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는 자유주의 이름을 지켜내야"
"우파는 자유주의 이름을 지켜내야"
  • 미래한국
  • 승인 2011.04.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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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조동근 명지대 교수

자유주의는 대한민국 보수진영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다. 그러나 정작 보수진영의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는‘반공’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좌파진영 내에서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창비>의 최장집 교수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사회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그들은 진정 자유주의자들일까? 좌파가 자유주의자로 둔갑하는 지금, 자유주의에 관한 한 가장 정통적 이론을 견지하고 있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조동근 명지대 교수를 만나 자유주의의 참 뜻과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봤다.

 국내 자유주의 학파 한국 하이예크 소사이어티를 이끌고 있는 조동근교수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를 넘어설 이념은 없다' 고 단언한다.

"우파는 자유주의 이름을 지켜내야"

-자유주의는 근대 정치 사회 이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는‘가진 자의 논리’라거나 ‘방종’ 또는‘반공주의’정도로 치부돼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자유주의의 토대는 개인주의입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맥락은 개인보다는 아직 공동체를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자유주의의 토대로서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오해하는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른 것이죠.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자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만 개인주의는 그러한 것에 반대합니다. 자유주의로서의 개인주의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자신의 것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고 그래서 공의로서 법치주의를 질서의 근간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실현되려면 이성적 사고가 그 사회에 충분하게 발현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것을 제약하는 요소가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를 넘어설 만한 이념은 아직 없습니다.

"좌파, 보수진영 공격 위해 자유주의 이념 왜곡"

또 하나, 자유주의가 ‘반공’이나 ‘독점자본’의 논리로 오해되는 데는 국내 진보진영에서 보수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덧씌우기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우리 사회에서 보수나 진보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죠. 해방 후에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가 있었을 뿐입니다.

반독재 투쟁을 진보진영이 조직했기 때문에 ‘민주화세력=진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고 진보진영이 스스로를 차별하기 위해‘보수’라는 이름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결국 자유주의 진영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보나 보수개념보다는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우파는 자유를 핵심적 가치로 삼으며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와 다른 것이죠.

- 좌파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를‘경제적 양극화’등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합니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다른 것입니까? 또 신자유주의에 그런 속성이 있습니까?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경제면에서 볼 때 자유주의 경제정책은‘작은 정부’와 민간부문의 확대, 그리고 자율과 자기 책임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정부의 인위적 개입보다는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는 것이죠.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미국의 대공황기에 정부 개입을 주장했던 케인지언학파의 유효수요이론에 가려져 있다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이론으로 등장했고 레이건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경제정책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고전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등장이라는 개념으로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것이죠.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미국과 소련 간의 대결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전세계적으로 자유주의 이념이 확산되었는데 좌파는 이것이 싫었던 것이죠. 굳건하게 믿었던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새롭게 등장한 자유주의가 바로 자신들을 파멸시킨 원흉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욕을 먹을 이념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좌파는 신자유주의가 탐욕스러운 강자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그렇기에 빈국을 영원한 빈국으로 만드는 패권주의라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해‘자본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기업활동에 자유’를 주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유를 토대로 기업 간에 공정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이고 그 혜택은 소비자의 몫입니다. 요즘 소위 강남좌파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좌파들도 결국 신자유주의의 덕으로 해외에 부동산도 사고 고급 와인도 수입해서 마시고 하는 것 아닙니까?

신자유주의는 그래서 계급적으로 중립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점도 잘못된 지적입니다. 소득의 양극화로 치자면 중동이나 제3세계 독재국가만큼 양극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든 그 사회가 발전하면 양극화가 진행됩니다. 소위 20:80이라는 법칙은 자유가 주어진 어느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이를 막는 방법은 원시사회로 돌아가거나 자유를 반납하고 이미 망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죠.

 미국의 금융위기는 자유주의가 아닌 美정부의 잘못된 관치금융의 결과였다는 것이 조교수의 설명이다.

- 좌파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결국 미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오히려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위반했기 때문에 초래됐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미국 정계에도 진보세력들이 있는데 이들이 주축이 돼 주택소유정책을 만들었어요.‘모든 미국인은 자기 집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모토로 추진된 이 주택정책으로 이자를 갚기 어려운 신용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주택 담보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만일 자유주의 경제원리를 적용했다면 대출의 자격을 은행 스스로 결정하게 했을 겁니다.어떤 은행이 이자를 갚지 못할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겠습니까? 결국 미국의 반시장적 정책으로 주택담보 대출이 늘면서 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 채권들이 대량으로 금융시장에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등장했고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죠.

