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2만명 시대, 빛과 그림자
탈북민 2만명 시대, 빛과 그림자
  • 미래한국
  • 승인 200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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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준비하는 남북한 사이에서 튼튼한 가교 역할


수많은 탈북민(‘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의 새로운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예산정책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남한에 정착하는 탈북민의 수는 향후 20년간 연평균 5.3% 증가될 전망이다. 올해 입국한 탈북민수가 2,835명, 내년엔 3,24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북한에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수가 완만하게 증가해 10년 후엔 5,804명, 20년 후엔 8,654명의 탈북민이 남한에 정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부 역시 1989년까지만 해도 607명에 불과했던 국내 입국 탈북민이 내년이면 2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국내 입국 탈북민들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경제적 자립 및 자활 의지 등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들의 성공적인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시각과 올바른 사회적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국내 정착이 향후 남북통일시대의 사회적 통합을 앞당기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김정일 체제에서 뛰쳐나와 남한에 정착한 이들에겐 생존·자유·남한사회에 대한 동경 등 여러 가지 탈북 이유가 있다. 제3국에서의 목숨을 건 기나긴 여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자유를 얻은 그들. 하지만 대다수 탈북민들은 남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약 66건의 탈북민 관련 민원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취업지원 관련 민원(21건.32%)이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접수된 것으로 정착지원(19건.29%)과 주거지원 및 사회보장과 관련해 제기된 민원(12건.18%)들이 그 뒤를 이었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내놓은 ‘2008 탈북주민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 미만이었다. 그나마 취업한 사람들 중에 약 74.8%는 단순노무 또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청소년들 또한 2007년 4월 기준으로 고등학생 중 28.1%가 학교를 중도 탈락했다. 남한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이해하기도 전에 음지로 내몰리는 것이다.

김의도 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은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살고, 제3국에서는 말이 안통해 못살고, 한국에선 몰라서 못살겠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전혀 다른 체제와 환경 속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막막한 일이라는 것이다.

탈북민이 입국하면 국정원과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서 합동신문을 한 후 통일부 산하의 ‘하나원’에서 12주 동안 사회 적응 교육이 이루어진다. 심리적 안정과 진로 결정을 위한 상담이 실시되며 이후에는 초기 정착금 600만 원과 임대주택이 제공된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을 한 경우엔 장려금을 주는 인센티브 제공 방식도 취하고 있다.

이밖에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용주에겐 고용지원금을, 탈북민에겐 취업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이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 탈북민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상당히 크다. 물론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에 진출한 탈북민들도 일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을 각오로 북한 탈출을 강행했던 용기를 가지고, 남한에서도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했다는 것이다. 

탈북민 정착지원 생계형 아닌 복지 중심으로

최근 한 탈북민 단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중 58.4%는 스스로를 북한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탈북민은 6.3%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에게 남한사람이 되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탈북민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정착지원의 정책 방향과 보호지원 수준을 결정하는데 주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북민을 ‘미리 온 통일 미래의 모습’이라고 언급한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컬럼에서 “향후 통일과정에서 탈북민들은 북한 주민을 직접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할 주체이므로 ‘통일역군’의 정체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소중한 인적자원으로서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도록 정부와 민간, 학계, 탈북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북한이탈주민 보호범위 확대 ▲탈북청소년 지원 강화 ▲지역적응교육 실시 ▲취업제도 개선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통일부는 최근 탈북민 정착지원 업무를 통일정책실로 이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통일부 정착지원과 관계자는 “탈북민 대부분이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해 이들이 좀 더 편리하고 손쉽게 진료 받을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립의료원 등 몇몇 한정된 협력병원 이외에 탈북민들이 사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편리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력병원을 확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의료비 지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탈북민의 공통된 의견이다. 탈북민들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무료진료 혜택을 누리는 의료보호 1종에 가입된다. 하지만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은 일반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때, 취업을 한 경우에만 지급되는 하나원의 인센티브와 의료보호 1종의 혜택을 두고 탈북민들은 고민에 빠진다. 대다수 탈북민들이 허약한 체질이고, 고질적인 질병들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제도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탈북청소년의 교육·사회 적응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도 요구되고 있다. 심리적 이유기에 있는 청소년은 남한사회 적응에 있어 어른들보다 힘든 과정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8월 13일 발표한 ‘2009~2010년 탈북 청소년 교육지원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모든 탈북청소년에게 교사, 대학생, 퇴직교원 등이 참여하는 1대1 멘토링이 지원된다.

학업 능력을 높이기 위해 교과 보충과 문화체험 활동 등에 대한 방과 후 특별 교육도 실시된다. 특기·적성을 고려한 진학 및 취업연계를 위해 특례 편입학도 지원되며, 표준 교육과정 및 교재도 개발될 예정이다.

또한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탈북가정과 일반가정의 자매결연 및 탈북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탈북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학교 부적응 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방안을 발표한 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지원을 통해 탈북청소년들의 입국 초기부터 사회 진출까지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개선 필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탈북민 단체의 사업을 지원한 것이 파악됐다. 통일부는 10월 5일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올해 탈북여성연대와 탈북자동지회 등 7개 단체의 탈북민 정착 지원 사업에 1억 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의 사업은 ▲탈북청소년 취업 알선 ▲성공한 입국 선배 배우기 ▲봉사활동을 통한 남북 간 문화통합 및 인식개선 등이다. 공개모집을 통해 탈북민 단체들이 사업계획을 제출하면, 정부가 심사를 거쳐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 탈북민 단체의 간담회나 워크숍 등의 행사를 후원하는 수준에 그쳤던 현 정부의 이번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올해는 탈북민 단체만 따로 공모했으나 내년부터는 일반 민간단체와 구별 없이 공모할 계획”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탈북민들의 빠른 정착을 위한 정부 지원책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탈북민들과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한사회에서의 탈북민은 단순히 복지지원 수혜대상 혹은 취약계층일 뿐이라는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며 향후 통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존재다. 남한문화에 일방적으로 끌어당기기보다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탈북민 문제에 담담하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 나라 밖에서는 탈북민 인권 보호가 국제 이슈로 꾸준히 부각되어 왔다. 거기엔 국내외 탈북민 보호 단체 및 개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얼마 전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탈북난민보호국민운동본부(CNKR)’는 탈북민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고 강제송환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유엔청원 서명운동을 펼쳐 1,180만 명의 참여를 이끌어낸 바 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의 행보는 음지와 양지로 갈라진다.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탈북민들도 적지 않다. 이는 탈북민 수의 증가로 인해 나타난 통계일 수 있지만 남한 사회에 부적응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실질적인 사회 적응 교육과 지원 등 법적 장치와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또한 관련 공공기관의 통합 연계망 구축, 즉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맞춤형 지원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하나는 탈북민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다. 그들은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 등 직접적인 현안에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과 정보수집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국민들의 대북 인식 형성 과정에도 활발히 관여하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과거 이미지를 벗고 남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여러 탈북민들은 통일을 준비하는 남북한 사이에서 향후 튼튼한 가교 역할을 해낼 상생의 파트너다.#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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