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과서 전쟁’
미국의 ‘교과서 전쟁’
  • 미래한국
  • 승인 201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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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교과서 내용 두고 보수·진보 대결

교과서 내용을 둘러싸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 간 대결이 한창이다. 이른바 ‘문화전쟁’(Cultural War)의 전선이 교과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전쟁이란 낙태, 동성애, 크리스마스 등의 이슈에 대한 미국 내 보수와 진보 간 극명한 시각 차이로 양측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팽팽한 대결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교과서를 둘러싼 ‘문화전쟁’의 전장은 현재 텍사스주다.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초중고생들의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15명으로 구성된 교육위원회가 초중고 공립학교 교과서 내용을 수정 권한을 갖고 있다. 이들이 수정해서 세운 기준에 따라 출판사들은 교과서를 출판해 주내 480만 명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배포한다. 텍사스주는 인구면에서 미국 내 2위이고 최대 교과서 시장이라 이곳에 결정되는 교과서는 사실상 미국 전체 공립학교에 영향을 주고 교과서 내용 수정은 10년에 한 번 이뤄지는 것이라 텍사스 교과서 내용 수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현재 텍사스주 교육위원회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 성향의 위원들이 교과서에 보수적 내용을 강화하자 진보세력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교과서 내용 수정이 시작되면서 이 충돌은 커졌는데 지난 3월 12일 10 대 5의 표결로 보수적 위원들이 주장해온 내용으로 교과서가 개편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오는 5월에 최종표결이 남아 있지만 보수 성향의 위원들이 많아 역시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유지되거나 변한 텍사스주 교과서의 대표적 내용은 이렇다.

진보적 위원들은 역사책에서 시대를 구분할 때 ‘BC’와 ‘AD’ 대신 ‘BCE’와 ‘CE’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지만 그대로 ‘BC’와 ‘AD’가 쓰이게 되었다. ‘BC’와 ‘AD’는 각각 ‘Before Christ’와 ‘Anno Domini’의 약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역사를 구분하는 의미다. 하지만 ‘BCE’와 ‘CE’는 각각 ‘Before Common Era’와 ‘Common Era’로 예수 그리스도를 뺀 개념이다.

미국 역사책에서 토마스 제퍼슨이 18, 19세기 계몽주의를 불러 일으킨 인물에서 빠지고 대신 존 칼빈이 들어갔다. 진보주의자들은 토마스 제퍼슨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뺐다고 비판한다.

또 1980년대와 90년대 보수주의자들의 부상, 즉, ‘미국과의 계약’, 헤리티지재단, 도덕적 다수, 전국총기협회 등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뿐 아니라 독일계 및 이탈리아계 미국인도 수용소에 갇혔다는 사실이 추가돼 그동안 인종 차별 차원에서 일본계 미국인만 갇혔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려고 했다.

경제책에서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경제학자로 자유시장경제이론의 양대 거목인 밀턴 프리드만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추가되었다. 그동안은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케인즈만 있었다.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자유기업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자본주의라는 말의 부정적 이미지 제거 의도라는 게 중론이다.

사회책에서는 민주당의 ‘위대한 사회’ 정책이나 소수민족우대정책이 ‘예기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그동안 모든 사회문제를 국가나 사회탓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십대 자살, 폭력, 성, 마약 등의 사회문제에 개인책임이 강조되었다.

미국 정부를 표현할 때 ‘민주적’을 빼고 ‘헌법 공화적’이 삽입되었다. 1960, 70년대 힙합문화를 중요한 미국 문화운동으로 넣으려는 진보위원들의 노력이 무산되었다. 보수 성향의 돈 멕레로리 텍사스 교육위원회 위원은 이 수정에 “현재 학교가 지나치게 진보좌파로 치우쳐 있어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역사가 많이 비뚤어져 있다”며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미국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책은 마르크스적 시각에서 미국역사를 본 하워드 진(Howard Zinn)의 ‘1492년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민중 역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 From 1492 to the Present)이다.

이 교과서 전쟁은 미국의 문화전쟁이 얼마나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아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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