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여교수’가 뉴스를 도배하는 사회
‘폭행 여교수’가 뉴스를 도배하는 사회
  • 미래한국
  • 승인 201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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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의 문화공감]

지난 한 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람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닌 국립대 교수였다. 국립대 성악과 여교수가 포털의 검색어 상위권과 많이 본 뉴스 상위권을 휩쓸었다. 남자 교수가 제자를 성폭행해도 검색어에 오르기 쉽지 않은데, 이 여자 교수는 제자의 배를 누르고 머리채를 흔드는 등의 행위로 연일 인터넷을 들끓게 했다.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명품가방을 받았느니, 시어머니 팔순잔치에 제자들을 동원했느니하는 뉴스가 굴비처럼 엮여서 줄줄이 딸려 나왔다. 급기야 팔순잔치 동영상까지 등장해 다들 신나는 가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멘트가 생각나는 지난 한 주였다. 쏟아지는 뉴스를 계속 보고 있자니 여교수가 점점 파렴치범을 몰리는 것과 덩달아 국립대도 형편없어지고, 대단한 실력이라는 그 대학 학생들도 한심해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똑똑한 학생들이 왜 그토록 오래 참았을까 싶고, 인터넷이온통 뒤덮이도록 중차대한 사안을 왜 그렇게 대단한 학교가 그토록 오래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막가자’는 멘트가 생각나는 한 주

우리나라가 도무지 뉴스거리라곤 없는 청정국도 아닌데, 왜 며칠 동안 여교수의 뉴스가 도배를 했을까. 유명 대학 교수이자 유명 성악가여서 그렇겠지만 최근 SBS TV ‘스타킹’의 ‘목청킹 프로젝트’에서 얻은 큰 인기를 탓일 것이다. ‘목청킹’에서 야식배달부 김승일 씨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100일간 그를 훈련시키던 여교수도 집중조명을 받고 있었다. 김승일 씨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교수님 제발 멋진 성악가로 만들어주세요. 같이 무대에 서면 좋겠어요”라며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차에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간 제자를 성폭행한 남자 교수들은 K교수, L교수라는 이니셜로 소개됐다. 여교수는 ‘제자 폭행의혹’을 받고 있는 단계이다. 유명 대학에서 그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위가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까지 그녀를 성악과 학과장직과 교수직에서 직위해제하기로 했다. 여교수가 학과장직과 교수직을 유지할 경우 사실관계 확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실명이 공개됐고 ‘폭행 교수 A가 스타킹의 여교수’라는 사실이 퍼지면서 뉴스가 폭발한 것이다. 징계위원회에서 조사를 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때 비난해도 늦지 않을 텐데, 이미 모든 게 기정사실화돼 버렸고, 이제 여교수의 가족들 신상까지 인터넷에 까발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닌 대학 교수에게 일어난 사건이라는 게 좀 다를 뿐 이런 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여교수의 과거사까지 들추는 뉴스와 강도 높은 비난 댓글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선정성과 폭력성에 새삼 섬뜩함을 느꼈다.

인터넷 시대,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잘못했을 때 벌 받으면 된다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그에 앞서 여론이라는 뭇매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끔 공직자 청문회를 볼 때도 느끼는 일이지만, 말을 해서 매를 더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한 언론과 인터뷰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는데 이로 인해 여교수가 동정의 여지를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제식 교육을 받을 때 나도 맞았고 제자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하다 보니 좀 심하게 한 게 있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예전에 함께 배운 동료들로부터 “스승을 모독하지 말라. 우리는 배울 때 맞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음악대학의 관행이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호들갑’이라던 소수의 옹호자들조차동영상 인터뷰 이후 돌아섰고,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사태가 마무리 될 때까지 일체의 변명 없이 “어쨌든 시끄럽게 된 사태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서울대에 소명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가장 가혹한 세금은 ‘유명세’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교수와 학생 간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내가 배울 때 맞기도 하고 선물도 하고 행사에 갔으니 나한테 배우는 너도 나하고 똑같이 해야 한다”는 류의 생각은 이제 너무 위험하다.

1962년생으로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을 여교수. 그녀가 대학에 다닐 때 쯤,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나 21세기에 대학을 다니는 제자들은 의식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부모의 과보호 아래 오로지 공부에 매진하며 자란 세대에게 “나도 그랬는데 그 정도 갖고 뭘”이라는 말이 어떻게 먹히겠는가.

‘그 정도는 관행이다’ ‘나도 그러고 살았다’는 얘기로 대충 묻어갈 생각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인터넷과 익명성이 소문을 구제역보다 빠르게 퍼뜨리는 세상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띄는 자리에 가려면 먼지가 나는지 안 나는지 스스로 잘 털어봐야 한다. 자신 없으면 그냥 관객으로 사는 게 속 편할 것이다. 이 사회는 제 아무리 알리고 싶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냉정한 면모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의 뉴스메이커가 대중 앞에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난도질을 당하다가 내동댕이쳐졌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나 아픈지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대중은 또 다른 표적을 기다릴 따름이다. 새로운 목표물이 나타나면 그 전 사건은 금방 잊는다지만 그것도 옛말이 됐다. 검색창에 이름만 치면 연관 검색어에 과거 행적이 줄줄이 뜨고, 비슷한 사건만 터지면 리스트로 묶여 다시 대중 앞에 무릎 꿇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야말로 ‘도매금’으로 또 한 번씩 넘어가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가장 가혹한 세금은 다름 아닌 ‘유명세’이다. 특히 인터넷 환경이 엄청나게 발달한 좁고 유행이 빠른 대한민국에서는. 유명해지고 싶다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담력 훈련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의심의 눈초리를 사방으로 날리며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


이근미/편집위원·소설가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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