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백령도에서 벌이는 1人 심리전
[현장취재] 백령도에서 벌이는 1人 심리전
  • 미래한국
  • 승인 201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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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이민복 씨가 스스로 개발한 풍선의 타이머와 대북 삐라. 삐라는 북한 주민들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짙은 해무(浿霧)와 봄비로 뒤섞인 백령도. 지난 12일, 남한의 최북단 이 곳 백령도에서 세이브NK (舊북한구원운동 : 대표회장 이종윤 상임회장 김상철)가 후원하는 대북 삐라풍선이 날려졌다. 남북간 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한이 삐라문제를 신경질 적으로 거론하는 배경을 보면 풍선삐라에 부쳐진 ‘공중어뢰’라는 별명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북한은 모내기 전투가 한창입니다. 여기 백령도에서 삐라를 날리면 황해도 연백평야 일대에 뿌려지지요. 북한 주민들에게 삐라는 일종의 ‘알권리’에요.” 발사자(?) 이민복 씨의 말이다. 삐라를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라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봤다.

“북한은 철저한 폐쇄사회지요. 폐쇄사회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외부세계의 정보에요. 북한인민들에게는 왜 자신들이 굶어죽고 맞아 죽는지 그 이유를 알권리가 있어요. 그들로 하여금 진실에 눈뜨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이 삐라에 어디 거짓말이 한 군데라도 있습니까?”

이민복 씨는 이번 풍선날리기에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동영상 CD와 1달러 지폐를 붙였다. 거대 풍선에는 수소 가스가 채워지고 삐라 보따리에는 스스로 연구개발한 타이머가 부착된다. 타이머의 시간은 인공위성이 전해주는 10km 상공의 풍속을 계산해 맞춰진다. 타이머가 풀리면 풍선에 매단 보따리가 열리며 10만여 장의 삐라가 10km 상공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살포된다. 비용이 궁금했다.

“군에서 말하길 북에 삐라를 날리는 데 한 해 30억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지금 날리는 이 타이머 풍선삐라는 40만 원 정도 들어요. 10만 장 기준으로 치면 그 비용이 정부사업의 10분의 1도 안 될 겁니다.”

이민복 씨는 원래 북에서 대우받던 농업과학 엘리트였다. 그가 북을 탈출해 남한에 온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철두철미하게 믿었던 주체사상과 6.25전쟁의 사실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이 그의 탈북 동기였다. 6·25가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는 사실이 왜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일까?

“북은 미국에 대한 분노로 유지하는 군사사회에요. 김일성,김정일이 신격화 될 수 있는 것은 ‘미제가 북한을 침공했고 조선반도를 갈라놓았다’는 전제로 그런 미국에 맞서 투쟁하는 나라는 오로지 북한이 유일하다는 자긍심 때문이지요. 그것이 주체사상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6·25가 미국이 아닌 김일성이 먼저 일으켰다가 패퇴해서 지금의 휴전선이 생겼다면 모든 게 어긋나고 거짓말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생각해 보세요. 몇 십 년을 속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될 때의 기분이라는 걸.”

이민복 씨의 삐라에는 ‘만악의 근원이 사라져야 인민들이 굶어 죽지 않는다’라고 써 있었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정일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높아진 까닭에 삐라의 문구는 북한 주민들의 가슴에 절절히 파고드는 면이 있다.

“김정일도 대북 삐라가 두려운가 봅니다. 달포 전에 화폐개혁과 관련해서 ‘악의 근원을 제거하자’고 쓴 이 삐라가 평양 일대에 떨어졌는데 김정일이 보고를 받자마자 평양을 벗어나 자강도 안가로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어요.”

공중어뢰의 위력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증언이었다. 이민복 씨는 이 날 백령도에서 총 7개의 풍선, 삐라 약 40만 장을 북에 날렸다. 세이브NK의 ‘북한구원’이라고 쓴 공중어뢰가 바람을 타고 북녘하늘로 사라질 쯤엔 짙은 해무(浿霧)도 걷히고 눈부신 태양이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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