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도망하며 죽어야 하나요”
“우리는 왜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도망하며 죽어야 하나요”
  • 미래한국
  • 승인 2010.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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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야기]



최순용(여·42·2003년 10월 입국)

1998년 6월 1일 나는 전쟁으로 헤어진 남한의 어머니 형제들을 찾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 연길에 있는 연변방송국을 찾아갔다. 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무상으로 도와줘 어머니의 세 오빠들의 명단을 KBS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 담당자 앞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집 앞에 오니 안전보위부원들이 나를 기다렸다. 1998년 6월 15일 그렇게 나는 보위부에 잡혀북한에 송환됐고 강제노동소로 끌려가게 됐다.

강제 노동을 하면서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은 배고픔에 허덕이는데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늘 생각했다. 나는 북한체제의 거짓말을 들으며 산 것이 억울하고 분해 강제노동기간이 끝나면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해 7월 11일 김일성 사후 처음으로 최고인민위원회 선거가 있었는데, 이때 김정일은 모든 수감자들과 강제 노동자들을 풀어주고 선거에 참가하게 했다.

엉망이 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아 1999년 2월 말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뒤로한 채 남편과 또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이번에는 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여기서는 탈북자를 받지 않습니다”는 한마디 말 뿐이었다. 언어도 모르는 곳에 아는 이 하나 없이 돈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마침 가정교회 전도사를 만나 생명을 구했고 하나님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선교사를 통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우리는 성경을 읽고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그 후 중국 공안의 눈길을 피해 천진으로 옮겼고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온실을 운영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 8개월 되던 어느 날 중국 공안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가까스로 교회 집사 집으로 도망했고 그분을 통해 한 조선족교회로 가게 됐다. 그리고 그곳 교회에서 아들을 순산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공안은 탈북민 색출작업에 혈안이 돼 있었고, 나는 갓 태어난 핏덩어리를 안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중국 운남성 곤명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제3국으로 나갈 길을 연구했고 2001년 6월 10일 미얀마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국경을 30m 앞두고 우리는 체포됐다. 남편과 청년들은 뛰어 산으로 도망갔다. 신발이 벗겨지고 발이 가시와 돌에 찢겨 피가 나는 것도 모른 채 뛰고 또 뛰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남아 울고 또 울었다.

다음날 아침 공안국으로 간 나는 도망간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아찔한 말을 들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침 군 생활을 하던 조선족 청년의 도움으로 풀려났고 때마침 남편도 나와 어린아이를 위해 다시 찾아왔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가족이 만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너무 억울해 어린 것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우리는 왜 어느 거리, 어느 산길, 어느 강물, 어느 철장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다시 운남성 곤명으로 돌아온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가고 싶어 2001년 10월 다시 미얀마로 떠났다.

태국 국경은 강으로 돼 있었다. 도강하자니 물 깊이도, 지형도 몰라 하루 밤 자고 아침에 건너기로 하고 어느 산모퉁이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미얀마 경찰서 안이었다. 그렇게 2002년 새해를 감옥에서 맞이하게 됐다. 그 시간 동안 오직 살 길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기적은 일어났다. 석달쯤 되었을 때 우리 부부를 지켜보던 경찰들이 태국 국경으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방콕 한국대사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탈북 과정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글로 적자면 끝이 없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탈북민들을 도와주고 계시다는 것을 똑똑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탈북 과정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은 험하고 무섭고 두려웠지만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오는 참된 과정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탈북민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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