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방북의 슬픈 코미디
카터 방북의 슬픈 코미디
  • 미래한국
  • 승인 2011.05.2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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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설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트래직 코미디(Tragic Comedy : 우리말로 직접 옮긴다면  ‘슬픈 희극’ 정도가 되겠다) 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4월 말 한국 국민들 대부분을 짜증나게 만들었던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이야기가 바로 슬픈 트래직 코미디라는 별로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의 본뜻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카터는 희극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는데 관중들이 슬퍼한 것이다. 혹은 카터가 관중들을 웃기려고 노력했는데 관중들이 모두 눈물을 흘린 것이다.

카터는 지금 늙고 정신이 희미해져 이처럼 엉터리 짓거리를 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50대 한창의 나이에 미국 대통령이 됐을 당시부터 엉터리였다. 남의 나라 대통령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카터라는 개인의 인격과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 돼서는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미 대통령을 역임한 공인으로서 그의 행적이 과연 인류의 보편적 이익과 가치를 증진하는 데 기여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로 평가돼야 할 일이다.

카터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 대통령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네이선 밀러(Nathan Miller) 기자는 그의 저서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이라는 1998년판 저서에서 카터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는데 카터 대통령에 대한 장의 제목은 ‘카터 : 백악관은 대통령 연습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대통령’이라고 붙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카터는 아래에서 1/3 정도에 해당하는 등수를 얻고 있다.

카터는 밀러 기자가 말한 것처럼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이 됐다가  1회의 임기를 마치고 도전자인 레이건에게 사상 최악의 표차로 낙선당한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에게 패배 당한 날 그는 엉엉 울었다.

사상 최악의 표차로 낙선한 美 대통령

카터는 재임 중 미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추락 시킨 대통령이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고 말해 서독 시민들을 좌절 시켰지만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는 얼굴을 비비는 키스를 하면서 우애를 과시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얼굴을 비비고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는 뒤통수를 맞은 대통령이었고, 화가 나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과 자유진영 국가를 불참 시킨 대통령이었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소련 해군이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하는 것조차 방치한 대통령, 이란 주재 미대사관 직원들이 이란 정부에 의해 억류당하는 외교 사상 최악의 반칙 앞에서도 속수무책이었던 대통령, 사실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함으로써 미군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든 대통령이었다.

김일성은 좋아하면서 박정희를 그토록 미워한 대통령, 독재국가, 공산국가의 인권은 말도 꺼내지 못하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인 반공 독재국가의 지도자들만 달달 볶아댄 대통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게 밀려 자신의 대선 공약이자 대통령 임기 중 최대의 정책과제였던 주한미군 철수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대통령이었다.

카터는 1979년 한국 방문 시 김포공항에서 주한미군기지로 직행해 그곳에서 첫날밤을 지냄으로써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에 대해 외교적 무례를 행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터는 결국 박정희의 전략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그때 생긴 대한민국에 대한 억한 감정 때문에 그 이후 오늘까지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을 훼방 놓는 졸렬한 소인배가 됐다.

북한체제 연명과 핵위협에 기여

박정희가 인권을 유린하는 대통령이니까 미군은 대한민국을 지켜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 카터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혹은 소련,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너그러운 인간이었다. 박정희는 카터의 미군 철수 위협에 한국의 절박한 사정을 말하며 철군정책을 되돌려 달라고 호소했다. 카터의 막무가내에 박정희는 한국도 핵무장할 수 밖에 없다며 맞장을 떴다. 미국의 현실적인 지식인, 정치가, 군인들도 카터의 무모함에 반기를 들었었다. 당시 한국 주둔 미군 장성이었던 싱글로브 소장은 자신의 직책을 걸고 미군 통수권자인 카터 대통령에게 맞서 주한미군 철수론을 적극 반대했다. 미국의 식자들도 카터의 극히 비 전략이며 편파적인 인권 및 주한미군 철수 정책에 반대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카터의 인권은 공산독재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카터의 비전략적, 몰상식적 행동들은 결국 카터의 몰락으로 귀결됐지만 카터의 몰상식, 비 전략은 대통령을 그만 둔 이후 오늘까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몰상식, 비전략은 특히 한반도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비마다 방해 요인으로 작동해 왔다. 

카터와 카터를 추종하는 일부 논자들에게 카터는 한반도 평화를 가져단 준 인물이라고 평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카터는 북한체제의 연명에 기여한 자로서 대한민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을 더욱 증폭 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이며,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지속시킨 인물이다.
북한 주민들이 굶는 이유를 대한민국의 잘못이라고 비판하며 김정일의 환심을 사려 했던 카터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김정일이 불러서 간 것이 분명한데도 카터는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김정일을 알현하고 싶다는 일념에, 혼자도 아니고 전직 국가원수 3명과 함께 북한에 갔는데도 말이다.

북한 당국자는 평양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고 있던 카터를 불러 김정일의 메시지라며 별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글을 읽어 주었다. 카터는 아마도 김정일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전직 미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터의 권위는 이처럼 비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카터의 대를 이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사랑은 이처럼 트래직 코미디로 끝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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