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떨어진‘사랑의 폭탄’, 파괴력 주목
북한에 떨어진‘사랑의 폭탄’, 파괴력 주목
  • 미래한국
  • 승인 2010.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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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로버트 박 선교사 공개 입북, ‘정치범수용소 해체’ 외치고, 복음성가 부르며 북한 땅에 들어가
▲ 로버트 박 선교사 가족


북한 중앙통신이 12월 29일 “미국 사람 한 명이 조중 국경지역을 통해 불법 입국해 억류됐으며 현재 해당 기관에서 조사 중에 있다”고 밝힘에 따라, 지난 25일 오후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재미교포 출신의 로버트 박(28. 한국명 박동훈)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되어 있음이 입북 4일 만에 공식 확인되었다. 

미 국무부는 앞선 28일 자국민인 로버트 박 선교사가 북한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29일에는 로버트 박 선교사와의 면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박 선교사와의 면담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로버트 박 선교사
로버트 박 선교사는 입북 전 배포한 ‘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북한 지도자들에게’라는 회견문을 통해 자신의 입북목적과 북한체제에 대한 요구를 세 가지로 밝힌 바 있다. 그것은 첫째 즉각적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할 것, 둘째 굶주림과 고문 등에 의해 희생된 북한 인민들과 정치범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보상하고 치유할 것, 셋째 김정일과 그의 추종자들이 즉각적으로 권좌에서 내려올 것 등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북이 “김정일과 북한 인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미국 정부가 어떤 경우에도 예전의 여기자 사건처럼 북한과의 정치적 협상으로 자신을 구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정권이 박 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종전에 억류되었던 두 여기자의 석방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쪽으로 무게를 두며 분석하고 있다. 즉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이익을 취하고 나서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그를 추방할 것 이라는 ‘북한식의 조용한 처리’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북한의 국경상황을 취재하려다 실수로 국경을 넘었거나 혹은 고의로 북한당국에 의해 납북된 두 여기자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치범수용소의 해체와 김정일의 퇴진을 요구한 박 씨의 주장을 북한독재정권이 어떤 형태로든 용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김정일정권으로서도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 됐다.

시민사회와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로버트 박 선교사가 감행한 입북에 대해 ‘영광스런 결단’이었다며 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북녘 동포를 위한 자유와 생명 2009’는 30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앞에서 집회를 갖고 박 씨가 작성한 입북 회견문을 낭독하는 한편 그 의미를 기렸다. 이들은 또한 박 선교사가 온 몸을 바쳐 외친 북한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김정일 정권의 책임성 부각 등을 위해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대규모 북한인권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결의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도 박 선교사의 뜻을 기리면서 그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미국 정부 당국에 호소를 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시위와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 정치적 협상 말라”

재미과학자인 로버트 박 씨의 아버지와 선교사인 어머니는 “고통 받는 북한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의 순수한 의도를 명예롭게 지켜 달라”면서 아들이 입북 직전 보내온 편지를 공개했다. 박 씨는 이 편지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북한해방을 위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룩한 목적에 헌신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곧 세계와 한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아름다운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박 선교사가 북한인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청소년 시절부터였다(본지 2009년 1월 3일자 인터뷰 참조). 그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 참여했던 친할머니 한혜주 권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북한 땅의 현실에 대해 각성하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 아프리카의 우간다가 내전의 고통에 휩싸였을 때 우간다 교회가 연합 회개기도를 통해 평화를 회복했다는 역사적 간증을 들으면서 한국 교회도 연합해 기도할 때 비로소 북한이 해방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세계 2억5,000만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여하는 ‘세계기도의 날’의 그래엄 파워 대표와 손을 잡고 LA의 한 의사 부부의 후원을 받아 기도단체인 ‘글로벌정의기도네트워크’를 결성했다. 2008년 7월 27일에는 ‘북한해방을 위한 전세계 회개와 금식의 날’이라는 첫 기도회를 미국에서 개최했다.

이후 그는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위치한 ‘참빛교회’의 파송을 받아 멕시코 빈민지역에서 사역을 하다가 2008년 12월 한국에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에스더기도운동본부’의 이용희 대표의 도움을 받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는 2009년 1월 14일 양재동 횃불회관에서 북한을 위한 회개와 금식기도회를 7시간 연속으로 개최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밖에도 그는 여러 교회, 단체들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북한구원을 위한 기도회를 주관했고 탈북민 가정과 노숙자들을 돕는 일에도 나섰다.

서울에서의 그의 활동은 초기에는 ‘북녘 동포들을 위한 회개와 금식기도회’ 등 기도 모임이 주를 이루었지만 동독의 월요기도회와 대규모 시위운동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지난 9월 이후에는 인권운동가로서 거리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서울시청 앞과 탑골공원 그리고 서울역 등지에서 북한인권 사진전과 퍼포먼스를 통해 북한인권법 제정과 김정일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활동에는 강영숙 국제비교사회문화정책연구소 부소장을 비롯하여, 주선애 전 장신대 교수, 에스더기도운동의 이용희 대표, 팍스코리아나의 조성래 대표, 북한정의연대의 정 베드로 목사, SLI의 서승원 목사, 자유북한인연합의 이민복 대표 등이 발 벗고 나서 협력했다.

북한동포·노숙자 위해 금식 기도

박 선교사를 지원해온 강영숙 부소장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고통 받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편안하게 먹고 입을 수 없다’며 금식을 밥 먹듯 했고, 탑골공원이나 서울역에서 만나는 술 취하고 병든 노숙자들을 위해 끌어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주위에 큰 감동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로버트 박 선교사는 2009년 7월 약 40여 일간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때 여러 경로로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땅이 바라다 보이는 두만강 강변에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북한 땅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망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구체적으로 입북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1월경이며 이 문제로 가까운 지인들과 수차례 상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본지 기자에게도 “북한으로 들어가는 순교의 길을 통해 북한인권 문제를 한국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그는 12월 23일 중국으로 들어가 현지 탈북민 안내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25일 입북했다. 당시 그와 함께 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성탄절 예배 후 눈이 내리는 가운데 성경을 가슴에 품고 두만강을 건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를 부르며 두만강을 건너 당당히 걸어가는 그를 두고 북한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폭탄’이라는 평가도 있다. 

로버트 박 선교사가 안고 들어간 그 ‘사랑의 폭탄’이 어떤 폭발력을 가질지, 과연 그의 돌발적 행동이 북한 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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