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쇄신파를 해부한다
한나라당 쇄신파를 해부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06.09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좌클릭은 '살신병신'의 길

 

한나라당의 ‘신주류’, 이른바 쇄신파 의원들이 당의 정체성을 ‘보수’에서‘중도’로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작 민주당(民主黨)과 민노당(民勞黨)의 정책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당명을 아예 ‘민(民)나라당’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진보인사, 한나라당 쇄신안에 ‘무단도용’ 항의 촌극   

지난 5월 18일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 쇄신그룹은 ‘새로운 한나라’라는 주제로 토의를 가졌고 1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그들이 그리는‘새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아류 내지 관계기구 같은 느낌이어서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소셜네트워크(SNS)상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진영의 한 인사가 트위터를 통해 쇄신파의 ‘무단도용’에 항의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보고서는 먼저 한나라당 내 보수적 가치를 비판한다.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장’ ‘경쟁’ ‘법치’ ‘질서’ ‘성장’ ‘국가’ 등의 전통적 보수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정책에만 몰두해 왔다”고 비판의 포문을 연다.
우선 이러한 평가와 인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보수적 가치에 그렇게 몰두해 왔는가.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의 평가를 들어보자.

“시민단체 및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일관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지만, 용산사건에서는 오히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지명 철회했고, 광우병을 명분으로 한 불법 촛불사태 등에서는 우왕좌왕했다. 특히 초기에 폭력적 노동투쟁에 대해 확고히 법치주의를 확립시키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권 초기부터 보수가치인 ‘법치’와 ‘질서’에서 실패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또 다른 보수가치인 ‘시장’과 ‘경쟁’은 어땠을까.
“출범 초기 기업친화적 비전을 내세웠던 실용정부가 맞춤형 개혁이 아닌 백화점식 땜질 정책을 추진하며, 불확실성을 오히려 증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급격히 팽창했고, 국가채무가 전대미문으로 증가했다. 공공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그리고 부조리와 낭비 척결을 위한 과감한 개혁이 포기됐다.” 최광 전 복지부 장관의 평가다.

집권여당이 보수가치로서 ‘국가’ 부문에서 실패한 것은 북한의 금강산 민간인 피격에 이은 천안함 도발과 연평포격사건, 최근의 농협 사이버테러에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모습과 남북정상회담 구걸 파동 등에서 보듯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다만 보수적 가치인 ‘성장’에 관해서는 한나라당과 MB정권이 감세정책으로 2008년의 경제위기를 빠르게 넘긴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2년 친시장정책으로 양극화 완화,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다 

지난 6월 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최근 양극화 추이와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양극화의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을 정점으로 최근 2년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저소득층의 소득이 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득 불균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또한 2007년까지 증가세를 보이다가 2009년부터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추이를 살펴본 결과 중소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대기업과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한경연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다름아닌 2008년부터 지속되어온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정책 등 친시장정책이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한나라당과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하며 국민들에게 알리려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쇄신파의 보고서는 “2011년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이 속에서 위협 받는 ‘서민들의 삶의 질’”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를 완화하고 ‘민생을 안보’하지 않으면 보수주의의 기본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속할 수 없다”며 “‘공정한 분배’를 얘기하지 않으면서 시장과 경쟁, 성장과 법치만을 강조하는 것은 보수의 논리가 아니라 ‘강자의 논리’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노동당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객관적인 통계는 자유경제 보수적 가치인 감세와 성장정책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가 줄었고 소득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정부 통계를 보면 2009년 6%대의 경제성장률로 인해 이듬해인 2010년 소득 5분위중 중하계층의 소득개선이 상층보다 3% 넘게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2011년 들어 국제 원자재의 상승으로 코스트 푸시의 인플레가 있었고 이 때문에 서민가계가 경제성장의 체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나라당이 보수가치를 버려야 한다면 보수 정당 안에서 정작 쇄신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쇄신파 자신들이 아닐 수 없다.

쇄신파의 이중적인 속성은 지난 6월 지방선거와 올해 4월 재보궐선거의 한나라당 패인에 대한 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보고서는 “지난 대선 때 그 많던 중도성향, 40대의 지지가 왜 모두 이탈했는가를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냉철히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쇄신파는 한미FTA를 소신껏 처리하겠다지만 실은 반대하는 좌파의 눈치보기라는 것이 보수진영의 시각이다.

