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예술을 넘어 ‘치료’의 날개 달다
연극, 예술을 넘어 ‘치료’의 날개 달다
  • 미래한국
  • 승인 200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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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 지난 11월 11일 경기도에 위치한 용인대 예술대학 소극장에서 연극치료사들이 마스크를 활용한 연극치료를 연습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경기도에 위치한 용인대 예술대학 소극장.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파이스토스 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역할에 맞는 가면과 리듬을 만들어 연기를 펼친다.

역할에 너무 몰입한 탓인지 손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연기를 하는 이들은 용인대 예술대학원 예술치료학과 학생들. 모두 적게는 1년에서 5년 정도까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연극치료사들이다.

이들은 마스크를 활용한 연극치료기법과 어떻게 이야기를 연극 치료 텍스트로 만드는지 영국인 수 제닝스(Sue Jennings)로부터 전수받고 있었다. 그녀는 연극치료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인물로 연극치료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 워크숍을 위해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사소통과 사회성 발달에도 기여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연극치료는 한마디로 연극을 치료에 사용하는 것이다. 연극을 공연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연극에 참여해 역할을 맡고 스스로 체험하면서 실제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해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연극치료에 참여한 아동들은 역할극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능력을 키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도 한다.

표현에 미숙했던 발달장애아동들이 1주일에 1~2번씩 몇 주간의 치료과정을 거치면 극에 몰입한 나머지 울음보를 터뜨리고 표현이 풍부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용인대 연극학과 박미리 교수(한국연극치료협회 회장)는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들이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는 과정은 ‘새로운 탄생’에 가깝다”고 말한다.

연극치료 관련 외국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해온 연극치료사 이효원 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삶이 투사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사(project)라는 것은 자기 외부 대상을 빌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연극치료사들은 치료를 원하는 각각의 대상자들에게 맞는 이야기 구조를 찾고, 치료 대상자들은 그것을 극화해 체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행동으로 구체화한다. 따라서 이야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사람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행동의 동기까지도 파악하게 하는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힘도 길러준다고 한다.

연극치료는 다른 배우들과 관객, 스탭이 있어야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능력과 사회성 발달에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음악치료와 미술치료 등 다른 예술 치료와 비교해 봤을 때 연극치료만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발달장애아동, 장애우, 의사소통이 필요한 가족, 탈북민, 노숙자, 은퇴 노인, 수감자,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있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도 넓다.

이효원 씨는 “보통 치료하면 정신병원을 생각하거나 의사도 아닌 사람들이 무슨 치료를 하느냐고 편견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환자로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도 살면서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연극치료가 품을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많습니다”고 전했다. 

1960년대 영국의 교육연극에서 시작

연극치료는 1960년대 영국의 교육연극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연극이 ‘치료’의 영역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된 시기는 197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였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연극치료가 알려지게 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2005년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 ‘연극치료사’ 과정이 개설되었고, 학위를 수여하는 정규 과정으로는 용인대 예술대학원 연극치료학과, 동덕여대 공연예술대학원 내에 통합 연극치료 전공이 있다.

국내에서 연극치료를 알리고 있는 전문가들 중에는 연극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경험하고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현재 한국연극치료협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미리 용인대 교수는 연극을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연극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한 시설에서 연극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처음에 몇 번 가서 지도를 했는데 다른 학생들도 오고 싶다, 매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연극 교육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연극을 하려면 1년은 해야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한다고 했죠. 매주 갔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정서적으로 풍부해졌어요. 온몸으로 연극이 굉장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죠.”

자원봉사를 하면서 연극이 확실히 치료 효과가 있다는 체험을 하게 된 박 교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소개를 받아 발달장애아동이 있는 특수학교에서 또다시 연극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박 교수는 1주일에 두 번씩 이곳을 방문하면서 연극의 치료 효과를 거듭 확인했다. 박 교수는 자신을 온몸으로 부딪힌 케이스라고 설명한다.

국내에서 이미 5권의 연극치료 관련 서적을 번역한 연극치료사 이효원 씨도 처음에는 연기를 했었다. 연극을 하면서 연극이 예술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사람들의 개인적인 변화나 성장을 위한 것으로도 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 2005년 3월 숙명여대에서 연극치료사 양성과정이 생겼다. 이효원 씨는 공부를 하면서 국내에는 자료가 너무 없어서 스스로 공부도 할 겸 앞으로 공부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외국 서적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외국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국내 연극치료가 이룩한 성과도 많다.

외국에서는 연극치료가 ‘심리학’에서 시작됐지만, 국내에서는 연극이라는 예술 자체의 영역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른 예술치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실은 외국 연극치료사들도 감탄하는 부분이며, 또 외국과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마스크·게임 등 연극적 수단 사용

하지만 연극치료는 국내에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연극치료는 가장 늦게 출발한 탓에 인지도가 낮다. 더구나 연극은 ‘놀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연극이 치료까지 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사이코 드라마와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도 연극치료의 맹점이다. 전문가들은 식별이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게 사이코 드라마이고, 어떤 게 연극치료인지 모호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연극치료와 사이코 드라마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이코 드라마는 일정한 대본이 없고 등장인물인 환자에게 어떤 역과 상황을 주어 그가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게 하고, 억압된 감정과 갈등을 표출하게 한다.

반면에 연극치료는 사이코 드라마처럼 직접적으로 갈등을 다루기보다 이야기와 은유, 상징 등 간접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다루어 간다고 간다. 인형이나 마스크, 게임 등 연극적인 수단이 많이 사용된다.

연극치료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이다. 굳이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도 마음과 육신의 병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

용인대에서 만난 한 연극치료사는 “이렇게 좋은 연극치료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누렸으면 좋겠습니다”며 “일반인들도 연극을 많이 보십시오”라고 조언했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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