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로 실추되는 제도와 권위
민주화로 실추되는 제도와 권위
  • 미래한국
  • 승인 2011.04.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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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


 
지난 호에 일련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민주화 시위와 관련해 그릇된 민주화의 이상이 전체주의를 몰고 올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자유와 시장경제의 가치가 민주화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주의 도래를 막는다고 자유의 가치를 마냥 존중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경계한 버크(Edmund Burke)의 ‘보수주의’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버크가 오늘날 보수당의 뿌리인 당시 토리당(Tory)이 아닌 ‘자유당’에 해당하는 휘그당(Whig) 소속 의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난 번 말씀드린 ‘자유’의 가치는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수의 기치는 ‘수구(守舊)’가 아니라 전통과 제도, 관습의 존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권위’의 존중이 있습니다. 흔히 권위는 ‘민주’에 상반되는 가치로 인식돼 왔습니다만, 실상 민주주의에 상반되는 가치는 ‘권위주의’이지 권위가 아닙니다.

‘잘나가는 나라’는 기존 질서·제도·존중하는 나라

속된 말로 ‘잘 나가는 나라’의 경우를 보면, 민주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기존의 질서와 제도,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권위를 존중하는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국격(國格)을 갖추고 있는 선진국들입니다. 국격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권위가 잘 실행되고(exercising authority) 국가 기강이 잘 확립돼 있다는 뜻입니다.

권위가 왜 필요한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요즈음 흔하게 언급되는 ‘보편적 복지’, ‘황금률’ 등의 가치들은 가치판단의 내용을 구성하는 실체적 가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모두 절차적 가치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화도 절차적 가치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절차적 가치가 절대적 가치로 둔갑하는 데 있습니다. 민주화를 명분으로 자유와 선택을 말살해 전체주의로 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절차를 자의적으로 적용해 절차적 적합성을 훼손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요구되는 것이 ‘권위’입니다. 권위를 나타내는 영어 ‘authority’가 라틴어의 ‘의사결정, 명령, 자문’을 의미하는 ‘auctor’, ‘auctoritas’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즉 권위는 절차적 적합성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위를 ‘전통적 권위’, ‘의법적 권위’, 그리고 개인적 권위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전통적 권위는 우리가 전수해 온 전통에서 절차적 적합성을 찾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다소 진부하고 퇴색됐다고 치부하기 쉽지만,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보이지 않게 중요한 권위입니다.

예컨대 대가족 아래서 ‘곳간열쇠’는 왜 시어머니가 관장해야 하며, 왜 맏며느리가 물려받는가는 전통적 권위에 의해 설명됩니다. ‘의법적 권위’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정통성(legitimacy)’에 기인하는 권위입니다. 그리고 개인적 권위는 권위의 근원이 개인사(個人史), 개인의 뛰어난 업적과 명망 등에 기인하는 권위입니다.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가 이에 해당합니다. 카리스마의 경우에 간혹 개인의 우상화나 신격화에 오용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권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우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권위자(an authority)’라고 하는 말을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과 수술의 권위자, 바둑해설의 권위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권위의 개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권위체제(authority structure)는 곧 사회기반이 되는 사회체제(social system)입니다.

문제는 과도한 민주주의 욕구가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권위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의도적으로 권위체를 훼손하거나 말살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곧 사회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좌파 교육감들이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체벌금지’ 조치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기존의 교권, 즉 교사의 권위를 손상시키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지금도 물의와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과도한 민주적 욕구는 흔히 그릇된 평등이념이나 산술적 의미의 단순 평등 사고를 야기해 사회가 요구하는 권위체, 권위자의 위상을 심하게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교육감 직선은 교직의 전문성 폄하하는 것

이러한 예는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선출된 권력은 어떠한 권위를 능가한다는 사고, 그리고 어느 관직이든지 선출돼야 한다는 생각을 들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전문직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교직사회에서 교육감을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결과는 이 논점에 닿아 있습니다. 교육감을 직선에 의해 선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교사와 교직의 권위를 압도적으로 우선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마땅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민주화 욕구가 권위자도 아닌 한 개인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기도 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민주화가 한 독재자로 인해 참혹한 결과로 파국을 맞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보면 절차적 원리로서 민주화는 ‘권위’라는 가치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민주적 절차라는 정당성과 함께 사회의 구심점인 권위가 잘 맞물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국가 기강의 측면에 적용해 보면, 정당하게 부여된 국가권력은 국가안위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단호하고 결연하게 집행돼야 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단호하고 결연하게 집행할 일을 좌고우면하거나, 반대로 불요불급한 일에 단호한 조치를 내릴 경우는 국가의 권위와 체면 즉 국격이 훼손됩니다. 나아가서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도 실추됩니다. 한 때 나돌던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고, 소 잡는 데 닭 잡는 칼을 쓴다’는 현 정부에 대한 조롱 섞인 비판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이 비아냥거림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짚어 보겠습니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광화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던 2008년의 사태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지만, 그 자체가 전국을 뒤숭숭하게 만들 만한 빌미를 제공할 중대 사안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법 시위와 근거 없는 낭설, 괴담 등에 대해 보다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마땅합니다. 결연하게 대처한 결과로 천안함 폭침이 자작극이라는 괴담을 사람들이 ‘근거 있는 사실’로 용인하는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한 격입니다. 천안함 자작극 괴담은 연평도 포격이라는 또 다른 상처를 입은 다음에야 수그러들었습니다. 대가치고는 너무나 비싸고 가혹했습니다. ‘소 잡는 데 닭 잡는 칼’을 사용한 셈입니다. 이렇게 하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격(格)과 권위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과도한 민주화 요구가 독재 부르기도

