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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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9.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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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친일인명사전 vs 친북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지난 11월 8일, 임원들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한 후 묵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1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3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가장 먼저 개최된 것은 지난 11월 8일 서울 효창원 김구 선생 묘역에서 진행된 ‘친일 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좌파성향의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국민보고대회에서는 이들 단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4,389명의 친일 행위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이 명단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을사조약 때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항일 시론을 쓴 언론인 장지연,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등 대한민국에 공이 있고 애국자로 평가돼온 인물들이 대거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한 빌딩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한 것이다. 규명위가 발표한 제 3기(1937~1945년)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백선엽 장군, 극작가 유치진,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인 노기남 등이 포함됐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친북 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이하 친북인명사전) 편찬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12월 중에 친북 반국가행위자 1차 명단 100명을 발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명단은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직 인사들로만 채워진다.


친일청산론의 대전제, ‘대한민국은 실패한 역사’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친일행위자 발표에 이어 친북인명사전 편찬 관련 소식은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적 갈등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하면서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노무현 전 정부나 운동권 386 세력의 역사관이기도 하다.

한편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하는 편에서는 남한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가혹한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미화하는 이들을 국가의 선진화를 방해하는 반국가 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반국가적 사상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좌파 이념에 경도된 친일 청산 움직임보다 중요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단순한 좌우 갈등 양상을 넘어 어떤 인명사전이 더 균형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친일 또는 친북 반국가행위자로 규정하는 잣대가 자의적이라면 결국 인명사전을 만드는 의도도 순수하게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단을 발표한 단체들에는 어떤 인사들이 참여했고, 친일 또는 친북 반국가행위자 선정 기준 등은 어떻게 결정됐을까? 먼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친일 반민족행위자 발표부터 살펴보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는 지난달 27일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4년 6개월에 걸친 활동을 마치고 해산했다. 규명위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 5월 설치된 것이다. 당시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규명위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를 선정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 발간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 활동에는 약 377억원의 국고가 지원됐다.


좌편향 친일규명위에 377억 국고지원

규명위의 활동은 시작부터 삐걱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맹점이 있었다. 특별법 규정에 따라 구성된 규명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4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4인(여야 각각 2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즉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추천 몫(2인)과 대법원장의 몫(3인)을 합쳐도 대통령(4인)과 여당 추천 몫(2인)을 넘어설 수 없는 구도였다. 위원회의 구성부터 좌편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또 규명위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기준에서도 공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11월 27일 조사대상 3기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발표가 있었던 규명위의 기자회견장으로 가보자.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좌익 사회주의 계열 인물인 여운형이 왜 명단에 없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여운형 등 좌익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이 명단에서 잘 안 보인다는 한 기자의 지적에 대해 성대경 규명위원장은 “여운형은 건국동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다. 친일행적과 관련한 글이 있더라도 이 공적을 가지고 조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규명위의 활동 근거가 된 특별법 조항에는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21가지 기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을 가지고 조사하지 않았다’라는 해명은 명단 선정에서부터 특정 성향의 인물은 배제하고, 관용을 베풀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해방 이후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도 명단에서 빠졌다. 규명위는 “친일행위는 인정되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드물게 조선 문화를 세계에 알린 점 등이 고려되어 기각됐다”고 해명했다.

조사대상자 선정과 결정 심의 과정에서 유족들의 이의신청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규명위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현황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선정에 대한 이의신청 124건 중 수용된 것은 9건에 불과했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74건 중에서도 수용된 것은 단 1건이다.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친일보고서 바쳐

무엇보다 규명위가 활동이 종료된 다음날, 성대경 위원장을 비롯한 몇 몇 위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국가 보고서를 바친 행위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1월 28일 자유진보연합은 “만약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위원회이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갔다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연속성을 부정한 것이고, 어느 특정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친일보고서를 만든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지난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자회견을 가진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도 친일행위자 선정기준,그간 활동 내역, 단체의 인적 구성 등에서 편파성이 문제되고 있다.

