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민주당 ‘탈 오자와’의 환상
日 민주당 ‘탈 오자와’의 환상
  • 미래한국
  • 승인 2010.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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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케이신문 발행 正論 8월호]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悧) 전 중의원 의원
▲ 간 나오토

정당의 이합집산을 생업(生業)으로 하는 ‘야미 장군(暗將軍)’

참의원 선거 결과 따라서는 대연립 할 수도


하토야마 정권이 퇴진을 발표한 6월 2일부터 8일 심야까지 일본에 정부는 없었다. 하토야마의 머리는 이미 총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고 간 나오토는 아직 총리가 아니었다. 4일 의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은 간 나오토와 여당은 그 사이 아무렇지 않게 일본에 정부 없는 공백 상태를 만들었다.


좌익에서 태어나 좌익에서 자란 정권

6월 4일 민주당 대표가 되고 의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은 간 나오토 인사의 키워드는 ‘오자와 괴뢰정권으로부터의 탈각(脫却)’이다. 그러나 간 나오토가 이를 발표한 4일 현재 그는 하토야마 내각의 부총리로 자신도 그 ‘괴뢰 내각’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하토야마 사임과 간 나오토의 선임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상표의 사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괴뢰 내각’의 본질은 ‘좌익’이다.

▲ 오자와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언동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 내각의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다. 이 지지율 저하를 하토야마나 오자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내각의 얼굴을 바꾸면 지지가 올라갈 것이라고 간 나오토나 민주당이 생각한다면 그들은 정치인이라기 보다 파벌꾼이다.

확실히 하토야마는 무능했다. 한 나의 총리로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서 실수를 되풀이했고 금전문제에 대한 변명은 국민을 실망하게 했다. 하토야마로부터 금전문제를 지적받고 오자와도 함께 사임했다.

그러나 급속하게 일어난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지지율 저하는 특히 외교와 국방에 관한 국민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은 우애라든가 동아시아공동체를 논하는 지도자에게 국가와 자신의 안보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토야마 내각의 노선은 오자와의 노선이었다.

간 나오토가 참으로 ‘오자와 괴뢰로부터의 탈각(脫却)’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파벌 차원이 아니고 일본의 국방력 강화를 결단해 일·중 뒷거래를 단절해야 한다.

오자와 이치로는 27세에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돼 40대에 자민당 간사장이 되고 후에 자민당을 분열시켜 호소가와 연립내각을 만들고 약 15년 동안 야당 생활을 거쳐 다시금 여당 간사장이 됐던 사람이다.

나는 민사당(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에 찬성했던 당시 유일한 일본 야당)이 해산했던 1994년 말 이후 약 10년 동안 오자와와 같은 당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친교를 맺은 적은 없으나 오자와를 관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자와 이치로는 전후 정치의 상징

▲ 일본 의사당
오자와는 전후체제에 의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간 나오토 정권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야당을 통틀어 일본 정치가 전후체제에 머물고 있는 한 ‘탈 오자와’는 무리한 것이다.

오자와적인 것, 전후정치적인 것은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자민당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아직도 이념이 무엇인지 모른 채 정국에만 좌우되는 ‘대연립 소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대의 상징인 오자와가 정당의 이합집산을 생업으로 해 축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와 같은 이합집산이 가능하고 오자와는 이에 개입하는가. 국방과 외교라는 국가 존립에 지극히 중요한 분야에 몰두하는 정치인을 배제해 국방과 외교에 무관심한 정치인을 양성하는 전후체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를 돌이켜보면 민사당은 1965년 초 당대회에서 ‘자사(자민당과 사회당) 2대 정당은 이미 환상에 지나지 못한다’는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이 양당이 이해에 얽혀 뒷거래를 한 것이 밝혀졌지만 오자와는 젊은 나이에 이 자민당의 간사장을 경험했다.

1993년 오자와 세력이 자민당에서 나와 사회당과 손잡고 호소가와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를 본 자민당이 그 다음해에 같은 형태로 사회당과 손잡고 무라야마 내각을 만들었고 이후 고오메이(公明)당과 연립해 고이즈미 내각을 거쳐 아소 내각까지 연명한다.

