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출신이 진단하는 대학가의 오늘
운동권 출신이 진단하는 대학가의 오늘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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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현준 (사)시대정신 사무국장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대학 운동권의 주사파세력(NL)은 한때 북한의 주체사상을 자신들의 지도이념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의 실상을 접한 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이념적 전향을 경험한다. 과거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권 ‘선수’들은 현재의 대학 등록금 시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래한국>이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허현준 시대정신 사무국장을 만나 현재 대학가의 분위기를 진단했다.

- 과거 치열한 운동권으로서 현재 반값 등록금을 둘러싼 대학생들의 시위를 보면서 어떤 점을 느끼시는지요?

"386세대도 그렇지만 지금의 20대 세대도 구분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386세대가 펼친 학생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이었고 그 주축에는 주사파와 정통 막스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386운동권과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 간에 ‘민주주의’라는 정서적인 공유는 있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특성이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386세대라는 용어를 만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운동권 성향으로 비쳐진 것이죠.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공통된 관심사였습니다.

한마디로 자유를 원했고 권위주의 정부에 비판적이었지요. 헌법이 명령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당시 군사 정부가 온전히 담보해 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당시 386세대들은 대부분이 정부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운동권들에게는 일반 386세대들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 회복이 목표가 아니었지요.

민주화란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수단이었고, 다시 말해 일반 386이 원하는 민주주의란 쁘티부르조아혁명의 단계였을 뿐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저를 포함한 운동권의 생각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시 386 운동권이 내건 민주화운동이란 위장전술이었다는 거군요.

"적어도 핵심 운동권 사람들에게는 그랬죠.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는 공산혁명을 위한 진보라는 이름의 위장이었습니다. 당시 386세대에게 너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일반 세대들은 헌법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이야기했겠지만 운동권은 인민민주주의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북한 문제로만 봐도 당시 일반적인 386세대가 어디 김일성, 김정일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여겼겠습니까. 하지만 직업적 운동 386들에게 김정일은 여전히 수령으로 모셔야 했던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면 40대가 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는지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386세대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했던 것이죠. 그 386가운데 10% 정도의 주사파 운동권이 두드러졌을 뿐입니다. 즉 이명박을 지지했던 386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민주를 회복하려던 사람들이고 그들의 눈에는 이명박 후보가 더욱 진보적으로 보였던 것이죠. 그렇게 386은 유동적이었던 겁니다.

대중성 확보 위해 등록금 문제로 ‘세련된 진보’로 위장하는 것

- 그렇다면 현재 대학가의 20대 학생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20대도 비슷합니다. 지금의 한대련이나 과거 한총련 등은 과거 386운동권의 유산을 물려받았죠. 그들은 여전히 이적성을 띠면서도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술적 전환을 꾀합니다. 그래서 학생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보다 세련되고 진보적인 모습을 어필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한 전술은 일부 효과를 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78개 대학에서 한대련 소속들이 학생회장에 당선된 사실이 그러한 점을 말해 줍니다. 정치적이나 이념적 문제를 들고 학내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거기에 관심이 멀어진 학생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등록금, 학사행정 등 학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를 투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지요.

일반 20대 학생들의 경우를 보자면 아무래도 젊은이들이기에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는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보수로 대변되는 정부나 한나라당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념적 문제라기보다는 한나라당과 정부가 잘하는 것이 없어 보이고 회전문 인사 등을 보면서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이죠. 결국 현재의 20대는 이념적 성향으로 인해 반 정부적이고 반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들이 노출하는 문제점에 비판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대학생들을 선동하는 세력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세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과거 학생운동권의 주사파 핵심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80년대 학생운동은 90년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성찰의 기회를 얻었고 특히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부터 민주화운동 진영내 종북노선을 버리고 오히려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시대정신’의 멤버들도 대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첫째로 노무현정권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이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였다는 인식과 형평성 잃은 친일파 청산 문제 등이 국가 정통성을 흔들어 댔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역사공동체 안에서 북한과의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북한 주민이 아닌 북한 독재자 김정일과 연합하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세번째는 세계사적 흐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사적 흐름이 자유주의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그러한 사상적 전환을 가져온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80년대 후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보며 운동권 내에서 반성이 일었죠. 당시 운동권의 이론은 막스레닌주의가 주축이었고 여기에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가세했습니다. 이때 운동권 내부에서는 사회주의 이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고 이에 대한 연구가 내부적으로 일어났던 것이죠. 여기에 문민정부의 탄생은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 시절과는 다른 형태의 대중운동에 대한 요청을 제기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폭력혁명은 끝났다고 본 것입니다. 제가 90년대 전북대 총학생회장이 되면서 최초로 캠퍼스의 비폭력 운동을 선언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비판이 일었습니다.

