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폐지론은 좌향좌 포퓰리즘”
“외고 폐지론은 좌향좌 포퓰리즘”
  • 미래한국
  • 승인 200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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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성호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정책위원장
▲ 이성호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정책위원장 (중앙? 교육학과 교수)

외국어고등학교 존폐 논란이 교육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평준화 정책과 수월성 교육, 사교육비 등이 얽히고설킨 외고 문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외고 폐지론에 대한 찬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난 국감 현장에서 이를 공론화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외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외고가 기존의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고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왔으니, 그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5년간 이어져온 외고 제도의 존립 여부가 불투명한 지금,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에게 외고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바른교육권실천행동’의 정책위원장도 역임하고 있는 이성호 교수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 외고의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외국어고등학교라는 명칭으로 인해, 단순히 외국어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만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고라는 명칭 자체가 현상을 호도하므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곳이란 의미로 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4년에 외고가 설립될 당시에는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해서 국력을 신장하고, 국제교류를 더 증진시키자는 것’이 명목상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숨겨진 이유 중 하나가 고등학교 평준화로 인한 문제점이었죠.”

즉, 학부모와 학생에게 학교에 대한 선택권이 전혀 없고, 다양한 적성과 능력의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시 체제였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특기나 적성이 다른 학생들에 대한 배려와 마찬가지로 능력이 남다른 학생을 위해 마련된 것이 외고 제도라는 것이다.

- 전국 30개 외고 교장협의회가 최근 ‘외고입시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2011학년도 입시부터 영어듣기평가와 구술면접시험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동안 듣기평가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가 문제로 지적됐었는데, 이를 폐지하겠다고 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리더라는 것이 외국어를 단순히 듣고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서류심사와 면접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입학사정관을 자꾸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오래 전부터 학교 내에 외부인사 몇 명을 포함한 ‘선발단’을 만들 것을 주장해왔습니다. 더욱이 외고 같은 경우는 한 학교에 150명에서 많게는 300명 정도만 뽑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도의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리라 여겨집니다. 입학사정관제도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1차 서류심사는 모두 거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책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교육적 논의를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교육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는 개인의 특기·적성·능력에 기초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죠. 특기와 적성까지는 어느 정도 용인을 하는 것 같은데, 능력에 기초한 교육이 거론되면 정치적이 됩니다. 개인의 능력을 가정환경이라는 요소와 묶어서 보기 때문이죠. 사교육에 대한 경제적·정신적 부담에 평등의 논리까지 접목시키면서 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에 외고 문제와 맞물린 겁니다. 외고 학생들이 높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기부를 통한 입학도 아니고, 대학선발의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건데 무조건 외고 학생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차라리 외고 폐지와 같은 논쟁으로 가기 이전에 외고가 왜 우수한지를 봤어야죠. 학교 운영 시스템과 커리큘럼의 특징, 교사와 학생의 열의 등에서 무엇이 남다른지를 살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거부감부터 갖고, 정치화시키려 하고 있어요.”

- 그렇다면 왜 유독 외고만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자사고나 과학고와 비교해 보면 숫자 면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학교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서 상위권 학생을 다 뽑아간다고 여기는 거죠. 근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서울대도 없애야 합니다. 여하튼 자사고와 과학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외고에 대해서만 폐지론을 제기하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라고 여겨집니다.”

야당·전교조는 표정관리 중

-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외고 폐지 관련 발언은 어떻게 보십니까.

“외고의 교육적 가치가 아닌 정치적 논리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외고를 때리므로 해서 얻는 반사이익을 노린 거죠.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나 복안도 없는 정 의원이 한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생각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포퓰리즘 더하기 소영웅주의 정도로만 보입니다.”

- 야당 의원들은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난 정권 때부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외고를 폐지하자고 한 사람들입니다. 평등지상주의를 논리로 내세우며, 서울대 폐지도 주장했던 사람들인걸요. 다만 야당은 지금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교조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상 본인들이 앞장서 그런 얘기를 하면, 또 그 소리냐 하면서 대중들로부터 거부감이 표출됐을 텐데, 이를 여당의 정두언이란 의원이 돌출행동을 통해 얘기하고 나오니 속으론 웃고 있는 거죠.”

- 정치인은 법안 발의에 앞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실제로 어떻습니까.

