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판결, 판사 이념과 자질 모두 문제
튀는 판결, 판사 이념과 자질 모두 문제
  • 미래한국
  • 승인 201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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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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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원의 편향 판결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기교사법’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판사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언어적 기교로 사실관계와 법리를 꿰맞추는 것’을 뜻하는 이 용어는 이번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난동을 부린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 대한 무죄 선고처럼 납득하기 힘든 논리와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 법 해석이 판결문에 등장한 것이다. MBC PD수첩 광우병 왜곡보도에 대해서도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이 나오자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사법부가 최근 일련의 시국사건에 대해 ‘무죄를 위한 무죄’를 선고하는 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법원이 좌경화됐고 특히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서열·기수·성별 파괴로 인해 대법관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법원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서 못 푼 문제들이 사법부로 가면서 최종 심판의 권위를 사법부가 과도하게 갖게 됐다”며 “그런 상황에서 사법부가 정치적 편향의 문제점을 시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접수

또한 법조계 인사들은 사법부 좌편향의 주범으로 90년대 전후로 대학을 다닌 10년차 안팎의 판사들과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를 지목한다. 운동권 출신 법관들이 법원에 들어온 후 ‘판결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겠다’란 말이 흘러 나왔고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에는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요직에 올랐다. 우리법연구회 초대회장인 박시환 대법관을 비롯해 창립멤버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참여정부와 우리법연구회의 사법개혁 코드를 일치시켰다. 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대법원 사법정책실장에 앉았고 김종훈 변호사는 대법원장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그 외 소속 회원들도 법원행정처 곳곳에 한 자리씩 차지하면서 ‘우리법연구회가 대한민국 사법부를 접수했다’는 말조차 돌기 시작했다. 

이처럼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은 법원 내부 게시판까지 장악하며 다른 젊은 판사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 재판 촉구로 논란이 된 ‘신영철 대법관 사태’ 당시 우리법연구회 일부 회원들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신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글을 주도적으로 올리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선동에 나선 바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이처럼 특정 파벌을 형성해 좌편향 판결을 조장했는데도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를 묵인해 왔다. 2005년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법원에 이런 단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이 대법원장 취임 후 오히려 상당수의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주류가 됐다. 법조계 원로와 대한변호사협회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우리법연구회 해체와 사법 개혁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란 말만 남긴 채 침묵하고 있다. 이에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오재성 부장판사(46)는 “비판 요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학술연구단체로서의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제기된다. 그들의 주장대로 우리법연구회가 순수한 학술모임이냐는 것이다. 1988년 ‘제2차 사법파동’ 당시 대법원 수뇌부 개편을 주장하며 결성된 우리법연구회는 1993년 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건의문’ 발표로 시작된 ‘제3차 사법파동’도 주도한 바 있다. ‘법률 전문 직업인의 비판적 시각에서 모든 법률문화 현상을 조사 연구해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창립 회칙에 나타난 것처럼 사법 개혁이 주된 목적인 모임이다. 
 
‘누가 누가 더 튀나’ - 박시환, 이정렬, 마은혁, 이동연, 문성관 등

노무현 정권 출범 첫해인 2003년엔 박시환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연공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선에 반대하며 사표를 냈다. 하지만 2년 후 자신이 주장한대로 서열을 파괴하며 대법관에 임명됐다. 우리 역사상 네 차례의 사법파동 중 세 차례에 걸쳐 주역으로 활동한 박 대법관은 튀는 판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2008년 송두율 교수에 대한 선고공판에서는 “위헌적 요소가 제거되지 못한 국가보안법은 마땅히 폐지되거나 근본적으로 개정돼야 하며 법원으로서는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해 다시 한 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는 별개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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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개인적 소신에 입각해 일반적 법 상식이나 법률 규정에 벗어난 일부 판사의 편향된 판결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하창우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진보 성향을 드러내면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을 본 판사들이 혹시 ‘그래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그의 진단은 기우가 아니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서울동부지법 이정렬 판사(41)는 지난 2004년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3명에 대해 최초로 무죄를 선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듬해엔 억대 내기 골프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화투나 카지노와 달리 운이 아닌 경기자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서울남부지법 형사5단독 마은혁 판사(47)는 국회 불법 점거사건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 12명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던 중에 선고 6일 전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해 후원금을 낸 사실이 드러났다. 대학 시절 마 판사와 노 대표가 인민노련(인천 민주노동자 연맹)의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것까지 밝혀지면서 법원 전체가 이념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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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46)는 지난해엔 민노총 조합원 김모 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김모 씨는 민노총 건물 앞에서 철도노조 집행부를 검거하기 위해 검문하던 순경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를 받았지만 이 판사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40)도 지난해 6월 정부의 방북허가 조건을 어기고 북한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행사에 참석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이천재 범민련 고문(78)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남부지법은 이념 판사들의 소굴?