시대정신에서는 최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모은 '한국 민주주의 기원과 미래'를 출간했다. 
90년대 들어서야 마르크스주의 폭력혁명과 결별

이후로 전국 대학에서 폭력시위를 배격하는 움직임들이 뒤따랐죠. 이러한 흐름은 이후 전대협과 한총련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80년대 후반 이후 사회이론의 새로운 검토와 함께 운동론으로서의 변화가 배경이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통일운동에 대한 변화는 극적이었는데 북한에 대해 검토하다 보니 그들의 모순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죠. 처음에는 워낙 골수주의자들이었기에 그 진행속도는 더뎠지만 결국 큰 흐름은 종북주의를 버리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 90년대 당시 통일문제와 관련해 운동권내에 대논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94년에 통일운동을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졌지요. 한쪽에서는 북한과의 3자연대를 통해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반대했지요. 북한의 명령과 지시가 아니라 대중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보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러한 논쟁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맹동적인 노선에 많은 이탈자들이 생겼고 이후 북한의 대량 아사사태와 같은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집단 전향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결국 북한은 극단적인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도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 적지 않은 운동권 출신들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도왔는데, 지금 생각은 어떻습니까.

 지난 대선 당시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그룹이 많았죠. 하지만 그것이 소위 친이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구요.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심각할 정도의 문제를 노정할 줄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정권교체에 대한 욕구가 워낙 강했지요. 물론 처음부터 우려는 있었습니다. 혹시 이명박 후보가 국가를 기업의 형태로 운영하려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많았지요. 국가의 통치를 경영이념과 같은 형태로 인지한다면 효율성을 위해 일사분란함이 요구되고 결국 그것은 소통부재와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사실이 된 겁니다.

- 얼마 전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께서 주장한 ‘반공주의 포기론’이 논란을 낳았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안병직 선생께서 보수가 반공을 버려야 한다고 했던 말씀의 배경은 바로 대한민국이 가진 자신감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몰락했고 북한은 공산주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도 없는 독재체제인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그러한 이론을 논하는 자체마저 금기시해서 사회통합에 스스로 걸림돌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관점인 것이죠. 단, 두 가지는 수용하기 어려운데 하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타도하려는 세력이고 또 하나는 북한과 연대하겠다는 세력입니다. 그러한 세력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지만 사상의 자유로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나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논의하는 자들의 입마저 막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것이죠.

실제로 우리가 국제연대를 통해 북한의 민주화와 체제 변혁을 이끌어 내려고 할 때, 반공연대와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권이나 반핵과 같은 가치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국제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모토인 것이죠.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안병직 선생의 반공론을 보수진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공주의 포기, 공동체 자유주의 논쟁

- 최근 소위 ‘공동체자유주의’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결국 국가 공동체주의가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주의는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이 요구하는 자유의 정도가 다를 경우, 문제가 되죠. 각 집단마다 요구하는 관용과 요구하는 자유의 수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추구하는 자유의 추상적인 면에서는 동의하지만 국가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그 자유와 요구들이 충돌할 때 그러한 갈등과 이해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럴 때는 결국 협력과 질서가 필요한 것이죠. 예를 들어 국가가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 개인의 자유로 방어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국가 안에서 개인의 자유는 일정부분 양보되고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자유주의는 국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 공동체의 유지와 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는 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조정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공동체주의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민주주의 이름으로 이야기 합니다. 결국 한 사회의 유지는 어느 하나의 일방적인 이론으로 유지될 수 없고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논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인 것이지요. 즉 이러한 다양하고 서로 다른 가치들이 협력할 수 있을 때 사회통합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결국 사회통합이 중요한 시대정신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향후 추구하는 비전은 어떤 것입니까?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통일 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핵심 사항입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분담해야 할 비용과 희생에 대해 저희는 좌파진영과 토론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북한에 급변사태가 올 경우 대한민국에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진행시켜 놓지 않으면 그 순간에 대한민국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우리가 통일한다면 북한에 절반은 내놓아야 할텐데 국민 소득 2만 달러 가운데 우리가 과연 절반은 내놓을 의사가 있느냐, 아니면 30%라도 부담할 의사가 있느냐와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통일에 대한 사회통합은 안 되는 것이지요. 결국 통일을 맞이하고 북한을 재건하는 데 있어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이것을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저희는 논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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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좌파 2012-08-28 13:24:18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를 궁극적인 목표로 본 발전적인 운동권도 자유민주주의를 인민민주주의로 가는 수단으로 치부한 운동권과 급진적인 성향을 공유한다는것은 그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역사적 관점에서 보고싶네요. 이런 자유주의파들이 허황된 주체 이데올로기의 계승자들을 무너뜨려 역사의 뒤안길에 가두는게 순리일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