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위장 좌파의 ‘우파 본색’
상업적 위장 좌파의 ‘우파 본색’
  • 미래한국
  • 승인 2010.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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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진중권
▲ 출처 연합


출판사 ‘북마크’가 일반인들의 사회 및 정치 인식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들의 궤변적 논리를 비판하는 책 <억지와 위선(2009)>을 펴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 비평을 요약, 발췌해 게재한다.

2008년 8월 ‘시사저널’의 언론인 영향력 조사에서 시사 블로거 진중권 씨는 19위에 올랐다. 언론인도 아니고 언론사를 운영하지도 않은 진 씨의 순위 진입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진 씨의 언론 영향력은 그가 주로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리는 글을 수십여 개의 인터넷 신문사들이 인용하면서 확대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진 씨의 글은 대부분 타인을 허위사실로 하는 인신공격인데 언론이 인용해준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 씨의 이런 글을 언론사들이 대부분 취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진 씨의 글이 인신 공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클릭 수는 높지만, 과거의 ‘자살세’ 발언이 물의를 빚자 언론사에서도 그 위험성을 인식한 것. 둘째, 진 씨는 물론 그의 글을 인용한 언론사들도 소송에 휘말리면서 언론사들이 크게 경계하기 시작한 것. 셋째, 진 씨가 한예종 교수이지만 강의도 하지 않고 1,700만 원을 부당하게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자, 진 씨의 MB 정권 비판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 등이다.

진 씨가 독일에서 귀국한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11년간 지식계와 인터넷 시장에 무풍지대를 달려온 힘은 무엇일까? 바로 이점을 분석한다면, 진 씨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식계와 언론계 그리고 인터넷 여론이 어떻게 바로 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진중권 글은 거짓말과 왜곡 천지”
 

진 씨의 위험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놀랍게도 진보적 중도 지식인이자 안티조선의 선구자인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이다. 이들은 2002년 지자체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진 씨가 민주노동당의 이문옥 후보를 지원하면서 뜻하지 않게 충돌하게 됐다. 진 씨는 이문옥 후보를 지원하면서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던 민주당 지지층을 향해 이문옥 씨를 지지할 것을 강권한다. 이러한 인터넷 논쟁이 격해지자 진 씨는 강준만 교수를 향해 “이문옥 후보를 지지할 것”을 재차 강요, 강준만 교수는 이에 월간 《인물과 사상》8월호에 <진중권의 소아병적 정의감에 대해>라는 글로 강력하게 반박한다. 이 과정에서 강 교수는 진 씨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힌다.

<지금 독자들은 나의 ‘자신만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진중권과 논쟁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놀라움은 더해갔다. 진중권의 글은 시종일관 사실에 대한 교묘한 거짓말과 과장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누굴 지지하느냐 하는 정치적 판단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어떤 주장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인 것이다.

진중권이 텍스트주의자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나 역시 그를 텍스트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과공(過?)이었다. 진중권을 텍스트주의자라고 부르는 건 진짜 텍스트주의자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진중권은 텍스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법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논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과 과장과 왜곡으로 요리를 하고야 만다.

진중권은 왜 그러는 걸까? 이건 진중권의 인성(人怯)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라 말을 아끼겠다. 진중권 자신이 한 말에 근거해 조심스럽게 살펴보자면 진중권의 논객 행세는 장난, 놀이 또는 오락 행위다. 진중권은 남을 약 올리고 골탕 먹이는 데에서 쾌감과 더불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논쟁 당시 이른바 진보좌파 계열에서는 객관적으로 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안티조선의 분열을 우려하여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이 싸움을 말렸다. 강준만은 이에 대해서도 “우리 편에 유리하다면 잘못된 행위도 덮어주는 패거리주의”라며 이런 분위기를 비판했다. 강준만의 직설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에 대한 진보 좌파의 평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2009년까지 진중권은 논객의 삶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미국 언론에까지 나가 거짓말

문제는 노무현 정권 말기 즉 2005년을 넘어가면 한국사회의 논쟁이 급격히 전문화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사회적 파장이 일었던 논쟁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조작 여부, 심형래 감독의  <디워>, 2008년 광우병 논쟁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인터넷 민주주의 부분이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조작 문제에서 진중권은 강력한 황우석 비판자로 등장한다.