여기에는 분명히 신용평가기관과 같은 미 금융계의 탐욕이 한몫했지만 그 탐욕과 신자유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유주의 원칙을 적용했다면 그 탐욕을 제어할 공정한 감독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마비됐던 것이죠. 바로‘미국인은 누구나 주택을 가져야 할 권리가 있다’는 잘못된 진보 이념 때문입니다. 아울러 미국의 금융위기가 미국을 무너뜨릴 것이라 보는 것도 온당치 않습니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보아야죠.

- 결국 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유효성과 타당성이 있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이를 부정하는 장하준 교수의 신드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장하준 교수의 신드롬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론’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명박 정부가 이념 부재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꺼낸‘공정사회론’이 한마디로 좌파적 발상이었기 때문에 자유주의 원리를 잘못 비난한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중들의 무비판적인 열독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공정이 아닌‘책임사회’나‘신뢰사회’를 키워드로 했다면 달랐을 겁니다.

"자유주의 이념은 계급 중립의 불편부당"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론은‘기회의 균등’을 통해 개천에서도 용이 나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철학과 일치합니다. 다만 그 용이라는 존재가‘서민’에 국한돼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하기위해 개천이 아닌 등용문에 있거나 용궁에 있는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개천공사를 하는 것은‘공정’이 아닌 것이죠. 그런 것은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자유주의는 계급적으로‘불편부당’함을‘공정’이라고 해석합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부자의 주머니를 턴다는 것은 자발적 기부라면 몰라도 자유주의 정부가 할 일이 아닌 것이죠. 흔히 이런 이야기에 대해 좌파나 자유주의를 오해하는 사람들은‘출발선은 공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철학에서 그것을‘원초적 상황’이라고 합니다. 존 롤스가 주장한 것처럼‘자신에게 돌아올 케익 조각이 어떤 것일지 모를 때 가장 공정하게 케익을 자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이에게 같은 출발선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는 한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조동근 교수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스웨덴 복지가 사민주의를 포기하고 자유주의 경제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 노력한다.

- 공정사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복지문제도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최근 여야할 것 없이 복지 논쟁이 치열한데 보편적 복지는 가능한 것일까요?

보편적 복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의 1942년‘베버리지 보고서’입니다. 흔히‘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보편적 복지모델이 이번 캐머런 영국 총리에 의해 종언을 고했어요.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미증유의 재정적자 문제였죠. 하지만 사실 그러한 문제는 촉발요인에 불과한 것이고 그 근저에는 영국의 복지제도의 실패가 자리하고 있었던 겁니다. 복지라는 것이 한번 도입되면 절대 축소하지 못합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대처 전 총리 조차 무상의료의 대명사인‘국민보건서비스(NHS)'에는 손을 대지 못했죠.

남유럽 국가들도 국력에 비해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다가 국가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규모가 세계 14위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로 50위권이에요. 2만 달러로 4만 달러의 복지를 누릴 수는 없는 겁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현행 복지제도를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복지수요는 팽창하게 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이제 다가올 통일에도 대비해야 하는 재정수요를 안고 있어요.

- 좌파진영에서는 자유주의 경제를 포기하고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북유럽은 전통적으로 공동체주의가 강한 나라입니다. 또한 나라마다 인구 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작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복지모델은 최대한 기업의 자유와 자본의 독점구조를 인정해 주고 노동의 유연성도 대단히 높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철학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스웨덴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것과 그 퀄리티는 다른 것입니다. 실제로 2만 달러 시장경제에서 유료 경쟁 서비스를 받고 살아온 우리가 5만 달러 국민소득 스웨덴의 무상 공동 육아나 무상 의료 서비스를 받아 본다면 아마 불만에 못이겨 당장 유료 서비스를 따로 해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도 남을 걸로 봅니다. 무엇보다 스웨덴 조차도 2000년 들어 시장주의로 우클릭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도 자유주의 경제원리로 회귀"

이미 스웨덴 국민들이‘고부담, 고혜택’정책을 유지하려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에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국내 좌파가 이런 스웨덴 모델에 병적일 만큼 집착하고 있는 점입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복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더 이상 운영되기 어렵다는 것이 국제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스웨덴은 자유주의 경제원리를 도입해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죠. 그렇다면 자유주의가 정답이지 어떻게 사회민주주의가 정답이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최근 불거진 동반성장위원회의 초과이익공유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그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맡기고 상생의 좋은 사례를 정부가 발굴해서 홍보하면 당연히 대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게 돼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30대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올해 초 1조8,000억을 투자하기로 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투자를 당사자들의 판단에 맡기라는 겁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이 투자금을 동반성장 기금화하려 하는데 기금이란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문제를 불러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에 왜 제3자가 끼어드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돼서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 모델이 경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각 그룹별로 동반성장의 성공사례를 공개하도록 해서 확산을 돕는 방안이 가장 좋은 것이죠.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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