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폐지 논의에 전교조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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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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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폐지 논란 - 비전문 친이계 인사들의 돌발 주장, 왜?
▲ 외고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우리 국민의 공통된 관심사다. 어느 집 아이가 어떤 학교에 들어가느냐는 부모를 으쓱하게도 하고, 축 처지게도 하는 중대한 이슈이다. 오죽하면 엄마 친구 딸, 엄마 친구 아들을 뜻하는‘엄친딸’·‘엄친아’라는 유행어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겠는가.

요즘 외고가 폐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외고 폐지 논란을 주도하고 있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외고를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마녀’로 지목하고 지난 10월 30일 외고를 특성화고등학교로 통합하고 자율학교 혹은 자율형사립학교로 지정한다는 입법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외고를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박탈하고, 학생을 추첨으로 뽑겠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외고는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하는 농업·공업 계열 고등학교, 체육 고등학교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평준화 교육 체제에서 ‘수월성’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외고가 외국어 관련 인력만을 키우는 전문학교로 전락하게 된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외고를 포함한 전 고등학교 체제 개편안을 12월 10일 발표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외고 폐지 논란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되고 있다. 교과부는 현재 외부 용역을 통해 고교 체제 개편에 대한 정책 연구를 의뢰해 진행하고 있다. 연구 시안이 나오면 11월 27일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외고 폐지 논의

외고 폐지에 대한 논란은 지난 정부 때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고등학교 운영 개선 및 체제 개편 방안’을 발표해 특수목적고 폐지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에도 외고는 ‘사교육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임기 말에 외고 폐지가 추진되었고, 전국 외고교장단, 교총 등 교육단체, 사교육 업체들의 반발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외고 폐지 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당시 외고 폐지 논의에 반대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논의를 주도해 가고 있으며, 이미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이다. 정두언 의원이 총대를 메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고 폐지 논의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에 민주당 의원들도 의아해 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1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3년 전 제가 교육부총리로 일할 때, ‘외국어 고등학교는 실패한 정책이며 외고를 폐지해서 일반계 고교, 자사고, 국제고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보수언론과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추진조차 못했던 것에 비해, 최근 있었던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외고 폐지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지 발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외고 폐지 주장에 수월성 교육에 반대해왔던 전교조도 미소를 짓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 9월 10일 ‘국회 교육상임위의 외고 폐지 촉구를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교조는 이날 성명서에서 “지난 노무현 정권부터 외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분적인 노력이 있어 왔지만 일부 보수언론과 사교육업체의 집단 반발, 교육 관료의 무능과 안이한 태도로 무위에 그쳤다”며 현 정부에 외고 폐지를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전교조는 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율·경쟁 교육 기조 후퇴

특히 정두언 의원이 밀어붙이고 있는 외고 폐지 논의는 교육 비전문가가 주무부처인 교과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로 전개되고 있다.

국정감사 마지막날이었던 10월 23일, 정두언 의원은 국회 교과위의 국감 현장에서 안병만 교과부 장관을 맹공격했다. 안 장관은 외고 폐지나 전면적 제도 개선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 의원의 발언이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쏟아부어야지 외고를 가고, 명문고를 갈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정 의원은 또 외고 폐지 논의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교과부를 향해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대책이 미봉책에 그쳐서 사교육에 아무런 영향을 못 주면 장관은 그만둬야 합니다.”

이날 안병만 장관은 연말에 대책을 내놓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4월,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을 금지하는 방안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총대를 맸었다. 정 의원은 이를 입법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학원 교습 시간 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을 제시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11월 5일 발의했다.

외고 폐지와 학원 교습시간 제한은 모두 ‘사교육을 억제’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교육비 억제책은 중도실용 기조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의 상징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눈 여겨 볼 것은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자는 안이 교과부에서 나온 안이라는 것이다. 외고 폐지 논의에 앞장서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10월 1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렇게 발언했다.

“지금 제가 내놓은 안이 교육과학부에서 나온 안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데요. 교육과학기술부 내에서도 이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요. 다만 이런 목소리들이 지금 항상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치는 건데요. 지금 외고 문제는 일부 교육기득권 세력, 악덕 사교육 업체,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일부 완고한 교육 관료들이 이걸 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주장한 안이 교과부 내에서 나온 안입니다. 그것도 일부에서 나오는 안이 아니라 책임 있는 사람이 내놓은 안입니다.”

10월 21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한 정 의원은 외고 폐지안이 교과부에서 나왔다고 거듭 발언했다.

