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일이 없는 나라
건국일이 없는 나라
  • 미래한국
  • 승인 2010.08.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길] 편집인 김범수


대한민국에는 ‘생일’이 없다. 지난 8월 15일 성대하게 거행된 광복절 기념행사 그 어디서도 건국(建國)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인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자신이 속한 이념적 스펙트럼 혹은 시대적 학풍에 따라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제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고, 이에 많은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건국일이 언제인지, 건국대통령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건국역사와 국가적 정체성을 모르는 나라와 국민이 과연 21세기 사회적 ‘소통’과 남북통일을 이루고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구한말 대한제국과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아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공식 선포함으로써 건국됐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페이지12~16) 이 대통령이 8월 15일을 선포일로 정한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진정한 광복(光復)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의 의미뿐 아니라, 영토·국민·주권을 가진 온전한 독립국가를 설립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건국의 의미를 갖출 때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8·15 광복절은 한반도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체제인 대한민국 건국과 독립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광복’의 사전(辭典)적 정의가 해방의 의미보다 독립의 의미에 가깝고, 이에 애초 국경일 제정(1949년)의 취지에 따라 8·15 광복절을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을 기점으로 하는 ‘독립기념일’의 의미로 지켜야 한다는 양동안 교수의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페이지 18~19).

한편 우리 사회에는 1948년 건국의 의미를 부정하는 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정부가 세종로에서 건국6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을 때 민노당 등 야당은 이에 반발해 백범기념관에서 건국 89주년 기념행사를 별도로 가졌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본 것이다. 그나마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전면 부정해 왔던 기존의 친북좌파들의 입장보다는 진일보한 것이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건국절이 무슨 말이냐, 건국은 단군 할아버지때 했지”, “1948년 정부수립은 분열주의자의 승리였다” 등의 말을 남겼다. 단군운운 발언은 ‘민족’과 ‘국가’의 개념을 혼동한 것으로, 같은 논리대로라면 오늘날 이스라엘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54년 5월 14일을 건국일로 기념하는 대신 모세의 출애굽을 건국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이 된다. 1948년 정부수립을 ‘분열주의자의 승리’로 본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평소 그의 인식을 반복한 것이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 단체나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과 정체성을 깨닫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과 예의, 건국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우리의 지금 노력이 아직도 미완인 힘겨운 건국 과정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