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은 졌고, 유토피아는 없었다
큰 별은 졌고, 유토피아는 없었다
  • 김범수
  • 승인 201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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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김범수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확립하고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선생이 지난주 87세의 일기로 한(恰)많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십여 년간 미력하나마 북한인권운동에 관여하며 황 선생을 뵈어왔던 한 사람으로서 비장함과 함께 각별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황 선생은 어떤 방향으로든 한반도 현대사의 진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고, 남북한에서 동시에 존경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아온 시대적 거인이었다.

김정일정권은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황 선생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단을 파견하는 등 혈안이 돼 있었고, 국내 좌파들은 한때 그들이 하늘같이 여기던 주체사상 창시자의 ‘변신’을 바라보면서 정신분열 상태에 이르고 있다. 최근 민주당과 민노당 등의 야권 인사들이 황 선생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할지 말지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희극적이기 조차 하다.

황 선생은 양복 상의에 늘 조그만 태극기 핀을 달고 다녔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그런 황 선생을 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온 ‘애국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정부는 황 선생에 대한 1등급 국민훈장 추서와 현충원 안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애국’이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것이 애국인지, 아니면 체제나 정치이념과는 상관없이 민족을 생각하고 각기 다른 형태의 한반도 내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는 것도 우리가 말하는 애국이 될 수 있을지 상념을 갖게 된다.

황장엽 선생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의 주체사상은 “큰 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구체적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황 선생은 김일성의 가장 큰 과오로 “마르크스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동생 김영주 대신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이념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정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자신의 주체사상을 반성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에 의한 북한 내 스탈린주의의 변질을 통탄한 것이다.

황 선생은 1960년대 말 사상의 일대 전환을 거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인간중심철학’이라고 소개돼 온 그의 사상은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은 인간이며 종국적인 인간의 삶의 목적은 끝없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뜻 중세시대 신본(神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유럽을 풍미한 르네상스시대의 무신론적 인본(人本)주의나 이후 헤겔과 니체의 ‘절대이성’과 ‘초인론’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유토피아사상 등 종국적 허무주의가 복합돼 떠오른다.

실제로 황 선생은 망명 이후 쓴 회고록에서 “나는 온갖 형태의 불평등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주의 이상을 지지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이상이 인본주의 사상에 맞기 때문”이라며 “나는 인간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한 인본주의자”라고 고백한 바 있다.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 수잰 숄티 등 주변의 몇몇 독실한 신앙인들은 황장엽 선생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럴 때마다 황 선생은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라며 대화를 비켜갔는데 마지막 순간 그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아무쪼록 망명 이후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인간 황장엽’ 선생의 초인적 노력과 고귀한 인격에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면서, 피땀으로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속과 밝고 힘찬 미래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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