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범 초대 국회 대변인 "대변인 전성시대"
허용범 초대 국회 대변인 "대변인 전성시대"
  • 미래한국
  • 승인 2009.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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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허용범 초대 국회 대변인
   
 
  ▲ 허용범 국회 대변인  
 


지난 8월 말 이뤄진 청와대 인사 개편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홍보기능의 강화였다. 사상 최초로 남녀 공동대변인이 등장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전적인 신임을 받으며 대통령을 가장 많이 독대했던 이동관 대변인이 홍보수석으로 승격됐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5월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대변인과 부대변인의 역할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요즘 통일부는 과거처럼 마냥 수동적이고 주눅이 들어 있는 부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대변인이 나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는 대변인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타 부처들도 마찬가지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2월 국회사무처법 개정을 통해 국회 대변인을 신설했다. 국회의 대국민 홍보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가히 ‘대변인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미래한국>은 허용범 초대 국회 대변인(45)을 만나 대변인의 역할론에 대해 들어보았다. 허 대변인은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과 워싱턴 특파원 출신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메시지 부단장을 역임했다.

 - 최근 정부 대변인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큰 틀에서의 정부란 입법·사법·행정을 다 말합니다. 그러한 공직자 집단이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에게 제대로 안 알려지면 정책 또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죠. 현대 행정은 국민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작년 쇠고기 파동과 최근의 4대강 사업 추진처럼,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집행이 어렵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국민의 저항으로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또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듣는 일이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통의 창구로서 대변인 제도가 확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명박 정부 초기에 거론되었던 소통부재로 인한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차원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이 현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과거에도 각 부처에 공보관 제도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보관과 대변인은 역할 자체가 다릅니다. 공보관은 일방적 홍보를 위주로 하는 것이고 대변인은 쌍방 소통, 즉 언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기관에 목소리를 전하고 국민의 의견도 수렴하는 것입니다. 대변인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관장의 의사 내지 의지를 국민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로써 표현되는 의지와 의사를 국민에게 전합니다. 언론을 통해 말하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기관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전하고 기자의 질문에 청와대를 대신해 답하는 것이죠. 국회 대변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기관장으로서의 국회의장을 대변하고 국회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변인 제도 관행적 정착 노력

- 초대 국회 대변인이란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아직은 그 역할이 모호한 듯한데요.

“국회 대변인의 역할이 아직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모순된 점도 있습니다. 저는 정당의 대변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파적 입장에서 대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국회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회사무처와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기관들입니다. 입법부의 실체는 국회의원이 모두 모이면 되는 것입니다. 정당정치가 강화된 우리나라는 299명의 국회의원이 각 정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럼 국회 대변인은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가, 여기서 모순된 점이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하는 일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그런 것을 누군가는 설명해줘야 했기에 국회 대변인 제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번에 개정된 국회사무처법 6조를 보면 국회 대변인은 국회활동의 대외공표와 언론기관의 취재 및 보도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리할 것이 많고 새롭게 규정해야 할 부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갈 예정입니다. 지난 8개월 동안에도 새로 생긴 대변인실이 무리하지 않고,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지나치게 무리해서 대변인 제도를 운영하면, 좋은 취지로 생긴 이 제도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역풍을 맞게 됩니다. 예컨대 과잉의욕만 앞서 어떤 특정 정파를 비난 혹은 비판했다면, 아마 이 제도가 지금처럼 정착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 본인의 소신과 다른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경우 내적 갈등과 고민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만약 정치적 논평을 해야 한다면 굉장한 고민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국회 대변인이 정치적 논평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더구나 저는 한나라당 출신으로 국회의원까지 출마했던 사람이고 얼마 전까지 위원장을 역임했었습니다. 그러한 제가 정치적 논평을 하기 시작하면 정파적 관점에 치우칠 수 밖에 없고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될 여지가 있겠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변인은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형오 의장이 국회를 이끌어나가는 방침과 소신 등을 언론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 지난 20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했고, 정치관련 부서에 오래 계셨습니다. 그 시절 지켜본 국회와 지금 대변인으로서 보는 국회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기자로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죠. 기자는 항상 비판자의 입장입니다. 정치의 주체가 아닌 관찰자였죠. 영어로 리포터라 하듯이 전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부 기자를 92년부터 했는데, 사실 좀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국회를 보면서 ‘왜 저렇게 할까,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란 생각으로 늘 안타까웠습니다. 즉, 결과로서 보는 측면이 강했던 거죠. 하지만 2007년 5월 워싱턴 특파원을 그만두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선후보 선거캠프에 공보특보로 합류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습니다. 작년 선거 때는 직접 출마도 했었고, 지금은 대변인으로서 국회라는 기관에 한 모퉁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관찰자는 알 수 없는 국회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때 든 생각이 비판하기란 어쩌면 참 쉬울지 모른다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국회가 언론보다 더 낫다는 것은 아니고 성격이 다른 측면이 많다는 것입니다.”

