. 우선 탈북학생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어려움이 가장 큽니다. 이곳 학생들은 남한사회에서 배워야 할 모든 교육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새로 배워야 합니다. 성장기에 북한에서는 배운 게 없거든요. 조금 커서는 탈북기간을 중국에서 보냈으니 사실상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채 청소년기를 보낸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많은 학생들이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가지고 있어요. 저마다 독특한 심리적, 성격적 상처를 안고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키가 자라지 못했고 두뇌의 미발달로 지능이 떨어지는 저능아 현상까지 보이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그야말로 역사적 비극의 산물이지요. 이들을 지금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장차 엄청난 사회적 고통과 비용을 우리 모두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새로운 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뛰어나기를 기대합니다만, 이들은 불행하게도 부모세대보다 퇴보된 상태이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각별한 사명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좌절하고 실망하는 그들을 격려하며 끌어가야 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뜨거운 사명감과 남다른 헌신이 아니고는 학생들을 껴안을 수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 교사들은 통일시대의 교육적 대안을 준비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나라 교육 분야의 새로운 노하우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통일시대를 위한 교육의 제도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비 증가는 불가피한 일인데 이것이 학교경영에 있어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탈북청소년 교육은 민간단체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란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 탈북학생들이 남한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모두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자유’를 가장 힘들어합니다. 어떻게 자유를 누려야 하는가를 모르고 그것을 훈련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자유,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매우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체제의 현실을 봅니다. 늘 당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죠. 이것이 남과 북의 갭(gap)인데, 이 차이를 메워주는 노력이 정부와 학교가 협력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원에서 3개월 교육하는 것으로는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학생들에게서 흔히 발견하는 예입니다만, 그 갭을 극복하지 못하고 배움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국가적으로 이들의 특수상황을 고려한 ‘탈북자교육을 위한 특별법’이 입법되어야 하고 하루 속히 공교육 속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져야 합니다.”

-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장차 통일시대에 북한을 이끌어갈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실제로 탈북청소년들을 접하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읽습니까?

“북한지역이 회복될 때 누가 그 지역을 이끌어갈 것인가, 북한 사람입니까? 아니에요, 그들은 통일시대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남한 사람입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그들은 북한 땅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에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과연 누구인가 라고 할 때, 바로 남한에서 통일시대 교육을 받은 탈북민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탈북청소년들이 잘 자라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이들이야말로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이들에게 물어보았어요. ‘통일 후에 북한에서 살고픈 학생이 있느냐’고 하니까 거의 대부분 손을 듭니다. 통일시대의 대안이 바로 우리 탈북학생들입니다.”

- 교육 내용에서 볼 때 여명학교가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학교에서는 각 과목의 기초지식을 함양하는 일에 집중합니다만, 우리 학교는 남한에서 적응하기 위한 사회화 교육과 예의범절을 위한 인성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가 보호자의 기능까지 감당해야 해요. 즉 보호자인 부모의 역할과 기능을 떠맡은 겁니다. 부모 자신이 남한에서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과시간만 아니라 방과 후 지도도 교사들이 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한 생활에 필요한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병이 나면 일일이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도록 학교가 도와주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여명학교는 정부, 학교, 가정이 각각 나누어 맡아야 할 일을 혼자서 맡고 있는 셈이지요.”

- 학생들을 만나보니 진지하고 예절이 바르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일반 학교 이상으로 엄격하게 가르칩니다. 오전 8시 반까지 등교해서 4시나 5시에 하교하고 45분 수업에 10분 휴식을 엄격하게 지키지요. 65명 중에 지각생은 평균 4명 이하입니다. 아주 양호합니다. 이렇게 강하게 훈련해야 일반 학교 분위기를 따를 수 있으니까요. 간혹 대학에 입학하지만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좀더 강하게 훈련받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가운데는 아직도 탈북민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조그만 문제만 있어도 학교에 나오지 않아요. 이것은 중국에서 생활하던 습관 때문에 그런 것 일텐데 그래서 엄격한 훈련을 강조합니다.”

- 교회가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

“신앙이 없으면 아무래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이 적게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곳에서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절실한 문제입니다. 하마터면 ‘막 살게 되기’가 쉽거든요. 신앙을 가지면 진실하고 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특히 성경공부를 통해 그들 마음에 새로운 가치를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한국교회가 탈북민을 돕는 데 어떤 자세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까?

“개인적으로 바라는 면이 있다면 이제는 좀 더 전략적으로 북한선교나 지원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흔히 북한에 대해 무조건 베푸는 사역을 해왔는데 자존심이 강한 북한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 ‘불쌍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준다’는 자존감을 부여해야 해요. 독일의 한 재단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남한 사람들이 독일 통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오는데 대개 통일비용이 얼마나 들었느냐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나 독일 통일은 경제 기반 통일이 아니라 가치 기반 통일이었습니다. 독일통일 후 큰 혼란이 없었던 것도 통일의 가치 기반을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런 가치적 유산을 통일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여명학교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가치교육을 중시합니다.”

-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북한체제와 그 지도자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어떻게 해서 우리 학생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가에 대한 의분입니다. 21살의 나이에도 141센티의 신장을 가져야 하는 이런 절망적 상황은 결국 지도자를 잘못 둔 죄로 그 고통을 힘없는 백성이 고스란히 뒤집어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도 북한을 머저리라고 욕하며 북한 지도자를 비난합니다만, 어느 순간에는 자기도 모르게 TV에 나오는 김정일을 보며 눈물을 짓는 감정의 혼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로서는 인권의 피해자들인 학생들이 편안하게 자유라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여 스스로 소화하도록 기다리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 여명학교의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정식 학교인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학생들도 안심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청소년을 위한 교육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 시대에 교육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들이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탈북청소년 학교는 ‘전원형’보다는 ‘도시형’이 좋다는 결론도 중요한 경험의 하나입니다. 남한사회와의 일상적 소통이 큰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조명숙 교감과의 인터뷰가 끝날 즈음 갑자기 교무실에 반가움의 환호가 일어났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모 대학 사회체육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한 남학생이 음료수 꾸러미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교사들의 포옹과 훈훈한 인사가 잇따랐다. 장차 이 학교의 체육교사 감이라고 조 교감은 기자에게 귀띔을 해준다. 따뜻한 정과 인간미가 넘쳐나는 교무실에서 교사들의 헌신된 마음과 함께 여명학교만의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조 교감은 여명학교 설립 이전부터 남편인 난민지원센터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와 함께 외국인노동자 지원활동 및 탈북민 지원활동을 펼쳐 왔다. 국내에 입국한 성인 탈북민들의 진로교육을 위한 야간학교인 ‘자유터학교’를 칠년 째 운영하고 있다. 여명학교는 그 경험들이 집약된 또 다른 일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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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8-07-17 10:59:12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선생님 이분같으면 그래도 존경스러운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