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도 전략으로 세계선교 감당할 것”
“새로운 전도 전략으로 세계선교 감당할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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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CCC(한국대학생선교회), 역사ㆍ비전관 건립해 김준곤 목사 뜻 기려
▲ CCC 여름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김준곤 목사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1970년 12월 31일 재야의 종소리와 함께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고 김준곤 목사는 CBS를 통해 위와 같은 표어를 내걸고 민족복음화운동을 공식 선언했다. 이 표어는 김준곤 목사의 일평생 기도요, 비전이었다.

오늘날 한국CCC의 이념적 바탕이 된 이 표어는 학원 복음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목표로 구체화됐다. ‘민족 복음화’운동에 전력한 김준곤 목사가 소천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그의 일생을 기리며 기억하는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CCC(대표 박성민 목사)는 지난해부터 유성 김준곤 목사 기념사업회를 구성해 김준곤 목사의 비전을 계승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30일에는 CCC 역사ㆍ비전관 및 민족복음화 전략센터를 개관하고, 스티브 더글러스 국제CCC 총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렸다. 김준곤 목사 장학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미래한국>은 CCC 역사ㆍ비전관 및 민족복음화 전략센터를 방문해 영원한 청년 김준곤 목사와 함께해온 CCC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봤다.

한국CCC 역사ㆍ비전관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한국CCC 본부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ㆍ비전관은 김 목사의 집무실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인왕산 산자락 옆에 자리잡고 있어 경치도 일품이다.

가을 바람이 주는 선선함을 뒤로 하고 CCC 역사ㆍ비전관 입구에 들어서면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이 표지판은 역사ㆍ비전관의 건립 취지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러한 구절이 눈에 띈다.

“CCC 역사ㆍ비전관은 민족복음화를 위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알의 밀알이 된 김준곤 목사의 삶과 사역의 흔적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중략) 이곳에서 개인과 캠퍼스와 민족과 세계를 향한 비전을 가슴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꿈꿨던 캠퍼스와 민족과 세계를 향한 비전은 무엇일까. 작은 출입문을 통해 역사ㆍ비전관에 들어가면 그가 가졌던 꿈을 확인하고, 지금 나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다.

CCC 관계자는 “역사ㆍ비전관은 김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이후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김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미쳤던 영향력을 기억하고 정리해 현재 세대가 전함으로써 CCC 발전에 도움이 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역사ㆍ비전관 1층에서는 김준곤 목사가 그동안 어떠한 사역을 해왔는지, 또 한국 기독교사에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김 목사를 소개하는 영상물, 그의 육성 설교와 그의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김 목사는 유학 시절 CCC를 설립한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 한국에서도 대학생선교회를 시작하라는 권유를 받고, 1958년 10월 현재의 CCC를 한국에 설립한다. 당시 CCC의 설립은 지성 사회에 충격을 줬던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똑똑한 젊은이들의 집결소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감나게 표현하며, ‘역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라는 설교 제목처럼 젊은 지성인들의 지적 갈급함까지 채워줬던 것으로 유명하다.


유학 시절 빌 브라이트 박사 만나 권유 받고 대학생선교회 시작

호소력 있는 그의 육성을 뒤로하고 다음 칸으로 들어서면, 엑스플로’74대회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엑스플로’74대회는 민족사와 정신사를 가로지르는 예수혁명이요 성령의 잔치였다. 엑스플로’74대회에서는 32만3,419명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5박 6일 동안 전도훈련을 받고, 밤에는 100만여 명의 성도가 철야하며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270만 명에서 300만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한 인파가 몰린 것이었다.

▲ 엑스플로74 기사 자료

엑스플로에 참가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실시한 통계에 따르면 집회 1년 후 한국교회는 33% 성장했다. 이 대규모 학습 전도운동은 1995년까지 이어졌고 대학생 45만 명, 평신도 350만 명이 이 훈련에 참가했다. 김 목사는 엑스플로’74대회 대회장을 맡아 민족복음화 운동과 한국 교회의 폭발적 부흥 성장을 주도했다.

