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과 침략의 의미
정복과 침략의 의미
  • 미래한국
  • 승인 200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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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예춘추 10월호


시오노 나나미 日 작가 · 이탈리아 거주

중세 십자군시대의 사료를 읽으면서 느낀 일이지만 당시 서구 기독교도의 십자군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받은 이슬람 교도들은 종교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침략전쟁으로 받아들였다. 종교적 차원이 아닌 영토욕 때문에 일어난 침략이라고 생각했다.

아랍 측의 사료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다면 그 앞 시대의 북아프리카나 스페인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공격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시대의 이슬람 교도는 오른손에 칼을, 왼손에는 코란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중해의 남쪽 뿐만 아니라 서쪽까지 이슬람권 영향력 아래 두려고 했다. 전쟁을 침략이냐 그렇지 않느냐 판단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논란이 있었다. 공격받은 측에서 보면 침략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와는 별도로 공격한 측이나 공격 당한 측 모두 ‘정복’이라는 견해를 같이 하는 전쟁이 있다. 알렉산더의 동정(東征), 시저에 의한 갈리아 전역(戰役)이 그 좋은 예이다. 두 사례가 모두 바로 이웃하는 강력한 적을 배제함으로써 자국의 안전을 보증한다는 의미로서는 방위전쟁이었지만 거기서 승리를 거둔 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계속 지배를 했다. 이것이 침략이 아니고 정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차이는 전쟁의 승패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방위를 위한 전쟁에서 이기고 침략전쟁으로 전환돼서도 계속 승리해 점령지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 정착시킬 때 비로소 정복이라 할 수 있다.

정복이 장기간에 걸쳐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략이 필요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 자신도 포함해 마케도니아의 무장(武將) 1만명과 함께 패전 측의 페르시아 여인들과의 결혼을 강행했다. 시저는 국회에 해당하는 원로원 의석을 적이었던 갈리아의 유력자들에게 제공했다. 방위와 침략의 단계에서는 군사력이 중요하지만 정복의 단계에 들어서면 그것도 장기적으로 정착되려면 정치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 헌법에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의미가 없다. 일방적인 선언으로 실현될 정도로 세계가 만만하지 않다. 많은 나라들이 모여 선언하더라도 실천 전망이 어두운 사례는 유엔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자국의 일은 자국에서 해결해야 한다. 또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일은 자국이 해결한다는 분위기가 되면 오히려 유엔의 조정력도 보다 더 잘 발휘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지키지 않는데 누가 도와줄 것이냐 라는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말을 상기할 것까지 없이 미일안보조약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수천명의 병사를 잃었는데도 반전 분위기가 있는 미국이 일본을 지키는 데 자국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군사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면 국제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외교에 서툰 일본이 이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

번역/이영훈 교포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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