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공유제’가 위험한 이유
‘초과이익공유제’가 위험한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1.04.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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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

 
지난 2월 23일 정부 내 동반성장위원회를 맡고 있는 정운찬 전 총리가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어 ‘협력 상생’해야 한다는 이른바 ‘초과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대기업이 “초과이익을 내는 것은 대기업의 노력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노력도 있다”는 것이 명분입니다. 그러니 강제로라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 내 성과공유제와의 차이점

우선 정운찬 위원장의 초과이윤공유제 주장이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대기업의 이익이 적정이윤이었건 초과이윤이었건 간에 그것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본부터 갉아먹는 발상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초과이윤공유제를 세제 혜택이나 기타 행정적 제재 수단을 동원해 실행하고자 함으로써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령 취지에는 동감한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는 사회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기업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상입니다.

강제적 실행을 뒷받침하려는지 정 위원장은 3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서 과거의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이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사회 실현에도 부합되는 것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발언 때문에 그의 초과이익공유제가 청와대와 정권 실세들과 사전 교감이 있어서 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나도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보도에 의하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가 “이해가 가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무턱대고 ‘상생’만 강조하는 순진한 감상주의에서 보면 정 위원장의 발언에 매력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이건희 회장의 비판은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며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지극히 당연한 지적입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념적인 논쟁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 수호의 측면에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오히려 이러한 비판을 “대기업의 이익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면서 이념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강변한 바 있습니다. 그는 초과이익공유제가 기업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라고 옹호합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기존의 기업 내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라는 논점은 강제적인 재분배를 기업 내 성과공유제로 부당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남길 경우, 그것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분배하는 것은 기업의 내부 사정이고, 그것 자체가 기업의 경영 노하우이고 영업비밀입니다. 이것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고, 외부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기업의 비용절감 노력이 다수 소비자에게 이익

가정에서도 초과수입으로 자녀에게 용돈을 얼마를 줄지, 의복비, 교통비, 학원비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집행할지 살림을 맡은 주부나 부부가 함께 정할 일입니다. 월등히 증가한 초과수입을 가족구성원을 위해 사용하는 대신 회사사람들이나 이웃에게 나누어 돌려주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업 이익을 내부 구성원에게 분배해 주는 것과 달리 협력업체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는 기업 내 성과공유제는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거나 거역하지 않는 데 반해 초과이익공유제는 시장의 분배기능을 부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인식하듯이 대기업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을 ‘후려쳤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은 협력업체간의 경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막말로 ‘후려친 결과’로 해당 협력업체가 망하고 대기업만 살아남았다면 그야말로 ‘착취’이겠지요. ‘후려친 결과’가 ‘착취’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지면 ‘홍길동’, ‘임꺽정’, ‘로빈 후드’같은 정의의 사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들의 등장으로 대기업 후려치기가 후련하게 없어지겠지만, 후려치기 없앤다는 명분으로 등장한 홍길동, 임꺽정, 로비 후드는 모두 ‘자비로운 독재가’로 표변(豹變)하게 되고 얼마 안 가서 그 국가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전체주의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후려친 결과’의 이익은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다수 소비자에게 골고루 돌아갑니다. 그것이 눈에 뜨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기업 활동의 혜택을 받는 소비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익명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자들에게 경제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초과이익공유제가 상생이나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켜 많은 중소기업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 이유는 이 발상이 역동적인 복잡계로 이해해야 할 시장상황을 무시하고 단순계 사고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기업에 납품하는 A, B, C, D 협력업체가 있다고 합시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네 협력업체에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 상생이고 공존협력이고 공정이고, 정의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진입하고자 하는 E, F, G, H, … 등의 무수한 잠재적 중소기업은 초과이익 공유 ‘혜택’에서 제외돼 기(旣) 진입 협력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기 진입 협력업체 입장에서 보면 경쟁력 확보 여부와는 관계없이 초과이익을 초과로 분배받아 안주하게 됩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잘 하는 기업이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나 모두 대기업의 협력업체에 일단 진입하기만 하면 초과이익을 재분배받기 때문에 경쟁력 확보 노력을 경주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진입하지 못한 협력업체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경쟁력 확보 노력과 관계없이 진입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게 됩니다. 그리고 진입을 희망하는 많은 잠재적 미래 협력 기업의 씨앗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단순계 사고에 머물러 있는 초과이익공유제가 인위적 재분배의 과정에서 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인위적 조작의 단순계 사고로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복잡계 사고가 요구되는 시장과 기업은 역동적입니다.