“자율형 사립고니 이쪽으로 전환하는 안 자체가 교과부 내부에서 나오는 안입니다. 기본적으로 제 아이디어가 아니고요. 교과부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정 의원은 “이주호 교과부 차관이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주관적으로 해서 만든 분”이라며 “사실 자신은 그 공약을 충실히 집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도 말했다. 정 의원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겠다던 현 정부의 교육 기조와 상반된 것이다.

조기유학 수요 억제 역할

외고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외고가 마녀로 매도될 만큼 단점만 있느냐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외고는 특목고가 아닌 각종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가 1992년 3월 특목고 범주를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교육법 시행령이 나오면서 특목고에 포함됐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고교평준화 보완 대책의 일환으로 과학고를 확대하고 외국어고와 예술고 및 체육고를 특수목적고 계열에 추가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명문고 부활’에 대한 목소리가 컸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특목고의 옷을 입은 외고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그들만의 예외적인 교육환경을 지원함으로써 수월성 교육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우수 명문고 수요에 대해 정책적으로 응답한 것이다.

외고 교육이 조기 유학 수요를 억제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 외고에서는 집중적인 외국어 교육이 이루어진다. 고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 외고에서는 국어·도덕·사회 등 국민공통기본교과 이외에도 교과재량활동으로 외국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외고 졸업 이후 해외 대학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2008학년도 대원외고의 진학 실적을 보면 해외 대학 합격생은 95명(중복합격자 포함)이었다. 뉴욕대가 20명으로 가장 많았다. 2000학년도부터 올해까지 배출한 해외 대학 합격자 수는 610명 가량이다. 한영외고는 올해 60명이 미국 소재 대학으로, 5명이 일본 소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현재 외고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수준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영어듣기 문제와 구술·면접 시험 문제 등은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사교육에 손을 벌리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학원강사와 학부모가 결탁한 입시부정 문제 등도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히고 있다. 2007년 김포외고 입시에서는 학원강사가 시험 문제를 통째로 유출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전국외고교장장학협의회가 지난 11월 19일 입시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협의회가 발표한 개선안에 따르면 영어듣기평가와 구술.면접이 폐지되는 대신 내신의 비중이 커진다. 구체적으로 1단계에서 중학교 내신성적 100%, 2단계에선 내신성적과 인·적성면접 점수를 각각 50%씩 합산해 선발한다는 내용이다.

협의회는 개선안에서 입학사정관제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대학들에 비해 관련 경험이 적은 외고가 과연 제대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 환경 전반 함께 개선해야

문제는 어떻게 외고의 단점을 줄여가면서 평준화 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수월성 교육을 계속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하주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회장은 사학회보를 통해 “외고는 외국어 관련 전문 인력을 키우는 곳이라기보다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로 키우는 학교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시각”이라며 “사교육 문제는 평준화 정책과 공교육의 부실, 성적위주의 대학입시 등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 전반을 함께 개선할 때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정두언 외고 폐지 발언록]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교육수요가 폭발적인 나라다. 고교생의 85% 이상이 대학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가 없다. 학벌주의, 연고주의의 뿌리가 깊고 신분상승의 통로가 교육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수월성 교육을 선발권 그것도 외고제도와 같은 독점적인 선발권으로 추구하다보면 반드시 사단이 나게 되어 있다.”  -11월 23일 정두언 칼럼(홈페이지)

“우리나라에는 3대 외고 비호세력이 있다. 외고를 중심으로 한 교육기득권층, 외고를 미끼로 학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기관, 그리고 여기에 부응하는 일부 완고한 교육 관료가 바로 그들이다. 교과부가 적당히 외고 입시제도만 손볼 경우 외고의 위력만 재확인해 사교육비는 더욱 폭증할 것이다.”  -11월 9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의’

“지금 외고가 뭐 전국에서 최우수 학교로 인정돼 있는데 그래서 최우수학생들을 뽑고 있는데 알고 보니까 자율형 학교로 전환할 능력도 없는 학교라는 겁니다. 외고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죠. 학교를 그렇게 부실하게 운영해놓고 아이들만 그냥 우수한 애들만 싹쓸이 해 간 겁니다. 참 우스운 얘기죠.”  - 10월 23일 YTN FM ‘강성옥의 출발 새아침’

“마녀사냥이란 마녀가 아닌 사람을 마녀로 몰아 사냥한다는 얘기지만, 외고는 분명히 마녀이다.”  - 10월 19일 KBS1 라디오‘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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