4·27 보궐선거 패배의 진짜 이유 

보고서는 또 “젊은 세대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20~30대 뿐만 아니라 보수적 성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갖고 있는 40대 마저도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것은 그들이 80년대 운동권의 세례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절실히 고민하고 있는 삶의 질의 문제 즉 ‘생활 정치’에 대해 한나라당이, 더 나아가 보수세력 전체가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대한민국 삶의 질은 최악이었다. 양극화는 사상최대를 기록했고 대학 등록금 인상률도 최고를 기록했으며 자영업과 중소 상인들은 솥단지를 내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2004~2006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4%를 웃돌 때 우리 경제성장률은 3%대를 기록했다. IMF로부터 우려스러운 충고를 받아야 했던 그 때에 생활정치를 고민한다는 40대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은 없었다.
그들이 한나라당과 MB정권을 이탈한 것은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한나라당 위인들은 좌파 포퓰리즘(남의 장단)에 휩쓸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며 “유권자로서는 좌로 갈 바에야 ‘좌 본당(左 本堂)’인 범야(汎野)를 선택하지 왜 조잡한 모조품 한나라당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보수 한나라당이 좌클릭을 한다면 이제까지 한나라당의 보수정책이 틀렸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칭 진보와 민주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민주당과 민노당이 오히려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아니라 ‘살신병신(殺身病身)’의 길을 가려 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좌클릭은 ‘살신병신’의 길

한나라 쇄신파를 보수진영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것은 자당 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을 쇄신파가 한나라당의 보수가치 문제로 호도하고 있는 점이다.
쇄신파의 보고서는 “민생이 위협받고 삶의 질은 악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한나라당은 이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력하기 보다는 정부에 무기력하고 고질적인 계파 간 대립으로 반목하는 모습을 노정하여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지지를 보내온 상당수의 국민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도록 한 것이 지난 3년간의 한나라당의 모습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쇄신파 스스로 인정하듯이 한나라당내의 권력투쟁과 계파갈등은 전통적 지지세력 뿐만 아니라 대안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무당파 국민들로 하여금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어떻게 한나라당의 보수적 가치, 그리고 이념과 관련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쇄신파는 보고서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어렵게 소신껏 청와대와 정부를 비판하면 인기에 영합한다고 비난하고, 당의 쇄신을 주장하면 남 탓만 하고 권력투쟁을 일삼는다고 비난하고,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무리한 정부 정책에 대해 양심과 소신에 따라 반대하면 어려울 때 당을 돕지 않는다며 힐난하는 정치문화는 헌법정신과 의회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들 쇄신파가 젊은 소장그룹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운 이들도 있다.

우선 이 쇄신파 그룹의 리더격인 남경필 의원은 4선의원인 동시에 국회 통외통위 위원장이다. 선수(選數)로 따지자면 그는 중진에 속한다. 언제까지 소장파로 남아 초·재선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통외통위 위원장으로서 한미FTA 비준에 보여주는 행태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남경필 의원은 재계와 정부가 조속한 처리를 원하는 한미 FTA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야당의 눈치를 보며 줄곧 “한미 FTA는 폭력 없이 상정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미국이 먼저 비준하면 하겠다”라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남 의원은 왜 위원장으로서 의원들을 적극 설득하려 들지 않는가?

 

쇄신파를 쇄신하라

무엇보다 쇄신파가 계파간 갈등을 한나라당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는 그들의 정치윤리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의 경우, 친이계 내 권력투쟁 와중에서 자신들의 가족과 관련된 공직자 비리혐의 내사를 ‘불법 사찰’, ‘정치공작’으로 매도하며 이슈화했던 사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직자라면 당연히 그러한 소문과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에도 마치 자신들은 선택된 신성군주마냥 이를 정적의 정치탄압으로 몰아세운 행태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해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우리가 아무리 살벌한 정치판에 있다 해도, 자신만이 선(善)이라는 근본주의에 빠져 본인의 인격도 상대의 인격도 짓밟는 언행은 젊고 양식 있는 정치인들이 종식시켜야 할 전형적 포퓰리즘 아니면 구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 초반에 스스로 단합된 모습과 안정적인 권력 시스템을 구현했다면 광우병 촛불 난동따위는 일어날 수 없었다. 親이상득, 親이재오, 親박, 주이야박(晝李夜朴), 월박(越朴), 도박(渡朴) 등으로 불리는 당내 권력투쟁과 알력이 스스로 한나라당을 내부로부터 붕괴시켰고 그 원인 제공자로서 쇄신파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쇄신파 스스로 책임통감 없이 자신들만 독야청청하고 고결한 존재임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요구한다면 이에 동의해 줄 보수세력도 없겠지만 그러한 위선적인 구애에 관심을 보일 중도도 진보도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성난 보수진영이 그들을 쇄신하려 나서기 전에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