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선언할 때가 아니라 실천할 때다
학생인권, 선언할 때가 아니라 실천할 때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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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문용린 편집위원. 서울대 교수. 전 교육부 장관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한 초안을 발표했는데 이를 놓고 설왕설래다. 일부에서는 자유화, 규제완화, 불필요한 간섭의 배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찬성을 외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성년자인 학생들에 대한 무책임한 방치와 방임으로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느 편이 옳고 그른지를 판가름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복잡한 철학적 판단을 필요로 하고, 현실적으로는 다분히 정치적 성향을 내포한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는 미성년자들의 이성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시각의 문제가 핵심이다. 이마뉴엘 칸트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한 바 있다. 이른바 의사설(意急說)이다. 학생은 미성년자다.

따라서 그들의 인권과 권리는 복잡한 법철학적 해석과 통찰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권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견제시능력을 전제로 부여하는 권한인데, 18세 미만의 유·초·중·고등학생 등이 제시하는 의사를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


미성년자들인 어린 학생들이 내리는 판단과 의사결정이 성인들의 그것과 별 차이 없이 동일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나중에 그들의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에 입각한 것이 아니어서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현행법상 미성년자는 일반적으로 제반 권리행사에 따른 책임의 상당부분을 면책 받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어린학생들은 권리는 행사하는데, 그것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에 대한 권리 부여는 책임의 소재와 책임 수행의 능력과 관련지어 심각한 법철학적인 논의를 필요로 했다.

이런 법철학적 논의의 역사는 1924년 제네바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동과 학생들의 권리를 국가와 문화를 초월해서 어떻게 규정해야 하고, 국가별 문화권별로는 어떻게 특수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하는지를 그 때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5년이 경과한 1989년 UN 총회는 그간의 모든 노력을 종합해서 세계아동권리협약을 선언하게 되고, 이를 세계 모든 국가가 채택해 실천하도록 권유하게 되었다.

현재 이 아동권리협약에는 168개국가가 가입해 있고, 우리나라도 1991년에 이 협약에 가입해서 매년 그 협약의 이행관계를 점검해서 UN의 해당 권리위원회에 정례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보면, 경기도교육청이 제시한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대한 근원적 의아심이 솟는다. 왜 이 조례를 만들려고 하는가 하는 의아심이다.

이 초안의 주요 내용은 이미 아동권리협약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것을 국회비준을 통해서 국내법의 위치(조약 제1072호,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1991. 12. 31)로 수용해서 지키고자 애쓰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기도교육청 조례에는 UN 아동권리협약 54개 조항이 담지 못한 내용은 없다.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권리규정이라서 유.초.중.고의 모든 연령층을 망라하며 표현의 자유(협약 12,13조)와 집회결사의 자유(협약 15조), 사생활의 자유(협약 16조), 체벌의 금지(협약 37조)까지 포함되어 있다. 법률(조약)에 이미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 내용을 왜 굳이 조례를 통해서 반복 선언을 하려고 하는가?

교육청이 할 일은 선언의 반복이 아니라 기왕의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실천하고 독려하는 일이다. 각급의 학교가 법률 수준의 협약내용을 각각의 학교 상황에 맞게 민주적 절차를 거쳐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지 권리가 있다고 외쳐 주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니다.

모든 학교가 두발에 간섭하지 말고 체벌하지 말도록 일괄 규제할 것이 아니라 학교별 특성에 맞게 간섭의 내용과 방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감독하는 일이 교육청의 일이 되어야 한다. 선언은 더 이상 필요 없고, 협약의 정신에 부합하게 실천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선언 논쟁을 재연 시키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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