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카이스트식 엘리트교육 문제 있나
[이슈] 카이스트식 엘리트교육 문제 있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5.0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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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국’ 싱가포르의 철두철미한 차등 교육을 들여다보다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따라 자살한 사태로 인해 ‘엘리트교육’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좌파 매체들은 이번 사태를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과 연계시키며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반정부 여론몰이에 혈안이다.

학생들의 자살과 관련해 카이스트에서 논란이 됐던 이슈는 ‘징벌적 수업료’ 부과다. 성적이 안 나오면 국가에서 이공계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중단되고, 학생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굴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살사태가 심화되자 서남표 총장은 결국 “징벌적 수업료를 완전 폐지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엘리트 교육에 대한 일부 언론 및 여론의 거부감이 도를 넘어선 수준이다. 이들의 여론몰이는 카이스트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경쟁’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카이스트식 학사관리와 엘리트 교육 및 경쟁은 대한민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이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엘리트 교육으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여념이 없다.

싱가포르, ‘능력에 따른 차등주의’ 교육

90년대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분류됐던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이다. 서울보다 작은 면적의 섬나라인 싱가포르는 항상 세계 5위권의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효율적인 국가운영 시스템과 부패를 모르는 깨끗한 공무원들, 도로와 항만, 컴퓨터 네트워크 등 첨단 국가기반시설 등이 겉으로 나타나는 이 나라의 경쟁력이라면 보이지 않는 경쟁력은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교육제도에 있다.

싱가포르의 교육은 영국식 엘리트 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철저한 ‘능력에 따른 차등주의’ 철학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의 교육은 ‘솎아내기식 교육’, ‘떨어뜨리기 위한 교육’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 카이스트의 엘리트 교육과 차등적 등록금제를 비난하는 한국 내 일부 국민들이 보면 기겁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상시적인 시험 준비에 바쁘다.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인 ‘THE STRAITS TIMES’가 지난 200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는 전체 초등학생의 49%, 중.고생의 30%가 과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교 졸업시험과 중학교 졸업시험 등 각종 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소수의 학생들만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 3학년 말 이전까지는 별 마음고생 없이 놀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든 학창 시절이 우리나라의 중간·기말고사 기간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이는 싱가포르의 교육철학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똑 같은 조건을 갖고 태어나지 않고 유전적으로 능력의 차이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은 맞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는 영국식 교육제도에 근간을 두면서 일부 독일식 교육제도를 가미했다. 학제는 영국식을 따르고 있지만 학생에 대한 엄격한 교육이나 개인의 능력에 따른 철저한 분반제도, 중등과정 기술학교 운영 등은 독일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의무교육제도도 없다.
즉, 학교는 원해서 가는 것이지 가기 싫은 사람까지 억지로 학교에 보내고 공짜로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단 학교를 원해서 들어가면 능력에 따라 철저하게 ‘떨어뜨리기’ 식 교육을 실시한다.

싱가포르 국립대 기숙사

중학생 중 25%를 엘리트로 양성

학생들만 각종 자격시험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싱가포르의 중·고등학교들 역시 싱가포르 교육부가 매년 시행하는 평가를 거쳐야 한다. 싱가포르 교육부(MOE)는 매년 중학교 졸업시험 결과와 교육과정, 교사평가,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 등을 기준으로 상위 50개 학교를 선정한다. 1위부터 50위까지 각 학교의 이름까지 명시해서 일반인들에게 공포하는데 일단 50위권에 진입한 학교는 안심하지만 여기에 들지 못한 학교는 곤란한 입장이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 결과를 토대로 학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소위 ‘실력이 없는 학교’로 낙인 찍히게 되면 학교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외면하게 되고 학교는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50위권에 든 학교 역시 맘이 편하지는 않다. 잠시라도 방심하게 되면 다음해 평가에서는 50위권 밖으로 밀려나거나 현재 순위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 간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매년 시행하는 ‘TOP 50’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일선 학교는 학생을 ‘독하게’ 가르치고, 좋은 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가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이다.

싱가포르의 대학 입학시험은 ‘A-LEVEL’ 자격시험인데, 싱가포르의 유일한 종합대학인 싱가포르국립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주니어 칼리지’에서 상위 10%에 들어야 가능하다. 매번 자격시험에서 지속적으로 상위 10~20% 안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싱가포르 주니어칼리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최소 네 차례가 넘는 혹독한 국가시험을 통과해 온 경험이 있다. 매년 5만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시험(PSLE) 결과에 따라 중학교부터 특별-속성-보통학교로 다르게 배정받는다. 주니어칼리지 입학 자격도 동년배의 상위 25%만 가능하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25%의 엘리트를 추려내는 것이다. 나머지 75%는 중학 졸업(4년제) 후 폴리테크닉(일종의 전문대·40%), 기술직업학교(25%), 노동시장 진출(10%) 등으로 일찌감치 진로가 결정된다. 종합대학 응시 자격도 주니어칼리지 졸업생(25%)과 폴리테크닉 학생의 일부(약 10%)에게만 주어진다.