엑스플로’74대회에 대한 전시에서는 당시 발행된 엑스플로’74 기념우표, 초대장, 전도합숙요원 32만여 명의 숙소였던 초대형 텐트촌, 내외신에 실린 엑스플로‘74 소식 등 다양한 자료가 소개된다. 엑스플로’74대회 초대장에 실린 이 문구는 요즘 세대가 봐도 감회가 새롭다.

▲ 엑스플로74 기사 자료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생명잔치, 성령잔치에 소개합니다. 토요일 밤 8시에는 ‘인류 최후의 혁명’이란 제목으로 엑스풀로74대회장 김준곤 박사의 멧시지와 빌 브라일 박사의 최대의 설교인 성령설교가 있읍니다. (중략) 신도에겐 성령충만의 기회이며 비신도에겐 신앙을 얻는 기회가 됩니다.”

엑스플로’74대회에 대한 전시를 둘러보면 그가 겪은 고난과 민족의 삶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

김 목사는 6ㆍ25전쟁 통에 아버지와 아내가 공산폭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슬픔을 경험했다. 1982년에는 만 29세이던 그의 둘째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고난과 아픔의 삶은 이번 전시에서 붉은 가시 엉겅퀴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겪은 아픔과 슬픔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사랑과 용서의 삶으로 승화됐다.

김 목사는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젖염소를 북한에 보내는 운동을 지난 1999년부터 해왔다. 이 사역은 북한의 190만7,000호 농가에 한 마리 이상의 젖염소를 보냄으로써 국토 통일 이전에 사랑의 통일,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은 김준곤 목사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밥을 같이 먹으면 식구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면 그들의 영적인 굶주림도 채울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북한을 위해 아침을 금식합니다.”

역사ㆍ비전관 1층 마지막 코스는 김 목사의 집무실이다. 다독가이면서 스스로 많은 책을 남긴 작가이기도 했던 김 목사의 집무실은 소박하면서도 조용했다.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진 성경,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두루마기 옷, 낡은 전화기와 타자기 등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김 목사의 제자들을 인터뷰한 영상도 방영되고 있는데, 김 목사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제자들의 모습이 관람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학원 복음화가 내일의 세계 복음화” 주창

1층 관람을 마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김준곤 목사와 함께 걸어온 CCC의 선교 역사를 한 눈에 확인해볼 수 있다.

‘민족복음화의 길’이라는 푯말을 따라가다보면 ‘WHY? 왜 캠퍼스인가?’라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CCC가 캠퍼스 사역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CCC는 못자리판에 심겨진 씨앗들이 민족의 구석구석, 사회 모든 영역에 옮겨지면 이 민족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할 수 있다며 캠퍼스 복음화에 집중하고 있다.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김 목사의 외침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캠퍼스 복음화의 핵심전략에 대한 소개도 이어진다. 또 매년 만 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하는 CCC 여름 수련회, 문서ㆍ음악ㆍ스포츠ㆍ성경 스토리텔링ㆍ예수 영화ㆍ의료 등을 활용해 복음을 확장시키는 전 계층선교, 해외선교의 비전 등도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한다. CCC는 태권도를 통한 선교팀을 구성해 전국적으로 스포츠 선교를 확장해가고 있는 한편 전 세계 6,000여 개의 미전도 캠퍼스 개척을 목표로 한국교회와 협력해 지속적으로 장·단기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전략을 가지고 있다.