진중권은 2005년 11월 24일 자신이 진행하던 SBS <진중권의 시사전망대>에서 “(MBC PD 수첩에) 흥분한 네티즌들이 난자 채취 과정에 혹 윤리적 문제가 있었어도 국익을 위해 진실을 덮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1930년대 독일의 나치에서나 나올 법한 무서운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진 씨는“황 교수는 아무 난자나 사용하고, 방송은 알고도 침묵하는 게 옳을까요? 다섯 살만 먹어도 어느 게 옳은지 알 것”이라며 “초보적인 분별 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 사회의 애국심은 온통 이성 없는 감성의 덩어리인 모양”이라며 황우석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을 독일의 나치와 비교했다.

이러한 진 씨의 공격 방식은 2007년 8월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참고로 <디워>는 황 교수의 연구와는 전혀 다른 문화 상품으로 글로벌 시장 가능성이 논점의 핵심이었다. 즉 옳고 그름이 정확히 판단될 수 없고, 오직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차원의 논쟁이었다. 그러나 진 씨는 이런 문화 영역에서조차도 찬반이라는 이분법을 강요하며, <디워>의 미국시장 진출을 바라는 네티즌들을 또다시 나치로 몰아붙였다.

애초에 진중권은 <디워>논쟁을 이끌어나갈 만한 전문성이 없었다. <디워>논쟁은 컴퓨터 그래픽, 괴수영화, 미국 대중문화 시장 전문가들이 섬세하게 논의를 해야 하는 문제였다. 진중권은 위 세 가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다. 그렇게 논쟁을 끌어가려다 보니, 고대의 그리스 비극론으로 <디워>를 비판하고 독일의 나치즘을 끌고 들어오는 무리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진중권 하나 때문에 <디워>는 아무런 생산적 논쟁 없이 진중권 본인만 뜨고 논쟁이 끝나게 된 것이다.


상습적 거짓말은 실력 부족 탓

<디워> 이후 진중권은 이명박 정부 들어 또 다른 영역의 논쟁 시장에 진출한다. 광우병 파문과 인터넷 민주주의이다. 광우병 문제는 의학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PD 수첩>의 보도 하나만 보고 “청와대 내각은 대한민국의 국가 두뇌인데 이분들 하는 거 보면 지금 그 대한민국의 두뇌가 광우병에 걸린 소 두뇌 같다”며 선동을 시작했다. 특히 진보신당의 컬러TV 카메라와 함께 집회 현장을 누비며 아예 집회를 주도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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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광우병의 후폭풍 격으로 논쟁이 시작된 인터넷 민주주의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인터넷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랐고, 정책 역시 세계 최초로 인터넷 신문법을 만든 선진국이다. 이미 인터넷 정책은 아무나 토론을 할 수 없고 축적된 연구 결과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전문적 논쟁이다. 진중권은 이 분야에서도 비전문적 식견으로 논쟁을 이어 나갔다.

강준만은 이미 일찌감치 진중권이 좌파는 커녕 진보도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사실로 드러났다. 진중권은 좌파가 아니다. 진중권은 애국우파 진영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철저한 친미국, 친시장, 친기업, 반북, 반김정일주의자이다. 이제 하나하나 증거를 제시하겠다.

진중권이 완벽한 우파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는 <디워>논쟁 때였다. 그는 <디워>의 미국 진출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아예 미국은 대한민국과 같은 후진국은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신성한 제국이라는 인식까지도 달해 있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영화는 미국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미국 문화가 전 세계 인간들의 문화거든요. 그런 저변이 있기 때문에 미국 영화가 전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에요. (2007년 11월 1일 프레시안 인터뷰)

심 감독이 하시는 일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한국 충무로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거든요. 우리보다 경제력이 몇 배인 독일이나 프랑스도 그런 것은 하지 않아요. (2007년 8월 9일 MBC ‘100분토론’)

진중권은 “미국의 영화는 자본과 미학, 그리고 평론이 결합된 최고의 수준”이라며 애초에 한국영화는 미국 시장에 성공할 수 없다는 투의 단언을 내리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일찌감치 2002년 아프간 파병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찬성해왔다는 점이다.

