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사라졌던 학생 운동권 부활하나
[심층취재] 사라졌던 학생 운동권 부활하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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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 대학 1만명 회원 확보한 민노당, 등록금 투쟁 총동원령

 

대학 등록금 문제가 이슈화됨에 따라 민주노동당이 웃고 있다. 지난 7년간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씨를 뿌려온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민노학위)가 비로소 캠퍼스에서 화려한 수확을 안겨주려 하기 때문이다. 민노당으로서는 대학생 등록금이 반값이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 이미 자신들의 ’프레임‘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민노학위)게시판에는 대학 등록금 반값시위와 관련해 지침문이 올라왔다. 지침문의 요지는 “5월 29일 대학생들의 광화문 투쟁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값등록금 투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내자”였고 그 실천방안은 ‘매일 오후 8시 광화문 KT본사 앞에서 수도권 대학생 중심으로 집회를 연다’였다. 실제로 대학생 등록금 시위는 청주를 비롯 지방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눈에 띄는 것은 ‘6월 1일까지 학내 주요 거점에 게시문을 공고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민주노동당이 각 대학 내에 ‘거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고, 민주노동당이 대학생들을 이번 등록금시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민노당의 학내 조직 운영 방식

 
현재 민노학위는 전국 61개 대학에 약 1만명에 가까운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캠퍼스내 최대 운동권 조직인 한대련(한국대학생총연합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대학생 정당 조직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노당 학생위는 정기적으로 소액의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들로 구성돼 있다.

중앙당과 운영위원회, 집행위원회, 학교별 대학위원회 등 피라미드식 형태를 띠고 있는 민노당 대학위 본부는 거의 매일, 운영위는 매월 두 차례 모임을 한다. 또한 민노학위는 매년 주기적으로 학생당원을 모집한다. 이 행사에는 이정희 대표가 과거의 관례를 깨고 참석하고 있다. 

“너무 이상하고 살벌했어요. 어떤 광신적인 종교 집회라는 느낌이었죠. 북한 노동당 대회에 참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어요. 도중에 나와버렸죠.”

지난 해 민주노동당의 학생당원 모집행사에 호기심으로 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대학생 A씨의 이야기다. A씨는 대다수 학생들이 느끼듯이 높은 등록금에 불만이 있었고 참여 동기를 갖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학생당원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정치인들 중에 우리 편은 없잖아요”. 이어지는 A씨의 말이다.

대학생 A씨의 생각은 민주노동당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현재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금번 등록금 시위를 계기로 과거 캠퍼스 운동권 세력의 부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 28일에 있었던 민노학위 9기 학생당원대회에서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민노당을 대학생 지지율 1위로 만들어 2012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지난 4·27재보선의 민노당 약진과 관련이 있다.

아울러 민노당은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노대통령 자살 이후 26.8%에서 16%대로 하락한 것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대학생 지지율 1위 민주노동당’이라는 위상으로 내년 총선을 향한 야권연대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계산이다. 최근 민주노동당이 야권 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지지율이 높은 유시민의 참여신당과 제휴를 모색하는 배경도 이러한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노동당이 대학생 조직을 자신들의 전위로 삼고자 하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재 대학생 학생회 조직이 2000년대 들어 탈이념화로 실질적인 운동력을 상실해 왔다는 점과 이를 방치할 경우 민노당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생존차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특히 대학생들이 북한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보수적이라는 것이 종북성향의 민노당으로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따라서 민노당으로서는 금번 ‘등록금 투쟁’과 같은 대중적 통일전술로 대학생들을 포섭하는 동시에 친북사상을 거부감 없이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민노당의 전략은 2010년 제9기 민노당 학생위원장으로 선출된 고려대 총학생회장 정태호의 출사표에서 잘 드러난다.

“MB가 내세웠던 ‘경제대통령’의 허구성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MB정부는 이에 자신의 활로를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서처럼 위기를 조장하는 안보장사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족의 생명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보여주었듯이 MB정부의 안보장사는 민심이반과 광범위한 평화세력과의 전면적 갈등으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 것입니다.”

반미·종북 주장을 감성적인 청년실업·등록금 투쟁과 연계해 위장

정태호 민노학위 위원장의 주장은 바로 북한 노동당의 주장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한다. 그의 공약에는‘청년 실업 운동 등 대중 정치 활동 강화’와 함께 ‘반미 - 반전 투쟁을 전략적으로’라는 실천 테제가 들어 있다. 반미, 친북을 청년실업, 등록금 투쟁 등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홍진표 시대 정신 이사의 해설을 들어보자.

