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등록금은 누가 내나?
절반의 등록금은 누가 내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6.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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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대학등록금 반값 인하’ 문제가 정치적으로 결정될 소지가 엿보인다. 한나라당 신임 원내지도부가 꺼내든 이 카드는 무상급식에 이어서 또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미 우리 사회가 복지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렸음을 고려하면 찬성하는 쪽은 공세를, 그리고 반대하는 쪽은 수세의 입장에 처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기라도 한 듯 신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대학등록금 지원에 대해 “한 세대의 지식과 정보, 기술을 다음 세대에 가르쳐주는 것을 무상으로 하느냐는 국민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하면서 반값 등록금 재원의 확보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의 공세에 밀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미리 문을 열어 둔 셈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최대 이슈는 ‘국가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가?’라는 점에 모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무상급식에 이어 국가의 대학등록금 지원책은 큰 틀에서 복지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대정신이란 큰 물줄기의 흐름으로 미루어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움직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인이 갖는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그동안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이다. 정치인 역시 표를 얻어야 하고,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해서 정책화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래에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무상 시리즈는 일부 정치인들이 부추기기는 하지만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상시리즈가 시대정신이 된 사회

일단 찬성 측은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등록금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학생과 가정의 어려움은 대단히 감성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개개인의 사정은 딱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려운 사람은 돕자는 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할 수 있겠는가? 대학도 좋고, 관계당국도 좋고, 학생도 좋고, 학부모도 좋기에 결국 어떤 형식으로든 등록금 재원 확보를 모색하는 쪽으로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 번 정도 짚어봐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릴 수 있겠는가? 결국 납세자의 세금을 올려서 대학을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등록금 반액을 보조금으로 지불하든가,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채무 증가로 부담시키는 방법이 있다.

대학의 학자금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고 납세자의 부담이나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미루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모든 학생들이 대학까지 다니도록 준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우리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정당성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자기 선택의 원칙’과 ‘자기 책임의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점심값은 각자가 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원칙들이 근래에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저것을 국가가 세금으로 책임져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이들은 여론 형성 과정에서 우세한 위치에 있다.

앞에서 예외적인 경우의 도움이란 사회적인 부조가 꼭 필요한 집단에 대해서 예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이 사회적인 부조를 필요로 하는 집단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대학생들이 익명의 납세자들로부터 혹은 미래 세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이미 납세자들은 국립대학과 준국립대학에 막대한 세금을 지원하고 있다. 카이스트만 하더라도 1년에 2천억 원 정도의 재정지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 정의인가

과연 자기 학비를 남이, 그것도 익명의 납세자나 미래 세대가 지불토록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 결코 ‘정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익명의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은 그들의 재산 중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다수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지워버리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2011년의 대한민국은 점심은 내가 먹고 비용은 남들이 지불케 하는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호기에 찬 움직임이 멈춰 설 때는 언제일까?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위기라는 단어가 목전에 닥쳐 있을 미래의 어느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빚을 늘려가는 움직임은 위기의 경보음이 울리기 전까지는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경제원칙을 위배한 정책은 그냥 건너뛰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원칙은 위반하면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반드시 지불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익은 눈앞에 있고, 고통은 시간을 두고 주어진다면 당연히 이익을 챙기는 것이 보통사람의 선택일 것이다.
한편 이런 논의와는 별개로 대학 당국이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증가폭으로 등록금을 계속 인상해 온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학은 구조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등록금 인상에 있어서 고객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가격결정권이 전적으로 대학당국에 있음을 뜻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소비자물가의 누적 증가율은 36.8%인 데 반해서 4년제 국공립대와 사립대 등록금은 각각 70.1%와 100.8%로 증가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손쉬운 방법으로 등록금을 납세자에게 전가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대학등록금의 과도한 인상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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