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가 인권 증진?
사형제 폐지가 인권 증진?
  • 미래한국
  • 승인 2010.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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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사형제 존속 논란
▲ 지난 2월 25일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출처:연합뉴스

헌재 합헌결정에 진보진영 반발

흉악범 57명 사형 확정, 97년 이후 집행 안해 


최근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김길태가 검거된 이후 ‘사형제 존속’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소장 진수희)가 지난 3월 12일 전국의 성인남녀 3,049명을 대상으로 긴급 ARS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3.1%가 범죄예방 효과 등을 이유로 사형제에 찬성했다. 응답자의 11.1%만 사형수 인권을 앞세워 반대 입장을 보였다.


사형제 존속 vs 폐지론


그러나 사형제 문제는 이번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처럼 전국적인 화제가 될 때에만 ‘반짝 이슈’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발생했던 강호순 사건 때에도 사형제 존속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에서 보듯 (합헌 대 위헌 의견이 5대4로 거의 비등)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결정은 지난 1996년 11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7대2보다 위헌 의견이 2배로 늘었다.

사형제 존속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평행선을 달려왔다. 사형제 존속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엄정한 사법적 처리를 통한 법기강 확립과 흉악범죄 예방 차원에서 사형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사형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마지노선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서는 사형제 합헌 논리로 “사형이 극악한 범죄에 한정적으로 선고되고 있는 이상 사형제도가 범죄자 생명권을 박탈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 제시됐다.

반면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형제가 또 하나의 ‘사법적 살해’로 귀결될 수 있는 만큼 피의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폐지해야 하며 무기 징역 등 대체 징벌로도 충분히 사법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형제의 오판 가능성과 국가가 한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사형제 존속이 흉악범죄 예방과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인 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헌재의 결정에서는 사형제 폐지 논리로 “사형제는 범죄자가 한 인간으로서 반성과 개선을 할 최소한의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않는 제도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된다”는 점이 제시됐다.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서 관대한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곳은 천주교인권위원회,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이른바 진보진영이다.

이들은 헌재 결정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형제도에 정당성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사형집행 재개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야 하고 국회에서 조속히 사형폐지특별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논평을 통해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종전 결정에서 재판관 의견이 7대2(합헌 7, 위헌 2)였던 데 비해 이번 결정에서는 5대4(합헌 5, 위헌 4)로 변경돼 사형제도 인식에서 큰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여 환영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형제 합헌 논란은 사실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우면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피의자의 인권만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자 인권이 피해자 인권보다 먼저?


이에 대해 사형제 존속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살인자의 인권보다 피해자 및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교 변호사는 “생명이 존엄하다는 등 추상적인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논의의 초점을 좁혀야 한다”며 “범인의 생명만을 강조하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으며 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흉악범에 대해 사형을 집행할 경우 잠재적인 피해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물론 오판하거나 사형제를 남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아예 사형제 자체를 폐지해버리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며 헌재에서 사형제 합헌을 결정한 상황에서 필요 최소한으로 충분히 존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강력범죄율이 크게 줄지 않는 상황에서 사형제 폐지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범죄자 인권과 권리 보호는 많이 신장했지만 피해자 인권과 권리 보호는 제자리 걸음이다. 사형제 폐지에 앞서 피해자 인권 보호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에서도 사형제 존치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사형제도가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며 헌재의 판결에 동의했다. 한기총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은 국가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며 사형제도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면서 사형제 유지를 권고하는 문서를 재판관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태가 오히려 사형수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신이 죽는 시기도 모르고 수용시설에 갇혀 있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사형수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23명을 사형에 처한 이후 13년간 사형을 한 번도 집행하지 않아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는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 부산 여중생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길태 /출처:연합뉴스
현재 사형수는 부녀자 10명을 납치·살해한 강호순, 혜진 예슬 양 살해범 정성현 등 총 59명이다. 이 가운데 57명은 사형이 확정됐고, 2명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법조계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김길태 사건’ 이후 사형제 폐지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11일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한 수법으로 범행을 한 성폭행 살인범과 연쇄살인범은 신속히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이 정의와 법치주의 이념에 맞다”고 주장하며 사형제 논란의 포문을 열었다.

검사 출신의 안 원내대표는 “사형이 확정된 자 가운데 증거가 명백해 의심의 여지가 없고 짐승보다 못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엔 사형을 집행하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며 사형제 부활을 주장했다.

판사 출신인 이주영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도 지난 3월 12일 “사형제가 주는 범죄예방 효과,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꼭 증명된다고 할 수 없지만 범죄예방 효과와 관계없이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징벌응보 관점에서 국민들은 사형제가 유지돼야 된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법은 사형확정 판결이 내려지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된다는 것이 의무조항으로 돼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지키지 않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회 내에서는 사형제를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종신형 대체법안 계류 중

 

이번 18대 국회에서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사형제를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법률안을 발의했고(2008년 9월 12일),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박선영 의원과 마찬가지로 사형제를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법률안을 발의(2009년 10월 8일)한 상태다. 이 두 법률안은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만 법안을 발의하고 충분한 여론 수렴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지난 15대 국회때부터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난 2월 25일 헌재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면서 보충의견을 통해 “사형제 존폐 문제는 국민의 결단을 통해 입법적으로 개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회가 일시적인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사형제 존폐’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해갈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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