“민노당 학생위원회는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본래 민노당은 운동권의 이른바 PD계열(민중민주주의)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나 지난 1999년 주사파 지하조직인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이 당국에 의해 파악되면서, 지하활동이 불가능하게 된 영남권과 경기남부 등의 주사파들이 조직적으로 민노당에 가입했지요. 현재 7만의 민노당원의 정확한 정파별 분포는 알려진 바 없으나 소수파에서 시작한 주사파계열이 득세했고 특히 신규당원들의 다수는 민노당 학생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주사파들에 의해 충원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민노당의 실질적인 행동부대인 민노학위의 종북성향은 등록금 시위기간 직전인 올해 4월부터 5월 사이에 민노학위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4월 18일, 민노학위는 ‘누가 괴뢰고, 누가 꼭두각시인가!’라는 제하의 교육 선전물에서 “북이 괴뢰정권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북의 고지식해 보일 정도로 비타협적이고 원칙적인 <자주정치>, <자주외교>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객관적 사실이며, 자주정치, 자주외교에 조응하는 <자립경제>는 자주외교의 또 다른 표현이다”라며 북의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민노학위의 또 다른 글에서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은 1999년 서해교전의 재판이다”라며 “미군의 지휘하에 벌어진 미·남의 북침 전제 합동군사훈련이 빚은 또 하나의 가슴 아픈 비극인 서해교전은 6·15공동선언에 이어 10·4선언의 서해평화지대안이 남북 수뇌 사이에 합의되면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NLL을 무력화하겠다는 북의 주장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허물어진 외양간에서 소를 발견하다’

대학의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87년에 이어 91년 강경대 군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는 결국 그해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동력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적어도 유로 코뮤니즘 사회를 대안으로 생각했던 좌파들이 속속 전향하기 시작했고 군사정권의 종식과 함께 반독재 투쟁의 동력도 소진됐다.

 97년의 IMF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을 정치에서 경제로 옮겼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표현됐던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흐름으로 캠퍼스에는 거대 담론과 이념의 몰락시대를 맞았다. 동시에 늘어난 대학생 수와 기업의 경쟁 격화가 대학생들로 하여금 현실세계에 천착하도록 요구했다. 학생회는 비운동권 출신들로 대체됐다.

“한마디로 대학 운동권은 종말을 맞이했어요. 모든 것이 회의적이었지요. 과거처럼 대학생이라는 엘리트 의식도 없어졌고 학생들은 학점과 취업만으로도 숨이 막혀 오는 시기였습니다. 이념이 자리할 공간이 없어졌죠.” 2000년 초반까지 대학 운동권에 남아있던 K씨의 이야기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10석을 얻으면서 대학 내 분위가 바뀌기 시작했죠. 결정적인 것은 2007년 88만원세대라는 책이 나오면서 였어요. 학생들이 드디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죠.”

최근까지 대학생 운동권에 몸담았던 또 다른 K씨의 이야기다. 그는‘88만원세대’의 등장을 ‘빈집에 소들어 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허물어지는 외양간을 무력하게 지켜보다 거기에 ‘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결국 그 ‘소’를 애지중지 돌보고 키워낸 것은 자유보수진영이 아니라 바로 민주노동당이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1만명의 민노학생조직이었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주역들이었으며 금번 등록금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들이라는 것이 K씨의 설명이다. 

종북(從北)을 포기하지 않는 민주노동당이 지난 7년간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조직화하고 있을 때 정작 자유보수진영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파는 대학생들의 좌경화만 걱정하며 산발적인 일회성 행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우파적 가치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지 묻고 싶을 때도 있죠. 심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파운동은 만들어진 젊은 인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만들어가는 인재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대학 캠퍼스 안에서 우파학생운동이 발을 디디지 못하는 것이죠.”

보수진영, 학생 문제에 애정과 철학 가져야

변종국 전 한국대학생포럼 대표의 이야기다. 변 대표는 한나라당의 경우 대학 캠퍼스 내의 젊은 우파 인재를 키워내는 일에는 정작 무관심하다가 그런 인물이 나오면 이용하기 바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해서는 캠퍼스 내에서 ‘과정’으로 키워내는 좌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변대표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캠퍼스에서 보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사실 기존의 보수는 대학생들에게는 기득권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보수는 말 그대로 ‘지키려는 자’로 묘사됐고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냉혹한 무한경쟁주의자로 그려져 있지요.”

윤주진 현 대학생포럼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기존의 보수’가 ‘젊은 보수’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일단 대학생은 지킬 것이 없어요. 아니 아직 이루어놓은 것 조차도 없죠. 마찬가지로 취업이라는 전쟁에 뛰어들어야 할 청춘에게 무한 경쟁의 세계는 냉혹하기만 합니다. 기존의 보수의 개념으로는 최근 대학생 성향 변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요. 분명 젊은 보수는 새로운 이해를 갈구합니다.”

앞의 두 젊은 보수 청년들의 이야기는 현재의 자유보수진영이 대학생과 청년들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그들의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며 격려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과정’과 ‘동참’으로서의 보수운동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대학생들을 표로만 보는 지금의 한나라당이나‘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박한 이들의 현실에 자유보수 진영이 어떻게, 무슨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 줄 수 있느냐는 철학과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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