- 3년여 동안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본 미국 의회의 모습은 어떻던가요.

“미국은 우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지만 실제로는 의회 중심제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입법 우위 국가죠. 삼권분립에 충실한 헌법이 2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만큼 의회의 격이 높고 의원들도 매우 양질입니다. 특히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 국회 수준에 비교한다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로 여러모로 우리가 뒤처집니다. 법을 잘 지키고, 문화적으로 품격이 있습니다. 말과 행동에도 예의범절이 있고 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 선진국 아니겠습니까. 또한 미국은 시민이 우선인 사회입니다. 공직자들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존재할 뿐이며, 국민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 결정에 적극 반영되는 곳입니다.”

- 국정감사 기간인 10월 한 달 동안 김형오 국회의장이 전국을 순회하는 민생투어를 하고 있는데요. 수행하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나요.

“국회의장은 현역의원들 중 유일하게 소속된 상임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종전에는 국감 기간 동안 해외로 순방외교를 떠나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형오 의장님이 국민의 삶과 산업 현장 곳곳을 돌아보고 계십니다. 살아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죠. 작년에는 제가 이 자리에 없었고, 올해는 대변인으로서 수행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직접 민생 현장에 가서 보고 지역주민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정치에 대한 생각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 국가를 바꾸는 힘은 정치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인거죠. 또 여러 집단 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정치입니다. 완전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배려하며, 같이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정치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삼류정치 모습 답답

- 입법부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국회로 상징되는 정치가 왜 이리 삼류인가를 살펴봤을 때, 제도의 미비와 문화적인 측면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국회가 독립된 입법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장이라는 거죠.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그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경쟁으로 얼룩지다 보니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회의장님의 접근대로 헌법을 고쳐야 합니다. 미국 의회를 예로 들면, 그곳은 백악관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각축장이 아닙니다. 전혀 별개로 움직이며, 상하 관계로 되어 있거나 중첩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자의 권한과 책임을 명백히 하자는 것이죠. 입법과 대통령의 권력을 떼어내자는 거예요. 대통령 권력이 너무 세니 그것을 차지하려고 4년 동안 지지고 볶고 무한투쟁의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국회제도도 미국처럼 세세하게 만들어서 잘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의장님이 헌법자문위원회 통해서 개헌안을 냈잖아요. 국회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서도 결과물을 발표했고요.”

- 우리 정치를 삼류라고 하셨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있습니까.

“국회로 상징되는 정치의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는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모릅니다. 특정정당이나 특정인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왜 삼류정치 밖에 못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우리 정치의 품격과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을 평가해 볼 때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라든지 세계적 위상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물론 입법부가 싸움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극단적인 정치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부 모습일 뿐이죠. 실제로는 국회가 하는 일이 굉장히 많고,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개개인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고유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권력 투쟁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정치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나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 국회 대변인으로서의 포부와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신다면.

“국회 대변인이 만들어진 취지를 정확히 살려서 이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국회라는 기관과 국회의장의 말을 대신 하는 것이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전해주고, 의견 수렴 또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러한 국회 대변인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정착시키고, 잘 발전할 수 있도록 터를 닦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18대 총선 때 고배를 마셨지만 재도전해 정치인으로서의 꿈도 이루고자 합니다. 저는 밥벌이가 없어서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기자로서 20년 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앞으로는 공적 부분인 정치영역에서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시대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김범수 편집위원

글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사진·이승재 기자 l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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