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라인보다 한발 앞서 안보정책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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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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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단체를 찾아서④ 한미안보연구회
▲ 김재창 회장

26년간 양국 민간’안보의 고리’ 역할

작년 10월 29일 서울 캐피탈 호텔에서는 김태영 국방장관,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 사령관, 마크 토콜라 주한 미 부대사 등 한미 양국의 현역 안보책임자를 비롯해, 미 헤리티지재단, 한미우호협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화정평화재단 등 단체와 50여 명의 국내외 안보문제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범세계적인 금융위기시 한미 양측의 포괄적인 안보협력’이라는 주제의 국제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모임은 한미안보연구회(공동회장 김재창*존 틸럴리)가 개최하는 스물네 번째 연례행사였다.

이 연구회는 매년 서울과 워싱턴에서 이와 같은 국제학술대회를 갖고 안보에 관한 정책적 대안을 연구하는 한편 두 나라의 친선관계증진에 기여해 왔다.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유지시켜온 굳건한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국가안보라는 차원에서 연구하고 전망해온 단체가 바로 한미안보연구회였다.

<미래한국>은 1월 13일 용산 전쟁기념관에 위치한 한미안보연구회를 찾아 김재창 회장과 현광언 부회장, 류재갑 전 경기대 교수, 정일화 대진대 교수 등을 만나 26년간 이어져온 단체의 지난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미안보연구회가 발족하게 된 배경에는 10년 전 작고한 재미 독립운동가 김재혁 박사(정치학)가 있었다. 1980년대 초 한국과 미국의 군민(軍民)관계를 연구하던 김 박사는 당시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류재갑 교수와 시애틀에 거주하던 이민영 예비역 장군 등과 함께 한미안보를 굳건히 세워갈 민간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구단체 설립에 나섰다.

김재혁 박사가 주축 돼 1984년 설립

당시 한국에서는 1970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에 주한미군 7사단의 철군이 이루어졌고 80년대에 와서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카터 대통령에 의해 미군철수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었다. 더구나 유엔결의에 의해 1976년 유엔사령부가 해체되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안보차원의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던 때였다.

김재혁 박사는 류재갑 교수 등과 함께 1983년 준비모임을 갖고 1970년대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리처드 스틸웰(Stilwell) 장군과 백선엽 장군을 초대 공동회장으로 추대하고 최초의 민간 한미안보단체를 결성했다. 1985년 미국 워싱턴에서 제1차 학술회의를 개최한 것이 모태가 되었다. 특히 스틸웰 장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전쟁 억지력이 사라져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생긴다”며 카터 대통령의 철군을 적극 반대했던 친한파 인사로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을 직접 겪기도 했다.

백선엽 초대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연구회는 출범 초기 뜻을 함께하는 인사와 단체를 영입하는데 주력했다. 군 출신으로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필두로, 유양수, 이맹기, 이병용, 오자복, 이상훈, 류병현 장군 등이 참여했고 민간에서는 김경원 전 주미 한국대사, 정명식 전 포항제철 회장, 조순승 전 국회의원, 노재원 전 대사 등이 나섰다. 단체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대표적인 경제단체들이 참여했고 언론사로는 문화방송, 기업으로는 대한항공 등이 들어왔다.

류재갑 교수는 “한미안보연구회는 한미친선과 안보를 양축으로 하여 출발했기 때문에 순수학술단체도 아니고 순수 친선단체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연구회가 “한미 간의 안보협력 관계를 연구하는 학술·한미친선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학술단체”라고 설명했다.

한미안보연구회는 1984년 미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에서 발기모임을 가졌고 1986년 미 워싱턴주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됐으며, 그 다음해에 미 연방정부로부터 비영리공익단체로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93년 한국에서도 별도로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국제적 안보연구단체로 발전됐다.