싱가포르 정부는 주니어칼리지 졸업생 중 해외 명문대 진학생에게 매년 수천만 원의 학비·생활비를 지원한다. ‘대통령 장학생(president scholarship)’을 비롯해 싱가포르 군(SAF), 재무부, 경제개발청(EDB) 등 8개 부처에서 선발하는 전액 국비 장학생만 매년 200여 명이다. 이들은 귀국해 최소 6년 동안 정부나 산하 단체·기업 등에서 근무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특혜성’ 교육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다. 장학생 출신 엘리트들이 6개월마다 냉혹한 실적평가를 통해 진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정·관·재계를 움직이는 리더들도 예외없이 ‘정부 장학생’ 출신이다.

싱가포르의 중·고등학교들 역시 싱가포르 교육부가 매년 시행하는 평가를
거쳐야 한다. 싱가포르 교육부(MOE)는 매년 중학교 졸업시험 결과와 교육과정,
교사평가,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 등을 기준으로 상위 50개 학교를 선정한다.

 대학 학사관리 철저…등록금 연간 1천만원

싱가포르 의회

그렇다면 엘리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교 교육은 어떨까. 싱가포르의 대학교는 ‘들어가기도 어렵고,졸업하기는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학사관리 및 차등적인 장학금제를 자랑한다. 한국의 카이스트에 버금갈 정도다.

지난 2007년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부문 경쟁력지수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경쟁력은 11위다. 아시아권에서는 대만(18위), 일본(19위), 홍콩(25위), 한국(29위)보다 높은 최고수준이다.
싱가포르의 교육경쟁력은 세계 22위권의 대학인 싱가포르국립대(NUS), 인구 1,000명당 16명의 외국인 학생수(인구 435만 명에 외국인 학생 7만여 명), 싱가포르 3개 대학의 외국 유학생 비율 27.7%(77개국 8,600명)에서도 알 수 있다.

싱가포르의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학사관리가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의 취업기준으로 학업성적이 거의 절대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학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싱가포르 대학 학생사회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전해지는데, 술과 담배, 그리고 시위문화다. 싱가포르국립대(NUS) 주변에는 국내에서는 그 흔한 대학가 상권이라는 것도 전혀 없다. 학교 주변은 그야말로 청정구역이다. 술집은 물론 음식점도 없다. 상점도 거의 없다.

학생들은 구내버스를 이용해 기숙사에 있는 식당과 편의시설을 이용한다. 또한 캠퍼스 안에 드넓게 펼쳐진 잔디운동장과 육상트랙, 그리고 70여개가 넘는 테니스 코트, 깔끔하게 정리된 수영장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이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정부 방침과 술값과 담배값이 엄청나게 비싼 사회환경도 이유겠지만, 그들 스스로 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국립대 등록금은 연간 2만4,000달러로, 장학금 수령 실패 시 학기당 600만 원을 내야 하는 카이스트보다 더 비싸다. 카이스트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국립대 등 주요 대학들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장학금을 지급한다. 그럼에도 이를 ‘살인적인 학사관리’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카이스트, 경쟁력 약화시키는 변화는 안 돼

싱가포르가 작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국가경쟁력과 탄탄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는 데에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있다. 대학 뿐 아니라 초.중 과정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의 실체를 인정하고, 경쟁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후 그들에게 지속적인 엘리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 개인의 성공 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발전까지도 도모한다는 게 싱가포르 교육의 성공 사례다.

카이스트는 최고의 엘리트들을 선발해 과학 역군으로 육성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다. 이 같은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서조차 엄격한 학사관리와 차등적 등록금이 비난받는다면, 대한민국에서 엘리트 교육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급속히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모두 함께 생각해 볼 문제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잇따른 학생 자살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15일 긴급 소집된 카이스트 임시이사회에 참석해 “카이스트는 다른 대학과 달리 과학고, 영재고 등을 조기 졸업한 인재가 모인 곳인 만큼 인성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 가슴이 아프다”면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학생들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며 다시는 없어야 하겠지만, 서 총장이 강구할 ‘최선의 방안’이 엘리트 교육의 포기로 인한 카이스트의 경쟁력 약화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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