“정치인들의 속성은 일단 자기가 일정 위치에 서기까지는 상당히 허리를 굽히면서, 의견도 수렴하려고 하죠. 그런데 일단 어느 정도 위치에 서면,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다고 해도 자기에게 싫은 말을 하는 전문가는 안 씁니다. 즉 전문가 의견도 선별해서 듣는 거죠. 하지만 정치인들이 늘 그렇게 대중의 정서만 파고들면서 먹고 살면 안 됩니다. 나라가 발전하고 도약하려면 우선 두 가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대중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줘야 합니다. 또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 25년 간 이어져온 외고 제도의 긍정적 역할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실제 외고를 방문해서 학생들을 만나보면 상당 부분 글로벌 마인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그러한 학생들에게 맞춘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요. 그 결과, 평준화라는 틀 속에서 나름대로 수월성 교육을 추구했고, 여러 가지로 기여도 했다고 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평준화 체제 속에서는 인문·사회를 전공하는 학생에 대한 수월성 교육의 기회가 전혀 없었거든요. 과학이나 수학을 잘해야만 영재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인문·사회 계통 분야에 우수한 학생들도 엘리트로 다 키우거든요. 소위 좌파들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확실한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해외 조기 유학을 줄이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양질의 교육을 통해 해외 조기 유학 수요를 대신 흡수한 거죠. 하지만 만약 외고가 사라진다면 조기 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기유학은 돈도 돈이지만, 기러기 아빠 등의 문제로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 외고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교육비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비판 근거 중 하나가 외고 입시 문제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것인데요. 선발기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외고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고등학교 수준에 입시문제를 내서 선행학습을 유발시킨다는 것이 잘못된 거죠. 사교육의 도움이 아닌 해당 학생 스스로 고난이도의 문제를 푼다면 정말 영재겠지만, 사교육을 통해 그렇게 되었다면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각 학교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우수한 학생을 뽑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어려운 문제를 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어렵게 낸 문제를 풀었다고 해서 그 아이가 무조건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자질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근데 그 기본 자질의 기준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또 어려운 문제죠. 그러나 내신 50% 내에서 뽑는다는 등의 얘기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말도 안 되는 발상입니다.”

반대로 가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 이명박 정부 초기의 교육 공약은 자율과 경쟁, 국제화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교육 정책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사회가 지나치게 좌편향으로 가서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출범하자마자 MBC PD 수첩에 의해 조작된 촛불 하나에 휘청거리게 됩니다. 전열이 정비도 되기 전에 결정타를 맞고, 자신감을 잃은 거죠. 여하튼 전열을 재정비해서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합니다. 그렇게 두 결정타에 의해 휘청거리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정권을 재창출하기는커녕 임기도 제대로 못 끝낼 가능성이 많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 보다, 일단 성난 민심을 무마시켜야 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정권보다도 오히려 더 좌편향된 쪽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 정책은 그 비전과 교육적 가치가 정치적인 이념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입니다.”

- 그렇다면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십니까.

“계속 이렇게 가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처음에 본인들이 생각했던 대로 밀고 나가라,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정책이란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수정보완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현 정부는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정치 논리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녔기에, 교육정책이란 것에 본래의 의미조차 사라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프로젝트이므로, 인기에 영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정책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설득하려고 해야 합니다. 지금은 둘 중에 하나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려면 본인의 원래 공약을 포기하고, 정체성을 바꾸어야 합니다. 또 만일 처음 본인이 가지고 나온 생각대로 추진하려 한다면, 지금 나온 대안으론 안 됩니다. 학교의 만족도를 높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많지만, 학교의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수요를 일반 고등학교에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부모들이 외고에 보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일반고에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차별화된 수업, 수준별 수업, 개별화된 수업을 해야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학업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교과외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 학교를 가보면 특정한 곳 빼놓고는 교과외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외고는 철학반과 무술반 등 교과외 활동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당국에서도 꾸준한 평가를 실시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권장도 하면서 제재도 가해야 합니다. 반면에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은 일반고가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시스템도 없습니다. 그건 정말 특수한 학교인 외고와 같은 시스템에서만 가능합니다.”

외고의 핵심은 선발권

- 외고 폐지와 관련된 논쟁이 향후 어떻게 진행되리라 보십니까.

“지금까지 나온 얘기로 봤을 때는 선발권은 거의 안 주는 쪽으로 나가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고와 같은 학교들의 핵심은 선발권입니다. 특기·능력·적성이 설립 취지에 맞는 학생을 뽑으려면 어느 정도의 선발은 불가피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절충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고 봅니다. 이번에 결정되는 것이 최종안으로 보기 어렵다면, 그 문제에 대해선 우리가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교육을 지나치게 유발해온 과도한 선행학습과 영어듣기평가는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기?능력?적성에 맞춰서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다면 우리나라 같은 여건에서는 앞서 언급한 선발단, 즉 입학사정관제도나 진정한 의미의 서류 검토 및 면접이 차선책입니다. 외고와 같은 사립학교에 대해 정부가 관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안 맞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무시할 순 없으므로 외고도 이미 각오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지금까지 외고가 누려왔던 혜택 등은 절반 정도는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도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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