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면서 생각하고 올라가서 느끼는 民族의 靈山
오르면서 생각하고 올라가서 느끼는 民族의 靈山
  • 미래한국
  • 승인 201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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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의 국토기행] 강국난을 지켜낸다 강화 마니산(摩尼山)
▲ 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서해바다

고려에서 근대까지, 우리 조정은 강화가 지키는 땅 물 밑에서 꿈틀대는 西浿 미래 그려볼까

강화도(江華島)라, 마니산(摩尼山)을 오른다. 북으로는 백두산이요, 남에는 한라산이라, 그 한중간에 자리잡은 민족의 영산이라서, 머리산(頭山)이라 했다지.

며칠 전에 온 눈이 돌계단에 얼어붙어 미끄럽다. 쇠 난간을 붙잡으니 손은 시리지만 한결 의지가 된다. 갈수록 길이 가팔라진다. 잠시 딴 생각에 빠지면 미끄러지고, 한눈을 팔다보면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 뒤뚱대는 선생을 불안해하던 제자가 마침내 한마디한다. “이 산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는답니다”. 사고라. 그래, 넘어져 다치면 사고지. 그런데 나라가 사고를 치게 생기지 않았나?

몽고의 침입(1231~1270)에 피난 온 왕족을 받아들여 39년이나 지켜주었던 섬이다. 그 때 조판한 팔만대장경은 불후의 문화유산이 되어 있다. 한말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에 강화도조약이 이어졌지. 조선을 넘보는 외세는 왜 하필 강화로 들어 왔을까? 삼면이 바다인 반도 땅, 어느 포구라도 배 들이대면 항구인 것을.

그들이 삼강(三江)의 하구가 수도의 목젖인 것을 보았듯이, 우리 조정은 강화가 지키는 땅임을 안 것이지. 혈구(穴口), 해구(浿口)라는 옛 지명이 이미 고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담고 있고, 강주(江州)에 강도(江都)나 심주(沁州)에 심도(沁都)가 모두 반도 심장부를 흐르는 하구를 막아선 이 섬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는 것이려니.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왜 고려와 조선뿐일까? 버려졌던 고인돌이 세계 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철책을 둘렀던데, 그나마 다행이지. 지금 청동기 시대 거석문화의 유적을 챙기는 것이 때늦은 깨침이라면, 문화유적으로 가득한 섬에 러브호텔을 지어대는 것이 단견임은 언제나 뉘우칠까?

연개소문의 훈련장이 있었던 고려산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앉았고, 맞은 편 산에는 한국 공군의 기지가 있단다. 섬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진과 보, 돈대와 봉수대들도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468m라더니 꽤 높지 않아? 해수면에서 시작하니까 내륙의 산과는 다르지. 거기다 이게 어디 보통 산이신가? 민족의 안위를 지켜온 성산(聖山)이 아니신가?

단풍이 곱다더니 낙엽수가 많은 탓에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산은 우람하되 깡마른 편이다. 끝없이 이어진 국난에 언제 살찔 여가가 있었겠나? 앞은 가파르지만, 숨 돌리면서 뒤돌아보는 발 아래는 아름답다. 바다를 감싸안은 해변, 저만치 이름도 맘에 드는 외포리가 마치 내포리처럼 보이는구나. 안을 지키고 남음이 있어 밖으로 나아갈 날은 언제인가?

조간신문의 주먹만한 글자들이 가슴을 쾅쾅 친다. ‘북 핵동결 해제 선언’이라, 또 무슨 변고인가?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이 핵이 뭔지나 아는지 몰라. 이렇게 전쟁이니, 반미니, 국민을 마구 몰아세워도 되는 건가? 그런 말이 향할 주소가 우리 국민일까? 말로 떠들어서 평화가 온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늘.

