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의 환상
녹색성장의 환상
  • 미래한국
  • 승인 2011.04.2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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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고된 저탄소 녹색성장
국제기후협약 실질적 붕괴로 40조 국책사업 표류 불가피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며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에 오른 나폴레옹, 그가 산 정상에서‘이 산이 아닌가 봐’라고 내뱉은 한마디에 용감하게 버텨왔던 군사들이 모두 쓰러졌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지금 그러한 상황이 이명박 정부의 야심찼던‘저탄소 녹색성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과장일까.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입니다.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입니다. 녹색기술은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문화산업기술을 아우르면서도 이를 뛰어 넘습니다. 녹색기술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일자리 없는 성장’의 문제를 치유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산업은 기존 산업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2008.8.15.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 中)

의문이 든다. 집권 3년차에 이르는 지금, 그렇게 요란했던 현 정권의 녹색성장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무언가 한참 잘못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30년 로드맵을 제시한 현 정부로부터 집권 3년차에 자신의 청사진에 대한 아무런 이슈가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반대에 부딪혀서인가?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저탄소 녹색성장과는 관계가 없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번지수를 잘 못짚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헛짚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지난 3년간의 핵심 국책은 개점휴업이 돼버렸다.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교토의정서’의 몰락, 미국에 이어 일본마저 탄소거래제도 포기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의 출발은 지난 2008년 7월 9일, 홋카이도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담으로부터 시작됐다. 여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교토의정서가 채택하고 있는 온실가스감축 의무에 대해 한국은 조기이행국(early mover)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OECD가입국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 중국과 인도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에 대한 감축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부담하지 않아도 될 온실가스 감축비용을 조기이행국 선언으로 2020년까지 약26조원을 떠안았다. 왜 그랬을까.

“태양·바람·물로 미래의 녹색시장을 선점하겠습니다.”

의문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답이다. 지난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2015년까지 40조원의 투자를 결정하면서‘녹색시장 선점’을 말했다.

문제는 녹색시장을 창출해야 할 기후협약과 교토체제가 붕괴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2008년 미국이 ‘중국의 불참’과‘불공정 무역’의 이유로 교토협약을 탈퇴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교토의정서가 규정하고 온실가스 감축량에 대한 초기 국가별 할당과 탄소배출권 거래 (Cap and Trade)제도가 근본적으로 반시장적이고 정치적이어서 성공 가능성이 낮았다는 점이 작용한다.

“가격을 매개로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 온실가스를 배분한다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는 시장친화적 정책수단으로 분류되지만 이를 시장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해‘배출권거래제의 제도적 문제점’이라는 논문의 저자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의 말이다.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공급 자체가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여타 자원의 할당 원리와 달리, 미리 거래총량을 규정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는 온실가스 공급량이 할당시장이든 프로젝트시장이든 정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고도로 정치적일 수 밖에 없고 배정국간에 갈등을 불러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해 EU의 탄소거래 시장 ETS 2기(2008~2012)의 온실가스 국가 할당량을 놓고 동유럽 국가들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법적인 반발과 이들 국가에 대한 EU 집행위의 패소는 EU의 탄소거래제도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거래 총량이 미리 정해지는 상황에서 탄소배출권의 가격의 진동폭은 대단히 클 수 밖에 없어 가격 시그널이 작용하기 어렵고 따라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설계상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배출권거래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것이 이선화 연구원의 결론이다.

이러한 태생적 문제는 결국 교토의정서를 강력히 밀어붙여 온 일본마저 지난해 말 탄소배출권 거래를 무기한 연기하는 사태로 악화됐다. 이유는‘일본의 국제경쟁력문제’였다.
결국 중국의 불참과 미국에 이어 일본마저 고개를 흔들며 포기한 탄소배출권거래제도를 우리 정부는 야심차게 밀어붙이다 결국 2015년으로 연기하는 상황에 놓여 버렸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녹색시장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통해‘부국’을 이루겠다는 정책도 헛발질이 되고 만다. 알프스산을 잘못 오른 셈이 돼버린 것이다.