한미안보연구회의 회원 구성은 다양하다. 한미연합사 출신의 미국 측 장성들과 한국 측 장성들이 주축이 돼 약 300여 명의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안보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한 전문 학자들, 장성을 중심으로 한 군인들, 외교관, 경제계 인사, 언론인 등이 주요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 연구회의 기본조직으로 한국위원회와 미국위원회를 두고 각 위원회에 이사진을 구성하여 두 나라의 회원을 관리하고 교류하고 있다.

한미안보연구회의 주요 활동은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일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학술대회는 매년 주제가 다르게 제시되지만 소주제는 동일하게 진행된다. 즉, 대주제를 중심으로 (1)북한문제, (2)남한 정치 사정, (3)강대국 관계, (4)한미동맹, (5)한미 경제 협력, (6)한미 기술·문화·사회 협력 등의 소주제 패널 토의가 있다. 특히 연구회는 매년 개최되는 한미안보협의회(SCM)와 같은 주기로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연구 결과가 안보 현장에 실제로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한미안보협의회가 전시군사외교 프로젝트의 하나로 활약하고 있다면, 한미안보연구회는 이를 더욱 보완하여 ‘전시외교의 평시적 연결 고리’로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다.

4년 임기 회장으로 백선엽 장군과 스틸웰 장군이 초대회장을 역임한 데 이어, 한국 측에서는 류병현 대사, 유양수 대사가 회장을 맡았고 현재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의 김재창 예비역 대장이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세네왈드 전 한미연합사령관에 이어 현재는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미안보와 동맹의 근거를 이론화

▲ 작년 10월 29일 개최된 한미안보연구회의 제24회 한미안보학술대회 광경
한미안보연구회는 말 그대로 연구단체이기 때문에 여타의 시민단체와는 활동 양상이 다르다. 한미동맹의 손상이 우려되던 지난 정권 하에서는 다른 시민단체와 협조해 거리시위나 성명발표 등에도 참여했지만, 학술연구와 친선증진을 통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 연구회가 그동안 발표해온 연구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제1차 학술회의 ‘21세기를 지향하는 한미안보관계(1985년)’를 비롯, ‘1990년대의 한미안보관계 문제와 전망(1989년)’, ‘탈냉전시대의 동북아 안보협력의 본질 변화(1992년)’, ‘변화하는 동북아 힘의 균형(1994년)’, ‘한반도 격변시대의 주요문제(1997년)’, ‘한국 안보 협력의 새로운 차원(2002년)’, ‘한반도 상의 변화하는 역동성 : 한미동맹의 함의(2005년)’, ‘한미안보 동맹의 새로운 방향 : 기본으로 돌아가자(2007년)’ 등의 주제는 그 시대의 안보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김재창 회장은 한미안보연구회의 역할과 관련해 “한미동맹을 끌어가는 정책기구인 한미안보협의회(SCM)는 당장 시행할 정책을 상호 협의하고 협조하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정책, 전략적으로 다각도로 검토하는데, 한미안보연구회가 공식 레벨에서는 거론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토의할 장(場)을 펼쳐줌으로써 한 발짝 앞선 정책들을 제시해왔다”고 설명했다.

류재갑 교수는 “한미안보연구회가 지난 26년 동안 사실상 국가수호운동에 참여해왔다”고 설명했다. 연구회의 주요 성과를 요약해보면, 첫째 한미안보 문제를 학술적 주제로 정착시켰고, 둘째 안보전문가와 학자들의 연결망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측의 친한파, 지한파들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안보 관련 학자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 큰 성과로 꼽힌다. 또한 지난 20여년간 매년 국제정치학회와 공동으로 회의를 개최해 왔으며, 2,000여명의 국제 회원들에게 한미동맹과 안보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한다.