시장경제 기능 왜곡 사례

게다가 공정사회 명분으로 초과이익공유제 논리를 제2차, 제3차 협력업체에 확대적용하게 되면 시장경제가 근본적으로 왜곡되고 그 기능 자체가 정지됩니다. A라는 제1차 협력업체는 자신에게 납품하는 갑, 을, 병, 정의 제2차 협력업체에게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초과이익 배당을 다시 인위적으로 재배분해야 하고, 같은 방식으로 갑이라는 제2차 협력업체는 제3차 협력업체에게 인위적 재분배를 강제해야 합니다.

 재분배라는 인위적 강제가 제4차 협력업체,  그리고 영세기업으로 이어진다면 시장의 자율적 기능은 소멸되고 재분배라는 강제만이 남게 될 것은 명백합니다. 이것이 초과이익공유제가 몰고 올 가장 큰 재앙입니다. 

경쟁의 원리가 존중돼야 하는 것은 비단 기업에 적용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봉직하는 학교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학업성적의 결과를 인위적으로 상대평가를 하면, 어느 경우에나 일정비율 A학점이 나오기 때문에 상위그룹 학생이 공부에 열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A학점 10∼20%, B학점 20∼30%, C학점 이하 30∼70% 식으로 규정해 놓습니다. 그러면 상황에 따라 잘 하면 A학점 취득자가 많고, 아니면 C, D 학점 취득자가 많아집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경쟁을 촉발시키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소속 학과 학생들만 듣는) 교대 심화과정 과목의 경우 A학점을 최대 50% 이내 인원에게 줄 수 있고 C학점 이하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규정이 몇 년 전에 마련되고 나서 이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열의가 줄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절반은 A학점을 받아가고, 아무리 못해도 같은 과 교수가 C학점 이하는 안 준다는 의식이 팽배해져서 잘 하는 학생이나 처지는 학생이나 모두 공부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제 경우에는 제 소속 학과 학생들에게 인기를 잃더라도 잘하면 누구에게나 A학점을, 학업을 게을리 하는 학생에게는 과감하게(?) D학점도 부과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정 없다는 뒷말도 많았지만, 나중에는 ‘공정’하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경쟁력 저하가 불 보듯 한 데도 불구하고, 정운찬 위원장은 자신이 주장하는 초과이익공유제의 정당성 강화를 위해 “미국의 뉴딜 정책이나 반독점법도 좌파정책으로 매도당했다. 수정자본주의 선구자인 케인즈 역시 ‘빨갱이’로 몰렸다”며 초과이익공유제도 좌파 이론도 아니고 ‘빨갱이’ 발상도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앞서 이건희 회장의 비판을 의식한 반론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반론 역시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역자연주의 오류’입니다. 자연주의 오류는 ‘사실’에서 ‘가치’를 추론하는 데서 나타나는 오류입니다. 흔히 진보사상가, 자연주의자, 환경론자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입니다.

 

정책 타당성 검증 결여

예를 들면 ‘자연적 성장은 좋다. 암(癌)은 자연적으로 성장한다. 따라서 암은 좋다’라는 추론은 자연주의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상적으로도 자연산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독버섯, 독사, 잡초 등은 모두 자연산이지만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역자연주의 오류’는 자연주의 오류와는 반대로 ‘가치’에서 ‘사실’을 도출해내거나, 또는 ‘성질(특성)’을 근거로 해 ‘존재’를 증명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역자연주의 오류는 흔히 공상적 사회주의자나 원시사회를 동경하는 퇴행적 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참으로 아름답게 살았다”는 가치판단에서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존재판단을 하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정운찬 위원장의 발언이 역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의 타당성이나 정당성 검증에서 이에 집중하지 않고 돌연 이 정책은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니라고 항변함으로써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논점을 흐리게 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케인즈 정책의 성공을 들어 그 정책은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케인즈 정책의 성과가 좋은지 여부는 경제학계의 진부한 논쟁인 줄 압니다만, 케인즈류(類)의 정부개입정책 성과가 대개 전쟁이나 공황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한정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케인즈가 오해 받은 것처럼 초과이익공유제도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정 위원장의 발언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은연 중에 공감하는 이유는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는 기업의 이윤 추구의 이기성 때문입니다. 즉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는 이기주의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기주의가 도덕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믿는 것은 이기주의(egoism)를 매우 편협한 관점(eccentric; selfishness)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이타주의(altruism)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세심한 논의가 요구되므로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기심을 무조건 죄악시 하고 악덕으로 보는 것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태는 어떻습니까. 여야를 막론하고 초과이익공유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들을 일제히 공격하고 논의 자체를 이념논쟁으로 폄하시키고 있습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시행되면 공도동망의 징조가 드러나는 데도 불구하고 다가올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만을 의식해 포퓰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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