반대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한 경우가 최근 구제역 사태입니다. 물론 우리 축산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하겠지만 사안만을 놓고 볼 때 애초에 ‘축산청정국가’라는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백신 접종을 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300만 두 이상의 가축이 생매장됐고 구제역 백신 접종은 당초 명분을 무색하게 했지요.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당국의 권위도 함께 실종됐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저축은행의 영업정지와 예금인출 사태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문제의 저축은행 중에는 견실한 운영을 했지만 금융위기 당시에 정부로부터 구제금융 대신에 받은 저리의 융자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자본비율이 낮게 나타난 은행도 있었다고 합니다. 금융정책당국에서 조금만 세심한 배려를 하면 막을 수 있는 사태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기강과 권위 실추가 심히 우려되는 사안으로서 최근 5개월 동안 11차례나 발생한 KTX 열차 사고를 보겠습니다. 이 중 네 건이 지난 2월 중에 집중적으로 일어났고, 아홉 건이 국내에서 개발한 KTX 산천 열차라고 합니다. 보도 내용을 잘 뜯어보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증요법적인 수준의 수리로 일을 마무리하는 듯합니다.

특히 KTX 산천 열차 사고의 경우 당국과 제작사의 반응이 ‘KTX 산천이 아직 안정화 기간인 운행 초기라 이런저런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국내 제작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87%의 국산화율을 보인 성과에 비하면 이 정도의 시행착오는 용인되고 이에 따른 경미한 사고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그 원인이 경미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고속열차 사고는 말로 옮기기도 끔찍한 대형 참사를 가져옵니다.

1998년 발생한 독일 고속열차 이체(ICE)의 탈선사고는 열차 바퀴를 감싸고 있는 링 파손이 원인이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관점에서 보면 링 문제는 경미한 부분이라고 예단했을 법한 사유이지만, 그 결과는 101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한 엄청난 참사였습니다. 이런 참사를 보면, ‘국산 개발이라서 아직 완성도가 떨어진다’라는 변명은 변명의 가치조차 없습니다.

최근 연이은 고속열차 사고를 보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경영학에서 실패의 예방과 원인 분석에 잘 인용되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그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지 모르지만, 하나의 치명적인 사고나 실패는 그 이전에 이미 300번 이상의 징후가 나타나며, 또한 29번의 구체적인 경고 메시지가 드러나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으로 1912년 150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간 타이타닉호 침몰사건도 설명이 됩니다. 침몰 전에 빙하에 대한 경고가 21회 이상 선장에게 전해졌지만, 선장은 이를 무시하고 항해를 감행한 결과 참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정치권, 민의와 동떨어진 이슈만 부각 시켜

누구보다 고속열차를 자주 탑승하는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경부선 고속열차는 프랑스 제작 차량입니다. 국산인 KTX 산천 열차는 서울-마산 노선과 일부 경부선 노선에 운행되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국산 KTX 산천 열차를 탑승해 본 것은 창원의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상경할 때였습니다.

기존의 KTX에 비해 요동이 심하고 승차감이 떨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의 이러한 불만을 심층적으로 다룬 보도를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 당국이 외면하고 있다면, 언론이라도 나서서 승차감이나 요동의 정도만이라도 측정 보도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보도 내용을 아직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바라건대, ‘하인리히 법칙’이 우리 고속 열차에는 절대 적용돼서는 안 됩니다.

한편 이 문제를 접근하는 일부 언론의 시각이 잘못 설정돼 있습니다. 몇몇 언론은 고속열차의 연이은 사고 소식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구조조정에 따른 문제로 접근해 보도하고 논평을 내고 있습니다. ‘인력 감축에 따른 예고된 사고’라는 시각입니다. 물론 인력 감축이 한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이를 빌미로 공기업 구조조정 철회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KTX 문제는 현재 브라질 고속철 사업 수주와도 맞물린 국가 이익과 체면이 걸린 문제입니다.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내팽겨 두고 집권층이 현재 엉뚱한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현 가능성도 없고, 민의와도 동떨어진 개헌 문제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집권당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공천을 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할 생각은 않고, 어떤 문제집을 선택할까만 고민하는 낙제생처럼 말입니다.

오픈 프라이머리니 이원집정제니 하는 민의와 동떨어진 ‘민주적 가치’에 함몰되지 말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라의 권위와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릇된 민주화’로 강압, 압제, 선동과 폭력이 난무하지 않으려면 권위가 바로 서야 합니다. 또 국가 기강이 굳건해야 북한의 생트집 협박과 무모한 도발도 미연에 막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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