우선 친일 행위자 확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비밀리에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거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사실 등이 객관적인 증거로 확인되면 정부의 서훈 기준을 원용하여 ‘선친일 후항일’로 간주, 이를 수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법부의 경우에는 일제하에서 판검사를 지낸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국사건을 적극 변론한 기록이 발견될 경우 ‘선친일 후항일’로 인정했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어떤 인사는 친일파 명단에 이름이 오르고, 어떤 인사는 명단에 등재되는 것을 피해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4389명의 친일 행위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규명위 명단보다 4배 이상이 많았다. 규명위 명단에서 제외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언론인 장지연, 작곡가 안익태와 홍난파, 전 국무총리 장면, 고려대 초대 총장이었던 현상윤, 무용가 최승희 등이 포함되었다. 반면에 총독부 기관지에 학병 권유문을 싣고, 친일 단체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던 여운형은 규명위 발표에서와 같이 인명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에서 고위 관직을 지냈던 친일인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박헌영 따라 개명

민족문제연구소의 그간 활동내역도 친일인명사전 발표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저지(2003, 2001, 2000년), 서정주 기념사업 반대(2001, 1999), 이승만 국회 의사당 내 흉상건립 반대(2000), 홍난파 기념사업 반대운동(2000), 김활란 상 제정 반대(1999, 1998), 조선일보 반대 운동 등에 앞장서 왔다. 이 단체가 반대운동을 펼쳤던 인물들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5월 24일 제17회 전교조 참교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자들의 친북행적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진보적 문화평론가로 꼽히는 인물로 본명은 임준열이며 ‘헌영’이란 이름은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지도자 박헌영에서 따왔다. 그는 1974년 문학인 사건으로 투옥된 적이 있고 1979년에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1983년 석방됐다.

남민전 사건은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적화노선에 추종해 비밀리에 활동한 대규모 반국가 지하당 사건이다. 남민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으로 국가전복투쟁을 전개하다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사회주의혁명을 성취한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승교 씨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단골 변호사다. 그 자신도‘이적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이의 신청이 기각된 유족들과 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제기될 소송에 대비해 대규모 고문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고문 변호인단 명단에는 김승교 변호사를 비롯,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이덕우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석태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지나간 친일 vs. 현재의 반국가행위

이러한 국면에서 지난 11월 26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친북 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 편찬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영주 국가정상화추친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직후 친북인명사전 편찬 계획을 밝힌 점과 관련해 “일제 통치는 국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몇몇 친일파 탓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이 당장 국가에 적대적인 행위를 한다는 점이 친일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지난 11월 26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친북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 편찬 관련 기자회견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2007년 2월에 사전편찬준비위원회를 꾸려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지난해 6월 편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편찬위원장은 1980,90년대 대표적인 공안 검사로 활동했던 고영주 변호사가 맡고, 전·현직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40여명이 집필 및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친북인명사전발간계획이 규명위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반민족행위자 발표와 다른 것은 현재 살아 있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친북 반국가행위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1차 명단 100명이 12월 중에 발표되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당사자에게 충분한 변론의 기회를 준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인명사전의 균형성 문제를 좌우할 조사기준에 대해서도 양동안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기자회견 때 발표한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된 기준이지만 그것이 다 완벽하게 정리된 기준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보다 더 완벽하게 기준을 만들어 가면서 최종 심사단계에서는 상대방들의 이의 제기가 있으면 그것을 성의를 가지고 잘 검토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그 사람들이 제출한 자료가 압도할 때는 과감하게 삭제를 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관련인터뷰 12~15면

그러면서 양동안 위원은 “흔히 지금 많이 비판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해 균형 감각이 상실됐다는 비난은 우리 사전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위원은 두 전직 대통령이 1차 명단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해서는 “친북좌익인명사전에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감정으로 할 수는 없다”며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을 포함시키느냐 안 시키느냐는 문제는 객관적인 증거에 입각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가정상회추진위원회는 내년 3월 1차 명단 인사의 행위를 기록한 친북인명사전 1권을 발간한다. 5월에는 2차 명단 200명을 발표한 뒤 연말에 두 번째 사전을 발간할 예정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친북인명사전의 균형성 문제는 1차 대상자 명단이 발표된 이후에 적극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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