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미술관 이연수 관장
모란미술관 이연수 관장
  • 미래한국
  • 승인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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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조각전문전시관으로 성장한 모란미술관
▲ ‘노래하는 탑’-수장고(收藏庫)를 세운 경기 마석 모란미술관 이연수 관장(57) /이승재 기자 fotolsj@
작품 보관창고 짓는데 3억원 투자작품 남기듯 지인과의 좋은 인연 남기고파모란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에는 초겨울의 고즈넉함이 짙게 배어있었다. 워커힐호텔에서 한강을 끼고 경춘가도로 들어서 마석 초입에 이르자 오른편으로 모란공원묘지가 반긴다. 죽은 자의 안식처 곁에 산 자의 영감을 부요케하는 예술세계를 담은 모란미술관은 공원묘지를 왼켠으로 비켜 널찍하게 자리잡았다. 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연수 관장과 차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실내에는 이브 몽탕의 샹송, ‘고엽(孤葉)’이 흐르고 있다.“저희 미술관 연못에 백련이 피어요. 3~4일쯤 후 꽃이 지고나면 그 잎을 따서 말린 뒤 볶아 직접 만들었어요.” 백련차(白蓮茶) 향기가 이브 몽탕의 애수 어린 샹송과 어울려 순간 말을 멈추게 만든다.“우연히 이곳까지 오게 됐어요. 미술관을 처음 세우던 때만해도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참 정취가 있었어요. 앞 산 이름을 따서 ‘모란미술관’이라고 부르고 제가 가장 좋아하던 조각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기 시작했죠.”그러기를 13년. 입체작품 상설전시와 함께 지난 95년부터 ‘모란조각대상’을 제정해 매년 한 차례씩 수상작을 내어왔고 척박한 조각계를 살다간 한국 최초 조각가인 김복진 선생의 유작집 출간 등 조각 분야 발전을 위해 땀을 쏟아왔다. 이에 앞서 93년부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년 여름 ‘모란 미술학교’를 운영,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높여주고 있다.“김남조 시인이 어느 날 절 찾아왔어요. 부군인 조각가 김세중씨의 작품 ‘피에타, pieta,1980’를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더군요.”이렇게 해서 김 시인이 가장 아끼던 ‘피에타’는 지금 8,000평이 넘는 미술관 동편 작은 연못가에 자리잡고 서있다.이연수 관장이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각작품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남편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회화전문 미술관을 생각해 보았으나 사업을 하는 남편이 해외출장 길에 조각미술관부터 먼저 찾는 열성에 감복해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이관장은 조각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나이 50이 넘어 숙명여대 대학원 미술교육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처음에는 좋은 조각품을 보면 미술관에 가져다놓고 전시하고 싶은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을 이길 작품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요. 느낌과 감동이 인위적인 것을 뛰어넘으니까요.” 겨울철 눈 덮인 동그란 봉분이나 산 위에 턱 버티고 서 있는 바위- 그 어느 것도 인간이 만든 조각품보다 더 뛰어나게 비친다며 잔잔하게 웃는다.“미술관은 화랑과 달리 작품을 매매하지 못하고 수입이라고는 미술관 입장료가 전부여서 운영에 힘이 벅찹니다. 그렇지만 돈을 써도 보람이 있으니까 이 일을 하는거죠.”언제나 말없이 뒷바라지를 해 주는 남편에게 죄스런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는 이 관장이지만 지난 10월에는 또 돈 들어가는 일을 덜컥 저지르고 말았다.“그동안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收藏庫)가 없어 콘테이너 박스에 담아두다 작품이 많이 상했어요. 보다 못해 수장고를 하나 짓기로 하고 건축가 이영범씨에게 부탁했더니 저렇게 ‘노래하는 모란탑(시인 이흥우 표현: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수장고 뒷벽을 잇대어 세운 높이 27m의 사탑(斜塔))형 탑 윗부분에 북두칠성을 닮은 7개의 구멍을 나란히 뚫고 종을 달아 바람이 불면 종이 부딪쳐 소리를 내는데서 비롯됨)’을 만들었지 뭐예요. 창고 하나에 3억원이나 들었답니다.”그러나 이 관장의 말투에는 조금도 원망 같은 것은 서려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탑이 모란미술관의 상징으로 자리잡으면서 매일 관람하러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수장고 하나 짓고 낙성식을 했을 때 문화예술계 인사가 300명이나 마석으로 몰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진가는 빛난다.‘작가가 작품을 남기듯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작품처럼 남기고 싶다’는 이 관장. 그녀는 피곤할 때면 관장실을 나와 300 걸음쯤 떨어진 곳에 지어둔 작은 통나무집에 틀어박혀 장미꽃을 그리며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그를 만나니 인생에서 ‘느낌’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꾸만 곱씹게 된다.최노석 편집국장 it_ceo@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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