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연기금 주주권 행사 O.K”, 왜?
이건희 회장 “연기금 주주권 행사 O.K”, 왜?
  • 미래한국
  • 승인 2011.05.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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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연금의 대기업 주주의결권 행사강화 의지를 천명한 이후‘연기금 사회주의’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공적 연기금이 대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경우 새로운 관치(官治)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액은 지난해 말 54조원, 상장사 시가총액의 4.6%에 이른다. 이사 선임이 가능한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도 139개사나 된다. 국민연금은 포스코·KB금융·하이닉스·KT의 최대주주일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현대자동차의 경우 이건희·정몽구 회장 지분보다 많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들 대기업의 경영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재계 총수의 상징급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환영한다“고 밝혀 그 속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번 현 정부의 경제 성적을 혹평한 데 따른 ‘갈등 회피’로 보는가 하면 차라리 ‘정부로부터 공개적인 견제를 받는 게 낫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말한마디 잘못했다고 세무조사를 받느니 링에서 공개적으로 치고 받는(?)게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판단은 좀 다른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美 연기금의 주주행동 별 성과 없어

공적 성격을 띠는 연기금의 주주행동권은 1990년대 들어 미국의 사회학자들 사이에 커다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주제였다. 1976년 피터 드러커가 ‘보이지 않는 혁명’이라는 저서에서 노동자들의 연금이 기업의 주주로 참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에‘연금 사회주의’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던 이후, 실제로 미국 최대의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가 의욕적인 CEO 데일 한센을 맞아 1980년 말과 90년대에 주주행동을 활발하게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캘퍼스는 1992년 GM의 로버트 스템펠 회장을‘무능력한 지도자’로 낙인찍어 축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뒤이어 코닥,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웨스팅 하우스, 애플의 경영진들이 줄줄이 물러나는 사태가 왔다.1999년 캘퍼스는 미국 기업들에게 임박한 Y2K문제로 지분 조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2000년대에는 기업들에게 환경과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문제들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캘퍼스의 주주행동은 그러나 2003년 뉴욕타임스가 분석 보도한 것처럼“요란만하고 효과는 없는”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현장에서 캘퍼스의 주주행동을 10여년간 연구해온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의 우심(Useem)과 같은 학자들도“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 연기금의 주주행동은 실제 효과가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캘퍼스의 주주행동은 반기업, 친노동적 성향이라는 낙인을 얻었고 캘퍼스의 기금 운용의 목적과 효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캘퍼스가 메이저 기업을 상대로 실질적인 기업 거버넌스에 실패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 최대의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

거미줄 같은 기업간 이해관계 연금이 못풀어

이른바 인터락 (Inter Lock)이라 불리는 기업들 간의 거미줄 같은 연관관계다. 돔 호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에 의하면 미국의 메이저 기업들은 대개 이사진 3단계를 거치면 서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명의 이사가 동시에 여러 회사들의 이사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 기업의 인터락 현상은 캘퍼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기업을 선별해야 하는 문제를 안겨줬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만일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신규 제약산업 진출에 반대할 경우 삼성전자의 제약산업 진출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화학회사들과 장비회사들의 주가가 하락할 수 있고 그 회사들에 투자한 국민연금의 투자펀드는 손실을 보게 된다. 아울러 이들 회사들의 주주들과 경영진들로부터 해당 기업의 국민연금 지배 관리인은 압박을 받게 되고 연금 내 투자전략에 갈등이 초래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일종의 그리드 락(grid Lock)이라는, 교차 소유권 문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캘퍼스에서처럼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사실은 캘퍼스의 수익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기업지배구조 펀드라는 점이다. 캘퍼스는 이 부분에서 2009년 50%가 넘는 수익을 창출했다. 캘퍼스는 저평가된 기업들 가운데 자신들이 경영권에 영향을 줄 만한 기업들을 물색했다. 다시 말해 캘퍼스가 애플이나 GM,디즈니와 같은 기업들에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서 수익률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외국인 투자자 반대할 것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캘퍼스와 같은 주주행동에 나서더라도 수익성이 나쁘거나 자신들의 지배구조가 확실할 회사가 아니면 주주권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으로서는 외국인 투자비율이 48%에 달하는 삼성이나 포스코, LG 등에 주주행동에 나설 가능성은‘제로’다. 만에 하나 연기금이 이들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망 매물이 출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평가손실과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연금이 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의지처럼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경영에 간섭해서 중소기업과의 초과이익공유제를 관철하려면 삼성전자에 투자한 다른 기관 펀드와 외국인 주주들을 그 논리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데 그들이 턱없는 정부의 관치를 용인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시 말해 정부의 ‘관치’가 그 기업의 주가가치를 높이고 주주이익을 극대화시켜 주지 못하는 한, 오히려 화살은 정부로 향하게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는 기업과 시장의 논리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누가 누구에게 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참여자들의 맨파워로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라면 오히려 연기금의 대기업 경영 참여는 정부가 기업으로부터‘한 수’배워나가는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피터 드러커는 연기금의 주주행동이 연금사회주의를 가져 올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결과는‘연금 자본주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캘퍼스가 비록 친노동, 진보적 성향을 보였다지만 캘퍼스로 인해 도산하거나 망한 기업은 없다. 왜냐하면 캘퍼스 자신이 투자자이므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캘퍼스는 지난 해 11%라는 6년래 최고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환영’을 표시한 배경에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것이 많다는 그런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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