이 사이 오자와는 야당 당수로서 신진당을 해산한 후에 소수의 자유당을 이끌고 자민당과의 연립인 자자(自自) 연립을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2003년 스스로 만든 신진당 해체로 결별했던 민주당에 들어가 당대표가 되고 자민당과 대연립을 추진했지만 당내 반발로 불발에 그친다. 곧바로 정권 교체를 부르짖기 시작해 작년 9월 총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사민당을 끌어들여 하토야마 내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볼 때 사회당이 여야당을 왔다 갔다 했던 그야말로 이념 없는 전후체제라는 컵 속의 움직임이다. 여기에 오자와가 개입하고 있다.

도대체 이와 같이 움직여온 정치인에게 어떤 일관된 정치 이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이념을 바꾼다는 점에 오자와의 일관성이 있다.

세계 정치를 살펴봐도 정치집단이 이념 없는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나라는 활력을 잃고 타국의 관여를 받는 구실이 돼 쇠퇴하고 만다. 제국주의 시대라면 타국에 침탈당해 망했을 것이다.

▲ 일본 중의원 회의
2005년 여름 총선거 이후 5년 동안 고이즈미 이후 간 나오토까지 6명의 총리가 있었다. 이와 함께 소선거구가 된 후 선거 때마다 많은 ‘칠드런’이라는 정치적 미숙아가 여야를 번갈아가며 생겨 국회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이용해 오자와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따라서 ‘탈 오자와’란 이런 흐름을 단절하는 것이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간 나오토

오자와는 사람을 모시는 사람이 아니다. 모심을 받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모심을 받았는가. 분명히 말해 시시한 사람들로부터 모심을 받고 있다. 이는 정당 관료, 수완꾼 즉 단순한 기술꾼 예스맨이다. 오자와는 예스맨에 둘러싸여 사람을 만나고 당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 혼자 터놓고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작년 12월 민주당 국회의원 140명 이상을 북경에 데리고 가서 의기양양해 했던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비서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그를 비서로 쓴다. 외유를 할 때는 그 비서인 국회의원이 당내의 동행자를 선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오자와와 동행해 해외에 나가 외국 요인과의 회담 말석에 앉을 수 있었던 의원은 인선의 뜻대로 ‘충견(忠犬)’이 된다. 이들이 오자와 칠드런으로 불리게 되고 작년 12월 북경에서는 일거에 칠드런이 140명이 된 것이다.

예전부터 오자와는 년 1회 정도 방문단을 이끌고 북경을 방문했다. 이를 일중 교류를 심화하기 위한 ‘장성(長城)계획’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만을 염두에 둔 국가전략의 발상은 오자와에게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장성계획’ 전에는 미국을 상대로 정기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어떻든 오자와가 이런 단체여행을 실시하는 목적은 자금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왔다.

그런데 모심을 받는 사람인 오자와가 언제부터 좌익으로부터 모심을 받게 됐는가. 그가 자민당의 다나카파에서 나와 신생당, 다음의 신진당에서 자유당 그리고 민주당으로 옮기는 동안의 언제쯤부터 그는 좌익과 짝지어 정권에 밀착하려 했는가.

이는 ‘자민당 오부치 정권은 우리와 약속한 정책을 실현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자자(自自) 연립을 해소한 무렵이 아니었을까.

이 무렵 그는 은밀하게 사민당의 도이 당수나 간부들과 정기적 회식 모임을 가졌다. 그때 이미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외국인 참정권 부여를 약속한 위에 유엔 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자유당은 집단적 자유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음을 발표했다. 자자(自自) 연립 이탈 구실로 썼던 ‘우리 자유당 정책을 실현할 의사가 없는’ 것은 오부치 정권 쪽이 아니라 그때 이미 좌익에 축을 옮겨 놓고 있었던 오자와 본인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2003년 민주당의 합병까지 곧장 외길이었다. 그리고 이 정당 편력의 과정은 축재의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오자와가 기대고 있는 좌익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이야말로 전쟁 전의 국제공산주의운동(코민테른)이 일본의 전후체제에 남겨 놓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코민테른의 현존하는 유일한 계승 조직이 오자와가 기대고 있는 중국 공산당이다.

이 운동이 노리는 것은 일본의 해체. 공산화이다. 이를 위해 코민테른과 일본의 좌익은 먼저 천황제를 타파하라고 지령하고 더 나아가 공산주의자가 신분을 감춰 부르조아 조직 속으로 들어갈 것을 지령했다. 이 조직이 민주당을 버텨주는 것이다. 좌익조직은 노동조합에 국한하지 않고 매스컴에도 확산돼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좌익적 경향의 운동은 언제나 매스컴의 호의적인 보도에 의해 널리 소개되곤 했다.#
 
번역·이영훈 객원해설위원·교포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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