비전ㆍ역사관 3층에는 김 목사의 비전과 철학을 체험하고 묵상하는 공간인 ‘순카페’가 마련돼 있다. 전체적으로 젊은 세대를 겨냥해 감각적인 단어와 영상을 사용하면서도 김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잘 전달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또 CCC는 김준곤 목사 기념사업의 하나로 지난 10월 30일 비전ㆍ역사관과 함께 민족복음화 전략센터도 개관했는데, 이곳에서는 김 목사의 문서 및 영상을 정리한 자료, CCC 사역 연구 자료, 세계 곳곳에서 모아온 민족 복음화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 비전ㆍ역사관을 뒤편으로 백 여 미터를 걸어가다 보면 민족복음화 전략센터가 언저리에 보인다. 민족복음화 전략센터는 앞으로 정례적으로 김준곤 목사의 사역 자료를 공개하고 설교학, 선교학, 학생 운동사 차원에서 김 목사 사역의 학문적ㆍ학술적 정리를 체계화할 예정이다. 민족 복음화에 대한 학술 토론회도 준비 중에 있다.

김준곤 장학재단도 설립될 예정이다. 장학사업으로 마련된 기금은 김 목사의 사역 연구 및 발전을 위한 연구, 민족 복음화에 기여할 미래지도자들을 양성하고 발굴하기 위한 사업, 김 목사 사역의 연구 및 논문 제작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된다.

▲ 김준곤 목사의 소장품들

김준곤 목사 기념사업은 CCC사업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현재 총 20명이 공동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50억 원을 목표로 한 기념사업 모금도 현재 28억3,0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선교활동 후대에 전하기 위해 기념 사업 추진

CCC 관계자는 “CCC 간사분들이 모금을 작정하셨고, 김 목사님에게 영향을 받은 제자분들, CCC를 돕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 CCC 역사ㆍ비전관 전경

무엇보다 김 목사의 뜻을 후대에 계승해야겠다는 의지가 기념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CCC 박성민 대표는 “성경 사사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듯이 영적인 자산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이번 기념사업의 의미”라며 “김 목사님이 저희에게 주신 비전, 김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후대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한국 교회와 캠퍼스 내에서 기독교가 위축돼 있고 캠퍼스는 더 심각하다면서 김 목사가 한국 교회가 어려울 때 초교파적으로 선교대회를 열어 돌파구와 변화를 주도했던 역할을 했던 것처럼, 현재 CCC도 새로운 전도 전략을 만들고 전도 및 양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스터모더니즘이 팽배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유지하면서 5가지 전도종합세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가 소개한 CCC의 전도 전략은 대략 이러하다. 먼저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사영리를 전하는 것보다 관계를 형성해 복음을 전하는 Soularium(솔라리움) 전략, 생각의 모순을 깨닫고 4영리를 듣도록 유도해가는 전략, 성경 속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 속에 녹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는 스토리텔링 전략, 순모임을 통해 친구를 전도하는 순친전 전략, 교회와 협력해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학생들을 캠퍼스에서 전도해 훈련시켜 협력교회로 가서 섬기게 하는 윈윈 전략 등이다.

▲ CCC 여름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박성민 목사와 학생들 영상

이중 솔라리움 전략은 요즘 유행하는 타로점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사진과 예술 작품이 그려져 있는 50장의 카드 중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카드 3점을 고르게 해서 얘기를 시작하면서 입을 열게 하고 4영리를 전하는 것이다.

갈수록 캠퍼스 내의 선교단체의 입지가 좁아진다지만 CCC는 현재 이러한 새로운 전도 전략을 사용하면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고, 올해 여름 수련회에서는 지난해보다 600여 명이 더 참석했다고 한다.

김 목사가 제창한 민족 복음화의 비전이 21세기형 전도 전략으로 확장돼 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는 CCC의 활동 목표 및 비전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잇는 다리로 표현했다.

“김 목사님이 큰 틀에서 대형집회를 계획하시고 한국 기독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면 앞으로 CCC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팽배한 현대 속에서 다양함과 섬세함을 통해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전도 전략을 구사할 겁니다. 교회를 섬기고 한국 교회와 함께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만 달라진 것이지요.”

지난 반세기 CCC는 40만 명의 대학생과 평신도 400만 명을 복음으로 훈련시켰고, 사회 각계 그가 훈련시킨 크리스천 리더들이 민족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다. 새로운 전도 전략을 구사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CCC의 행보에 교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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