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에 눈 뜨는 인권위
‘북한인권’에 눈 뜨는 인권위
  • 미래한국
  • 승인 201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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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북한인권팀 구성 나서
▲ 2009년 7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의 북한인권 사업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출처:뉴시스


지난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북한인권 상황에 침묵해온 관행을 하나씩 깨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눈치를 보며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입장 표명을 극도로 자제, 사실상 방치해온 인권위가 정권 교체 이후 기존 입장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의 북한인권 가이드라인은 2006년 12월에 발표한 ‘북한인권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 표명’이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에서의 인권침해 행위는 위원회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에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규정을 통해서도 북한주민 인권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규정들을 근거로 내세운 인권위는 국내외적으로 제기돼온 수많은 북한인권 문제들을 줄기차게 거부해 나갔다. 유엔 권고에 따라 국제인권법 실현을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인권위로서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 국민의 인권을 늘 문제 삼으면서도 정작 같은 동포인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눈과 입을 굳게 닫아온 것이다.

2007년 10월 4일 정상회담 직전에도 북한인권 문제를 의제로 채택할 것을 권고하자는 안건이 올라왔으나 인권위는 이를 거부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했다가 2007년에 갑자기 ‘북한인권 개선 요구는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고 기권표를 행사했을 때에도 인권위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특히나 북한을 대한민국 실효 지배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인권위는 이라크와 미얀마 등 다른 나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왔다.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황장엽)는 “좌파정부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했다”면서 “대한민국 헌법에 북한주민도 우리 국민이라는 개념을 망각하고 김정일 독재정권 치하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데 소극적이거나 거의 외면하다시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좌파정부 10년 간 북한인권 외면

이 단체는 “지금도 한반도 북쪽에는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2000만의 주민들과 김정일 정권에 의해 임의로 구금돼 가족까지 해체된 채 죽어 가는 20만 명의 정치범들이 있다”며 “국가인권위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들의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인권위는 북한인권 관련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북한인권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북한인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에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증언을 토대로 북한주민의 인권 상황을 점검했으며 이듬해에는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의 탈북여성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국가인권위가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에 의뢰한 것으로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경험한 탈북민 17명 등을 대상으로 간접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 자료를 영문으로 옮겨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에 배포할 예정이다.


정권 교체 이후 北인권에 적극적인 인권위

이 같은 변화는 2009년 7월 현병철 위원장이 임명된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에 “지난 정권에서 좌편향 행보를 보인 인권위가 제 역할을 통해 균형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 위원장을 임명하며 ‘인권위의 북한인권 사업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 인권위는 최근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으며 북한인권 단체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2009년 세계인권선언의 날(12.10.)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에 ‘대한민국 인권상’을 시상했다. 국내 북한인권 단체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그동안 북한인권 외면 논란을 빚어온 인권위가 북한인권 단체에 인권상을 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란 논평을 내놓았다.

▲ 2009 세계인권선언일을 앞두고 북한인권단체연합회 회원들이 북한인권 개선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출처:뉴시스
국가인권위는 지난 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의견 표명 여부를 두고 세 차례나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날선 공방 끝에 인권위는 지난 4월 12일 ▲북한인권법안 제정 촉구 ▲북한인권 관련 민간재단 설립 반대 ▲인권위 안에 북한기록보존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공식 의견을 표명키로 결정했다.

전원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3명), 비상임위원(7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되며 재적위원 과반수가 찬성해야 안건이 의결된다. 당시 전원위원회 표결 결과는 5대 5로 찬반이 극명히 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현병철 위원장이 찬성표를 던져 6대 5로 가결된 것이지, 인권위 내부에는 북한인권 문제 거론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도 우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에서 북한인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조영국 사무관은 “북한인권에 대한 냉랭한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이번 의견 표명에 대한 반대 입장 또한 거세다”며 “현재 김태훈 비상임위원(찬성 입장)이 전원위에서 결정된 내용을 정리해 국회에 넘길 초고를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반대 입장 5명의 의견도 함께 덧붙여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 2월 초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공식 의견을 제출하자는 안건을 낸 당사자이기도 한 김태훈 위원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안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도록 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정부가 설립해 지원할 수 있는 민간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은 재고돼야 함”을 주장했다. 지금의 인권위 업무와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 위원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1961년 서독 중앙범죄기록소와 같이 남한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 내 인권 유린자들을 통일 후 형사소추 할 수 있다는 경고를 줌으로써 인권 침해를 자제토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또한 “향후 북한 급변사태 이후 북한의 인권 범죄자 처벌이 가능해질 때를 대비해 관련 기록 정리를 ‘북한인권’ 전반이 아니라 ‘북한의 반(反)인도범죄’에 국한해서 보존소를 설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4월 25일 북한인권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북한인권팀’도 신설했다. 인권위 측은 “최근 업무 조정을 통해 북한인권팀을 만들고 팀장에 사무관 직원을 임명했다”며 “북한인권팀 설치는 현병철 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팀장과 조사관 2명으로 이뤄진 북한인권팀은 탈북민과 북한인권 관련 세미나 및 토론회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북한주민과 국군포로·납북자, 이산가족 문제 등 주요 이슈별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인권 관련 로드맵도 마련할 계획이다.

국가인권위의 이 같은 입장 변화에 대해 ‘인권위마저 북한인권에 눈을 감았던 좌파 정권 시절의 추태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는 고무적이다’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인권위가 2008년 업무계획부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 강화’를 6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포함시켰지만, 일부 북한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북한인권 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고 밝힌 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는 같은 민족의 도의적 책무


하태경 대표는 “이미 흠집이 난 국가인권위가 아닌 북한인권을 전담하는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인권 문제는 민간 트랙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 전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사람이 바뀌어야 정책도 바뀌는데 북한인권에 소극적이던 인물들이 인권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며 “인적 구성이 변하지 않는 한 겉으로만 바뀐 척할 뿐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권위 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북한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강조한 후 현 위원장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나 한나라당이 북한인권법안 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정치적 맥락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정치화된 인권위가 그동안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북한인권위원회’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시각이 오히려 문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올 초에 내놓은 ‘2010년 세계의 자유’ 보고서에서도 북한은 ‘최악 중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인권 전문가들은 “인권위는 이제부터라도 북한의 인권 침해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규탄하면서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북한 정권을 계속 압박해 개선을 촉구해야 함”을 제언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남북관계 특수성을 고려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제한적·소극적 입장을 취해왔지만 인권 문제를 도외시하는 남북관계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인권 문제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도의적 책무이며 억압받는 북한주민을 외면하고서는 올바른 통일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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