또 정일화 대진대 교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는 “한미관계는 민간, 국가, 정부 차원 등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하는데 이 관계를 일시적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려면 경험이 많은 학자들이 중심이 돼 관련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러한 이론화 작업에 한미안보연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어 “미국이 남한을 무력으로 도와주러 온 나라로 보는 종전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보고 한미관계를 좀 더 격상시키고 국제화시키는 이론화 작업을 한미안보연구회가 담당해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안보 변화를 수용해야”

▲ 한미안보연구회 임원간담회 광경 (좌로부터 김재창 회장, 정일화 교수, 현광언 부회장)
김재창 회장은 한미동맹의 현재에 대해 과거와 변함이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날(정권)을 돌아보면 한미관계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한미동맹의 어려움이 아니라 한미안보 정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던 우리 측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70년대 초 미7사단의 철군에 따른 안보문제, 그리고 월남이 패망하던 70년대 중반 카터 대통령의 철군정책과 한미방어체제의 변화 등이 우리에게는 고비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74년 율곡사업의 개시, 새로운 방어진지 구축 등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 김 회장은 “문제는 미국의 대한(對韓)군사안보의 변화 상황을 슬기롭게 수용하고 유연하게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럴 때마다 미국은 각종 군사훈련이나 대북성명 발표 등을 통해 시의적절하게 정치군사적 지원을 했고 한국도 방위능력을 배가하는 조치를 함으로써 고비를 잘 넘겨왔으며 여기에 한미안보연구회가 학술적, 정책적, 정서적으로 한미안보의 교량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5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력을 발휘해온 데에는 미국에 의한 각종 유형적 대북 선언이 유효했다. 특히 지난 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지휘기구로 새롭게 등장한 것은 한미 연합작전을 전제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막강한 개입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한미연합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에 대해 한미안보연구회는 이 주장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관련 정책을 한미 양국 정부에 수차례 건의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다행히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주장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며 한미연합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한미연합사야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다.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도 한미연합사의 필요성은 배가된다. 특히 나토가 있는 유럽과 나토가 없는 유럽이 다르듯이 연합사가 있는 한미동맹과 연합사가 없는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일화 교수는 1910년부터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전까지 미 국민의 대부분이 친일파였다고 했다.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와 같은 많은 친일파 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기독교도 친일에 앞장섰으며 특히 미 감리교는 ‘일본의 한국지배가 영원할지어다’라고 기도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 교수는 이것이 “일본이 친일학자들을 많이 양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한미동맹의 문제도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승화된 세계평화를 주장하는 훌륭한 친한파 학자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이 한미안보연구회가 추진해온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백선엽 장군과 스틸웰 장군이 한미동맹 관계를 의논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한미안보연구회는 이제 한미동맹 관계를 한국에 대한 무력방어 차원이 아니라 국제정치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며 서로의 필요를 요구하는 관계로 발전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은 태생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안보를 유지하기 어려운 나라인데 여러 선조들이 대대에 걸쳐 이 나라의 안위, 안보 문제를 풀다 풀다 안되니까 결국에는 중국에 편승하는 외교정책을 구사해 왔고 그 결과 한일합방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북아 밖에 있는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통일정책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북한의 무력적 통일관’과 ‘남한의 평화적 통일관’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정책 사이에서 한국이 북한의 무력적화 통일노선을 극복하고 한반도 전쟁 발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며, 그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바로 한미동맹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한미동맹을 강조해 온 것은 무엇보다 다행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한미동맹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미동맹이 무력방어 차원만이 아니라 가치체계상의 동맹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특히 2012년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문제를 전제로 맺어진 기존의 협약은 파기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작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군사통수권으로서 미국에 이양한 일도 없고 환수 받아야 할 것도 없는 문제다. 다만 미국과 함께 연합하여 전쟁을 억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며, 다른말로 하면 미국의 4성 장군과 그 휘하의 부대를 특별 팀으로 고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라는 시각이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할 경우 한미연합 작전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 시 미국의 엄청난 화력과 군사력 시스템을 지원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한편, 한미안보연구회는 금년 6월 25일 미 남가주대 한국학연구소에서 6·25 60주년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모임은 스물다섯 번째 열리는 연례대회로서 ‘한국전쟁의 교훈과 유산’이라는 주제를 다룬다고 한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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