진중권의 친(親)시장, 친기업적 사고도 역시 똑같다. 어느 유력 기업인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진중권은 <디워>논쟁 당시 CBS 라디오 <김현정의 이슈와 사람>에 출연하여“휴대전화를 살 때 제조사 사장이 고생했다고 해서 제품의 결함을 눈감아줘야 하냐”며 네티즌들의 비난을 일축했다.

진중권은 지금 당장 한미 FTA와 한 - EU FTA 전도사로 나서도 충분할 정도의 확고부동한 시장 개방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모든 FTA를 반대하고 있는 진보신당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면 안 된다”

진중권은 기업에 대해서도 규제철폐주의자이다. 진중권은 야후 토론에서 포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점이 제시되었을 때 “포털은 어차피 기업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진중권의 반(反)북, 반(反)김정일 의식은 조갑제 대표나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을 역시 능가한다. 서해교전 당시 민주노동당 게시판에는 꽃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으로 알려진 아이디 ‘연평총각’의 목격담이 화제가 되었다. 다들 ‘연평총각’의 진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 진중권은 과감히 “연평총각의 글은 주사파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다”라며 연평총각을 맹공격했다.

한번 진중권이 그동안 쓴 글을 면밀히 검토해보라. 진중권은 반미적 글을 쓴 적이 없다. 심지어 광우병 파동 때 집회 현장을 누빌 때 미국을 비판하지 않고 오직 이명박 정부만 비판했다. 진중권에게 미국은 성스러운 나라이다. 또한 진중권이 기업을 비판한 적이 없고 시장을 비판한 적이 없다. 진중권은 본인 스스로 자랑스럽게 밝히듯 시가 6,000만 원짜리 경비행기를 몰고 다니고 이를 공개하고, 자신의 연봉이 1억5,000만 원에 달한다는 것도 기자에게 알려 주었다.


출세 가도에 좌파 브랜드가 절대적 역할

그럼 대체 진중권은 왜 자신을 좌파로 위장하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지식계의 비극이다. 독일 유학에 실패한 진중권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돌아왔다. 이때부터 지식계와 문화계에서는 좌파 권력이 득세하기 시작하다 노무현 정부 때 그 절정에 달한다. 자신을 우파로 칭한다거나 친(親)시장주의자라 칭하는 논객은 방송과 포털은 물론 기업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웠다. 진중권이 이 때문에 좌파로 위장했는지는 그 본인만 알지만, 진중권이 우파로 칭했다면 절대 10년간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강준만은 이런 진중권의 좌파 브랜드와 독일의 유학 경험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진단한다. 진중권은 얼치기 진보 의식을 갖고 있는 젊은 기자들에게 바로 이러한 좌파 브랜드와 독일 유학의 실패 경험이 먹혀버린 것이다. 젊은 기자들은 “설마 좌파이고 독일까지 갖다온 사람이 거짓말을 일삼을까”라는 학벌주의와 좌파 숭상주의에 입각해 진중권의 허위사실 글을 모두 인용하게 된 것이다.
진중권의 비상과 몰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문제이다. 진중권이 맹활약하던 시기, 대한민국 지식계는 전문성 없는 좌파들의 선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점차 사회가 전문화되고 좌파 정권이 종식되면서 진중권은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언론에서 취급을 하지 않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진중권은 한예종에서 1,700만 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자 느닷없이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파 본색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진중권의 몰락 과정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식계 흐름을 분석하는 일이다. 진중권이 자신이 떳떳하게 우파임을 선언하는 날, 대한민국 지식계가 정상화되었다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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