영하의 날씨라는데 높은 산에 부는 바람이 이렇게 차지 않은 것은 산을 오르는 이의 즐거움이리라. 고맙게도 돌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지만, 그래도 숨이 차고 땀이 난다. 다리도 떨려 온다. 미끄러운 산길의 위태로움인지, 요동치는 안보정세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모처럼 오르는 겨울 산의 축복인지. 공기는 신선하고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

오른 쪽으로 힘 있게 뻗은 산등성이가 가지런히 작은 줄기들을 갈라내고 있다. 능선에 줄지어 선 발가벗은 나무들의 자태가 간결한데 그 위로 조금씩 얼굴을 내미는 바다가 도리어 부끄러워한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나누어 들자는 제안에 “이게 제 무기인걸요.” 이 기자의 대꾸가 프로답다.

수천 년 국난극복의 섬을 굳건히 지켜온 마니산의 정상은 넓지 않지만 당당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요새와 같이 견고히 서 있는 구조물. 참성단(塹城檀)은 단군이 천제를 봉행하던 제단이라고 전한다.

자연석을 다듬어 쌓은 제단은 원형의 석벽으로 둘러친 아랫부분과 네모나게 채워 쌓은 탑 모양의 윗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한눈에 두어 키는 좋게 넘어 보인다. 지형에 맞추어 정상부 전체를 차지하면서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失圓地方)는 옛날의 우주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였다.

다만, 이색의 말대로 ‘하늘이 만들지 않았으나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오래된 사적 앞을 체전용 성화채화 사진을 새겨 넣은 조잡한 철판으로 가로막아 놓은 꼴은 아무래도 눈에 거슬렸다. 에펠탑이 보기 싫어 바로 그 에펠탑 아래 카페에 앉는다던 모파상 생각이 났다. 그러나 春秋期不? 聖德赤懷哉. 태종의 싯귀를 당부로 새기자.

무릇 산이 다 그렇겠지만, 마니산은 특히 밑에서 우러러만 보는 산이 아니다. 오르면서 생각하고 올라가서 느끼는 산이다. 그리고 안을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는 산이다. 산에 오르면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지만, 나는 마니산 정상에서 오히려 모자를 벗어 들었다. 산정에서 관망하는 서해의 경치는 강화팔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낮은 해의 역광을 반사하는 바다의 저 현란한 출렁임을 보고 있노라면 흑백이 컬러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이 실감난다.

환영처럼 아스라이 섬들은 바다 위를 헤엄치고, 물 빠진 갯골의 촉촉한 부드러움이 손끝에 감미롭게 닿는다. 속 좁은 밴댕이, 못 생긴 삼식이, 쪼끄만 놀래미와 크고 작은 새우들이 큰물고기들과 어울려 노는 물이다. 저기가 석모도니까, 그 너머가 교동도일 꺼라.

앞쪽으로는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가 첩첩이 겹치니, 하늘이 내어준 저어새의 무대이다. 동검도 안쪽으로 동쪽에 저 강처럼 빛나는 물줄기가 염하(鹽河)렸다. 육당의 기행문을 내가 덮어 쓸 수는 없지.

“염하 흘리저어 손돌이로 나려가니/ 광성에 덕진, 초지 번차례로 목을 빼어/ 제가끔 근세사 소임 자랑인양 하여라”.

오늘따라 초지진의 포대가 미덥고 성벽과 소나무에 남은 탄흔이 더 아프다. 새로 낸 초지대교에 평화롭게도 불이 들어오고 있다. 바다 암반 위에 솟은 용두돈대가 절경이고, 결사항전한 광성보 전투가 감동적이라는 제자 이 군의 설명이 진지하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당시 우리 군의 항전을 가장 완벽한 전투의 예로 가르친다나. 최후의 병사가 군기를 놓을 때까지 한 사람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운 그들의 애국충절로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평화는 전쟁을 각오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값진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지. 바라건대 내년 음력 사월 스무 나흘, 여길 다시 올 수 있으면, 그 땐 신미양요 전투 장면이 재현되는 광성제에 참관하고, 열리고도 막힌 한강 하구를 둘러보자.

물밑에서 꿈틀대는 서해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면 더 좋고. 강도 6미(江都六味)를 기억해 두어야지. 씨없는 감과 순무에 가무락, 깨나리, 낙지와 동어가 그것이라지. 그리고 참, 프랑스가 앗아간 외규장각 도서는 되찾아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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