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씨버선길에서 만난 멋과 맛, 그리고 건강
외씨버선길에서 만난 멋과 맛, 그리고 건강
  • 미래한국
  • 승인 2011.05.27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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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의 문화공감

김점선 화백이 만산고택 사랑채를 찍어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걸으면서 길이 변신하는 중이다. 큰길, 오솔길처럼 보통명사로 불렸던 길이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같은 고유명사를 획득했고, 없던 길이 뚫리는가 하면 은밀한 길이 드러나고 있다.
길이 있어서 걷기 시작한 것일까, 걷기 위해 길을 만드는 것일까. 요즘 추세를 보면 있는 길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없던 길을 내기도 하고, 끊긴 길을 이으면서 길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은둔에서 소통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4월 셋째 주 주말, ‘외씨버선길’이라는 매우 문학적인 이름의 길을 따라 나섰다. 경북 내륙지역에 위치한 청송 영양 봉화와 강원도 영월까지 4개 지역이 협력해 만든 길이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표현한 보일 듯 말 듯한 외씨버선의 모습처럼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길이었다. 80% 이상이 산악지역인지라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도 많았다.

원래 청송에서 영월까지 이어지는 외씨버선길을 종주하면 10박11일이 걸린다고 한다. 아직 전부 개통된 게 아닌 데다 중간 중간 차로 이동하면 자투리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다.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봉화에서 1박을 하고,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영양으로 이동해 오후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1박2일 코스였다.

영양의 아름다운 숲‘대티골

낯설음과 특산물, 문화유산답사 등 여행은 여행객에게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금강송 군락지인 ‘봉화 춘양 문화재용 목재생산림 단지’를 걸을 때 피톤치트가 온몸을 휘감았다. 20~30m 높이의 춘양목은 문화재를 복원할 때 쓰이는 목재로 숭례문 복원에도 사용되고 있다.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21호, 133년 된 만산고택에서 묵을 때 일행은 상상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대문채, 정침, 서실, 별당 등 양반집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춘, 19세기 후기 민가건축의 특징을 지닌 집이다.
영양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의 생가와 소설가 이문열 선생의 생가 두들마을 등 문화의 향기가 흩날리는 곳이다. 영양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숲 대티골의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 길은 자연의 멋을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걷기여행 명품길’이라는 타이틀을 단 외씨버선길은 예술과 문화, 청정 먹거리까지 다양한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외씨버선길 팻말
왜 걷기 열풍이 부는 것일까. 도심에 앉아서 생각할 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길을 따라 나서니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투박하고 질박한 삶의 원형질을 만나는 일이었다. 산나물이 그득한 식탁과 조금 불편하긴 해도 사람 냄새를 맡게 해준 고택에서 묵는 일은 인스턴트에 물들고 다람쥐통처럼 단조로운 도시공간을 오가는 이들의 숨통을 확실히 틔워주었다.

급하게 산을 오르기보다 산허리를 돌거나, 마을을 관통하며 천천히 걷는 일이 각광받는 건 아무래도 ‘슬로시티’와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슬로시티는 공해가 없는 자연 속에서 생산되는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다시 예전의 농법으로 돌아가자는 국제운동이다. 1999년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그레베에서 시작된,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느림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허겁지겁 산을 올랐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걷게 된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걷기로 인한 폐해가 나타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을 떠들썩하게 휘젓는가 하면, 길가 과수원을 초토화 시키는 이들 때문에 아예 길을 막아버린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길을 만든다고 자연을 훼손하거나, 조용하고 은밀한 길에 일시에 사람이 몰려 여행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단다. 길 뿐만 아니라 슬로시티로 지정된 도시 가운데 어느 곳은 너무 사람이 몰려 그야말로 북새통이 돼 버린 예도 있다고 한다.

 

경북 내륙지역에 위치한 봉화, 영양, 청송은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은 곳이다. 단종이 유배를 간 은밀한 영월도 마찬가지이다. 고즈넉한 외씨버선길을 많이 찾되, 격조 있고 아름답게 음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천히 살기, 길 따라 걷기, 급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동안 해외 면세점을 싹쓸이 하는 쇼핑관광을 비롯해 좋지 않은 여행 행태가 많았다. 그런 여행은 폐해를 낳고 여독이 쌓여 일상복귀가 쉽지 않았다. 

  신선한 음식을 먹고 문화를 향유하면서 천천히 걷는 여행은 일상의 활력을 준다. 교류가 활발해지면 지방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슬로시티와 아름다운 길을 따라 우리 강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건강한 문화가 번져나가길 기대해본다. 

글·사진/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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