이 같은 튀는 판결에 대해 ‘법원 판결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논란을 일으켜온 판결들이 서울남부지법에 몰려 있고 평판사 60명 중 11명이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란 사실은 우연이라 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서울시내 5개 법원 중 여의도 정치권과 방송사, 민주노총 등을 관할하고 있는 남부지법에는 정치적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였던 박시환 대법관도 2000년 7월부터 약 3년간 이곳에서 부장판사를 지냈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남부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정치성향이 강한 판사들이 남부지법을 희망한다고 하는데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난해 2월엔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시청자 2400여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기각됐다. 당시 소송을 대리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은 “불법촛불시위를 옹호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딸이 주심판사를 맡아 변론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는 등 불공정 재판을 하고 있어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고 전했다. 당시 대법원의 법관 행동강령 ‘이해관계의 직무 회피’ 기준에 따라 주심판사 스스로 사건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는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MB 임기 내  대법관 10명 교체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오른손엔 저울(천평칭)을 왼손엔 법전을 들고 있다. 서양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눈가리개가 없는 이 여신상은 눈을 뜬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법연구회라는 눈가리개로 인해 일부 판사들이 손에 든 저울과 법전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사법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법원에 공식 요구했고 판사 임용제도 개선 등을 추진키로 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일련의 무죄 판결이 무리한 기소의 결과라며 검찰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법관의 독립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법관 개인의 고집과 독선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며 “자신의 편향된 이념이나 도덕 기준을 고집한다면 헌법이 위임한 법관의 본분을 일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법 불신 사태’와 관련해 대법원은 경력 10년차 이상의 판사를 형사 단독판사로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사법시험 합격 후 5~6년 정도의 판사 경력을 쌓은 30대 젊은 단독판사들은 아직 사회 물정에 어둡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재판 경험이 많고 균형 감각이 있는 중견판사에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형사사건을 맡기겠다는 취지이다.

법관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서 ‘전교조 교육에 영향을 받은 젊은 법관들이 좌에는 관대하고 우에는 엄격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이들의 시각을 바로 잡기 위한 직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 내에 10명의 대법관을 교체할 수 있다. 이에 대법관 이념지형도를 새로이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또한 판결에 정치성이나 편향된 논리가 개입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법원 내 사조직은 좌우를 떠나 스스로 해체하고 법관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관련자 발언으로 알아보는 우리법연구회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6월 ‘제2차 사법파동’ 당시 대법원 수뇌부 개편을 주장하며 결성됐다. 현재 회원은 150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세미나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주고 받고 있다. 월례회에서 발표된 논문은 대략 5년마다 논문집으로 묶어 발간된다. 2005년 6월에 발간한 ‘우리법연구회 논문집’ 서문에선 “사법개혁,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 대법원장의 권한, 법관 인사제도 등 사법학(司法學)에 관한 것을 가장 많이 다뤄왔다”며 “양심적 병역거부, 사면권 통제, 행정수도 위헌 결정 등 헌법 분야와 공무원 노동조합, 복수노조 등 노동법 분야도 관심 대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모임은 법원 내의 여러 연구모임처럼 각 회원의 실력향상이나 역량증진 등 회원 개개인의 개발과 발전을 목표로 하는 모임은 아니다. …(중략)… 각 회원들이 재판과정 또는 사법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법원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다.”  - 박시환 대법관

“법원 내에서는 패소자들의 집단이라 폄하하고 마는 전공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이후로는 더욱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들의 다소 황당한 절규에 나도 한몫 거든 듯 싶어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 김종복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

“2003년 4월 경 민변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에 파병결정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소원을 낸 적도 있고 변호사와 법학교수님 등이 법조인 시국선언을 한 생각이 나서 소수의 판사님들이라도 완곡하게나마 의견을 표명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명백한 위헌적인 행동이라고 판단된다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신인수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최근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 누더기가 되어 통과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쉽게도 친일파 독재로 부와 권력을 잡은 이들, 그리고 이들을 세습한 무리들은 여전히 최상궁 처럼 피 묻은 그들의 손을 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젠 그들의 손아귀를 강제적으로나마 비틀어 펴 보이게 해서 과연 그들이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중략)… 그들이 사라지면 과연 누가 이 땅의 국론을 분열시켜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에.”  - 이봉수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이용훈 대법원장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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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과 선거소송에서 각각 대리인과 변호인을 맡았다. 2005년 9월 그의 대법원장 취임은 노 전 대통령의 코드 인사란 논란 속에 이루어졌다. 취임 1주년을 맞아 전국 법원을 순시하면서는 “법원이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야 한다”며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받아 놓은 진술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느냐”고 말해 파문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판사회의에서는 “판사 인사에 평판사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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