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청년들이 만든 통일준비 모임-성.통.만.사
남북청년들이 만든 통일준비 모임-성.통.만.사
  • 미래한국
  • 승인 2011.05.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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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엔케이 공동기획 / 통일 단체를 가다②

 

'성통만사 - 성공적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

서울시 양천구 목동. 북한인권 운동을 하는 작은 단체가 있다. 상주 직원은 4명에 불과하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탈북민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운영으로 여느 때 보다 더욱 활기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하. 성통만사). 청년 사업가를 연상시키는 김영일 대표를 만나 성통만사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보기로 했다. 김 대표는 북한인권운동가이면서 동시에 남한에 정착한 지 10여년이 지난 탈북민이기도 하다.

-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에는 유독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요.

2006년 10월에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 북한인권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 함께 만들었습니다. 대학 시절 통일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통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남한사람들은 북한문제에 소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통일문제에 관해 포괄적으로 접근하고자 친구들과 함께 결성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성공적인 통일 그 자체를 목표로 설정해 두었을 뿐 방법론적인 부분은 미비했습니다.

북한인권법 제정 운동, 탈북청소년 교육 지원

- 현재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활동은

한반도 통일의 선진화, 통일과정에 있어 성공적인 통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통일과정의 충격 완화를 위한 준비나, 통일 이후의 일들을 대비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업무를 세분화해 시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북한인권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분화돼 있는지요.

인권활동, 토론회·세미나를 통한 통일문제 논의, 탈북 청소년 교육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북한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도 국회를 방문해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 관련 세미나, 거리 캠페인 등을 개최해 탈북 대학생과 청년들이 함께 의견도 나눌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한스 자이델 재단(Hanns Seidel Foundation)과 같이 토론회, 세미나의 장을 만들고 대학생이나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곧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보시는군요.

네, 저는 통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사회에서 자리 잡을 즈음이면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통일문제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지원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사업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인권이라든지 통일에 대해서는 남한 청년들의 참여가 저조한 데 반해, 교육 분야의 경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북 학생들은 영어와 같은 실질적인 수업을 제공 받고 남한 학생들은 북한의 실상이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 특별히 영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나요? 원어민 선생님들도 계시고…

탈북 학생들이 영어를 가장 선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서 교육, 멘토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 지원자와 연결을 해주긴 하지만 교육 내용은 전적으로 탈북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통만사에서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문화행사도 더불어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학생과 선생님이 참여해 전시회나 공연 관람 등을 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유도한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을 증명하듯 사무실 곳곳에는 활기차게 웃고 있는 남북 청년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유학생 등 자원봉사자 수백명

- 사업 규모에 비해서 인력이 많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현재 상주 직원은 4명이지만, 그 외에도 자원봉사자가 수백 명 있습니다. 재정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주로 국외,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내 지원이 거의 전무합니다. 해외 지원의 경우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유학생들이 자원봉사로 활동하면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 성통만사의 북한 소식통은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 같은데요.

저희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저희 자체에서는 북한 연락망을 가지고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사람들이 먹고 사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북한 실상을 알리고 인권 개선을 유도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소식통을 통해 북한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꾸준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탈북 당사자로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북한인권법에 대해 더욱 관심이 있을 텐데요..

북한인권법은 처음 만들 당시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반대로 많이 수정됐지만 인권 그 자체에 대한 원칙적인 내용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진전이 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지요.

저희 단체에서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거리 캠페인이나 토론회 등을 통해서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북한자유주간에도 북한인권법에 대해 어필할 예정입니다. 북한인권법은 통일 이후까지도 대비할 수 있는 반드시 있어야 할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정권이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남한 정부의 액션입니다. 또한 북한주민들에게는 대한민국 정부나 정치권에서 자신들을 지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한에서 북한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인권법입니다. 이 법안은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통일 후 십년, 백년 뒤를 준비하는 중요한 법안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인권의 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있습니다만

반대하는 근거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당장 북한인권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탄압이 멈추고, 인권이 신장되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북한 정권이 의식은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을 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북한주민들이 남한 정부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대한민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 점은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영일 대표, 남한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정부 초청으로 미국가서 교육 받아

김영일 대표는 2008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통일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미국 정부 초청으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바 있다. 어려서부터 무조건 미국은 나쁘고, 위험한 곳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처음 미국을 갔을 때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국제정치라는 시각에 눈을 뜨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며 잘 살고 있다고 빙긋 웃는 그도 탈북을 결심하고 남한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탈북은 언제 하게 되었나요?

1996년, 19세 때 탈북했습니다. 그 시점은 탈북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속에서 걸리면 무조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이 정권을 잡은 지 2년 정도 지난 시점인데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들고 점점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실제로 같은 반 학우 중에서도 굶어죽은 친구들이 몇몇 있었고, 심지어 군인들도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저도 군대에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신분 차별을 겪었습니다. 같은 군인이더라도 식량 공급이 원활하고 승진이 빨리 이루어지는 부대가 따로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들과 탈북을 결심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습니다. 군에서 탈영해서 나온 순간부터는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중국에는 5년 간 있었습니다. 탈북해 중국에 온 직후에는 한국에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점차 남한의 소식을 접하면서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무조건 돈을 모았습니다. 2001년에 몽골, 베트남을 거쳐서 가족 전부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 한국에 와보니 느낌이 어떠셨나요?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으셨는지요. 

  2001년 1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말도 어렵고, 문화 적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언어 소통하는 데 3년 정도 걸리고 2002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3학년 쯤 되니까 좀 편해진 것 같습니다. 막상 대한민국에 들어왔더니 아무 것도 없었지요. 뭐든지 몸으로 직접 체득하면서 살아야 했고. 중국에서는 일만하고 지내다보니까 공부한다는 것이 낯설고 여유도 없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적응하면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인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이쪽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다보니 고생은 좀 했지만 남들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탈북민들은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빨리 받아들이고 그만큼 적응이 빠른 것 같습니다. 하나원 같은 곳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잘 돼 있는 것 같고요.

- 통일이 이룩됐을 때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북한주민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져 있을 텐데

탈북민들에게 과연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북한은 현재 원시 자본주의체제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시장을 중심으로 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고 돈이 많으면 잘사는 환경이 형성돼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취업률이 낮다고 하는데 그건 통계가 잘못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취업률이 높을 겁니다. 다만, 힘든 육체노동 분야에 치중돼 있기 때문에 가난을 넘어서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4월 27일 북한인권 관련 국제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김영일 대표는 성통만사가 통일과정에 도움이 되는 단체가 되도록 잘 운영해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석주희 객원기자  juhee.s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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