 

좌파에 휘둘린 포퓰리즘 ‘녹색성장’     

자유주의 우파진영으로부터의 절대적 지지로 탄생한 이명박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둘러싼 국제적 흐름과 녹색성장의 기반인 탄소배출권거래제의 맹점을 간과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즉 좌파진영의 주도로 시작된 2008년 5월의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포퓰리즘으로 정책적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한 분석의 근거로 녹색성장이란 결국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에 다름이 아니고‘에너지 절약’이 그 수단임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계속 제기해 왔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아젠다를 녹색성장에서 전혀 등장시키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지난 겨울에 벌어진 전력대란의 원인은 등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가격 상승에 따른 적정 수준의 전기료를 인상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진 사건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등유가격이 98%나 오를 때 전기료는 12%밖에 상승하지 않아 등유나 석탄보다 전기로 난방하는 것이 유리했다는 이야기다. 현행 전기료가 생산원가를 밑돌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방치했던 것. 이와 관련해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녹색성장을 하려면 에너지 절약이 필수인데 정부가 말로는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산업계와 서민의 반발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안이 없는 좌파 환경단체들로부터의 압력도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포퓰리즘적 녹색성장 구상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까지 진보를 자처하는 모 환경단체의 간부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을 “집권 초반만 해도 4대강 등 토목경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가 현상 타개 및 진보진영과의 빅딜을 염두에 두었던 포석”이라고 해석한다.

이 관계자는 그러한 분석의 근거로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 정책에서 입안한 96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대부분 건설 관련이었음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4대강사업을 지속하고 좌파진영이 요구하는 교토의정서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현상을 타개하려 했다는 이야기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기후협약. 구속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갈팡질팡하는 원자력 에너지 대응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사고를 계기로 국내 좌파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제기하는 원자력 이슈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주목된다. 현재 한나라당을 비롯 청와대 내부에서 조차도 국내 원전의 안전문제와 원자력 에너지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입장 정리가 안 돼 있음이 취재 결과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3월 18일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교과위)이 주도한 국내 원자로의 안전 관련 전문가 간담회는 당내 복잡한 사정으로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지 못했으며 원자력의 효용가치에 대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본지 <미래한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와 여당이 미국과 프랑스처럼 원전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안전과 효용성을 적극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 외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대안 없는 국내 좌파환경단체들의 주장이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3월 18일 정부 관계자들과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진보신당 등이 참석한 국내 원자력 관련 세미나에서 좌파단체들은 독일의 2058년 원자력 중단 방침을 이야기하며 한국도 원자력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환경강국 스위스가 여전히 5대의 원자로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하며 지금도 추가로 원전시설을 짓고 있는 사실은 숨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전력생산의 30%가 원자력에서 나오고 있고 원자력을 포기하게 되면 전기료의 상승과 화력발전소의 확대로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기후협약에 거꾸로 가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기후협약을 위해 석유 사용도 줄여라, 석탄도 줄여라 하더니 이제는 원자력을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전기료 인상은 반대한다. 아무런 대책도, 아무런 대안도 없는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다 같이 망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청정에너지의 잘못된 환상 벗어나야    

뉴욕대 교수이자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리처드 앱스타인(Richard Epstein) 교수는 지난 3월 11일‘청정에너지의 십자군들을 조심하라‘라는 칼럼을 후버연구소에 게시했다. 그는 자신의 칼럼에서 ’오염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녹색 경제나 녹색 일자리를 창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오염이 폭력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따라서 당사자간의 보상으로 처리돼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석탄과 같은 비청정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장의 경우, 정부가 부과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면 업체들이 주민들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러운(?) 석탄이 청정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앱스타인 교수는 그러한 기존의 에너지와 새로운 대체에너지 간에 경쟁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새로운 대체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앱스타인 교수는 또 풍력이나 조력과 같은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 이에 대한 보조금을 지불하면 너도 나도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기존의 비청정에너지를 더욱 많이 사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오염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재의 효율로 태양열이나 풍력을 충분히 얻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의 자연파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오염을 막기 위한 에너지의 이용은 선택 결과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진정한 청정에너지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결국 우리가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목적이 공해를 줄이고 환경을 보전하자는 취지라면 그러한 에너지 개발 못지않게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에 있어 합리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방향이 요구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환경보호와 관련한 질문을 하나 하고자 한다. 가장 호전적이고 투철한 환경보호자는 누구일까? 관련 정부기관일까? 아니면 시민단체일까? 진보적 정당일까? 정답은 그 환경을 자기의 재산으로 소유하고 있는 주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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