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인이 재난 앞에서 침착한 이유
[기고]일본인이 재난 앞에서 침착한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1.04.2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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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희 (사)세이브엔케이 연구원

석주희/이화여대 대학원 지역학(일본정치) 석사
도쿄 츠다주쿠대학 교환연구생 파견

지난 11일 일본 동북지역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한 이래 일본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각 언론사는 지진의 발생 경위와 쓰나미의 피해 상황, 쓰나미에 이은 원전 폭발 사고 등 연일 우려 속에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편, 전쟁터와 같은 폐허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대응하는 일본인의 의연한 태도가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의 피해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통곡하거나 울부짖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는 사람은 있었으나, 화면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일본인들은 의연하고 조용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토록 침착하고 냉정한 눈물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메이와쿠(폐·迷惑)’끼치지 않기

‘절대로 남에게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 것’. 이 말은 일본인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규칙이다. 어른이 돼서도 타인을 대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덕목으로 내세우는 이 말은 일본 사회 내의 무언의 약속으로 철저히 지켜진다.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집을 바라보며, 그저 묵묵히 다음 할 일을 할 뿐 울부짖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은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학습된 모습 그대로였다. 거의 폐허가 된 상점에서 줄서서 물건을 사거나, 타 지역으로 탈출하기 위해 몰려든 공항이나 버스정류장에서도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는 한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전 구간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다. 물론 사고로 지하철 노선에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든 원인은 지하철 공사에게 돌아갔고 부랴부랴 전 구간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한 것이다. 반면, 한국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지하철과 전차 시설이 있는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스크린 도어는 이제야 지하철 주요 구간에 조금씩 설치하고 있고 전차에는 전혀 설치할 계획이 없다. 도쿄 시내에서 지인과 약속을 하면 전차에서 발생한 자살사고로 전차가 지연돼 늦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지 않는 정부가 비난받기는 커녕 자살한 사람의 가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족들은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 이런 ‘메이와쿠’ 문화는 비록 본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을 겪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슬픔을 감내하는 일본인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그들의 의연한 눈물에 한 몫을 더한다. 패전국의 아픔을 딛고 세계로부터 "Japan as NO.1", “Made in Japan"으로 불리며 자본주의 국가의 성공 신화로 불리던 시절, 산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집단을 중시 여기는 사회 시스템이 견고하게 구축됐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의 자동차 산업 대결에서 승전으로 이끈 ‘도요타 방식’은 한때 자동차 산업 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의 전설적인 매뉴얼로 받들여졌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산업 전선에서 일본이라는 전체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개개인은 그 안에서 묵묵히 각자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와 개인보다는 집단의 의견을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결합돼 지금의 조용한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을 만들어냈다.
일본인은 태어나면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불교식으로 진행한다. 이처럼 일본인은 뚜렷한 종교적 신념보다는 상황에 맞춰서 종교를 택하고 있다.

 

일본이들의 종교 인식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외국 문물이라면 무엇이든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고 배워서 결국엔 일본화하지만 종교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선교하기 가장 힘든 나라 중 하나가 일본으로 꼽히는 만큼 종교는 일본에서 뿌리내리기 힘든 문화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일본인들에게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보다는 당장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을 우선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정신을 뜻하는 것 중 하나가 ‘이끼노코루’이다.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예전부터 지진 등 자연재해가 빈번했던 일본에서는 사후의 세계보다는 현재 살아가는 것이 당장 절실했다.
지금과 같은 상상도 못한 천재지변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도 당장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습관적으로 몸에 밴 현실적인 삶에 대한 충실성에서 나온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에 두고도 통곡해 울지 않는 것은 결코 남들보다 덜 슬퍼서가 아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 일본인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우연히 찾아온 고통을 조용히 인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이러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 속 깊은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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