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정부 부동산 정책, 명분도 실리도 다 잃나
[분석] 정부 부동산 정책, 명분도 실리도 다 잃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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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효과로 전세값 폭등… 중산층·서민 모두 불만

정부는 지난 3월 22일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5년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빠른 속도로 급상승한 시기였다. 당시 정부는 보유세, 양도세, 대출규제 등 각종 억제책을 쏟아냈으나 시장의 기대심리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강남-서초-송파-목동 등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30평형대 기준으로 10억원을 넘나들었고, 자고 일어나면 수천만원씩 오른다고 할 정도로 폭등세였다.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를 하락시킨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평생 돈을 모아도 서울에서 ‘내집 마련’을 할 수 없게 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고, 이것이 아파트값 상승을 막지 못한 노무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08년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부동산 정책은 민심의 흐름을 결정지은 중요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 정부에서는 아파트 매매가격이 확실히 안정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매매시장의 과도한 침체와, 이로 인한 전세시장의 과열로 정부는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를 모두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노무현 정부에서 악명을 떨쳤던 보유세, 대출규제 등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들을 완화시켰다. 이에 힘입어 2009년 상반기까지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등 시장은 활성화되는 듯했다.

매매시장 과도한 침체로 전세시장 과열

그러나 다시 부동산 버블의 가능성이 점쳐지자 정부는 2009년 가을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제한하는 등 대출규제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로또’라고도 불리는 보금자리 주택을 2018년까지 150만호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금자리 주택은 공공이 재정 또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 매입해 분양 또는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으로, 주변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양가로 주택을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시장에 큰 충격을 가했다.

결과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침체였다. 특히 보금자리 예정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값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시장은 더욱 얼어붙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5월 수도권 재건축 매매변동률은 -0.50%로 전월(-0.33%)보다 0.17%포인트 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동구(-1.19%)와 과천시(-1.17%)는 5차 보금자리지구 예정지 발표로 타격을 입어 더욱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주공 6단지 69㎡가 5,750만원 하락한 6억7,200만~6억9,000만원, 둔촌동 둔촌주공1단지 53㎡가 1,500만원 내린 6억3,000만~6억5,000만원으로 나타났다.
또 국토해양부가 공개한 ‘2011년 4월 신고분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거래건수는 5만5,586건으로 전월의 5만9,142건 대비 6% 줄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787건으로 전월보다 24.6% 줄었고, 경기와 인천은 각각 1만1,443건, 1,710건으로 전월대비 18.2%, 20.4% 감소했다. 5개 신도시 아파트 거래량도 1,588건으로 전달보다 28.6% 감소했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의 끝없는 하락세는 ‘매매수요’를 ‘전세수요’로 전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매매가격은 하락하고 전세가격은 폭등하는 현상이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의 전셋값은 현재 3억~3억5,000만원, 115㎡는 4억~4억5,000만원선으로 불과 2주 만에 2,000만~3,000만원이나 올랐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7단지 121㎡의 전셋값도 4억원대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강남구대치동 은마아파트

민간의 정책개선 요구 반영 안 돼

보금자리주택의 청약 자격인 ‘무주택자’ 또한 매매수요를 전세수요로 전환시키는 요인으로 손꼽힌다. 로또나 다름없는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기 위해 주택을 매입할 능력이 되는 수요자들 중 상당수도 ‘전세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전세값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변수다.

인플레 억제를 위한 지난 6월초의 금리 인상 또한 부동산 매매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전세시장을 과열시킬 수 있는 요소로 거론된다.
한편, 이 같은 시중의 비판 여론에 대해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냉랭하다. 건설업계 등 각계가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대해 줄기차게 변경을 요구하자 4월 27일 당시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은 ‘보금자리주택을 흔들지 말라’는 뜻의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최 수석은 이날 발간된 청와대 정책소식지 ‘안녕하십니까 청와대입니다’에서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민간 분양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지적은 지나친 우려”라며 “보금자리주택은 청약저축,민간주택은 청약예·부금 가입자에게 각각 공급되므로 수요층이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주택거래가 부진한 것은 사실이나 집값이 안정되고 민간 분양가가 인하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의 지속적인 확대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권도엽 신임 국토해양부 장관도 지난 6월 1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당초 보금자리주택 150만가구 공급 목표의 골격은 유지하되, 보금자리 취지에 맞게 보완하면서 공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매매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손꼽히는 보금자리주택 정책의 골격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매매시장 침체가 내수시장 위축시켜

 
매매시장 침체와 전세가격 상승은 내수시장 전반의 위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동산시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41.3%는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와 전·월세가격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답했고 ‘실제로 지출을 줄였다’는 응답도 32.3%에 달했다.(‘별 영향 없음’ 26.4%)

무주택자 경우 ‘지출을 줄였다’는 응답비율(42.8%)이 ‘소비심리가 위축됐다’(31.2%)는 응답보다 많아 전.월세가 상승으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령대별로는 ‘지출감소’란 응답이 20대는 10.2%에 불과한 반면 40대와 30대에서 각각 44.7%, 43.3%로 높게 나타났다.

구매에 나서게 만들 집값 상승 폭으로는 ‘물가상승률인 3% 내외’가 58.5%로 가장 많았고, ‘물가상승률과 예금이자율을 합한 7% 정도’(18.7%),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10% 내외’(13.1%)가 뒤를 이었다.
부동산경기 침체에 대해 수도권 주민 68.6%는 ‘부동산경기 침체로 주택거래 부진, 전세난 유발 등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답했고 ‘자칫 침체 정도가 악화되면 경제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54.3%나 됐다. ‘현재의 부동산경기 침체상황에서도 경제불황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도 33.9%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서 결코 안정시키지 못했던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안정시키고, 거품을 뺀 것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매매시장 위축이 초래한 전세/월세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전월세 시장의 주요 수요자들인 서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2년 전에 비해 1억~2억원 가량 폭등한 전세가격으로 인해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50%대 중반까지 상승했던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작년 연말부터 급하락한 이유 중 하나로 전세값 상승이 거론된다.

대부분이 1가구 1주택자인 수도권 중산층들 역시 부동산 매매시장 침체와 관련해 불만이 많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오르던 아파트 가격 때문에 수억원을 대출받아 내집 장만을 했는데, 우파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에서 보금자리주택 정책과 대출규제 등으로 매매가격이 연일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중산층에서 모두 원망받는 정책

한 정치권 인사는 “지난해 지방선거와 올해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수도권에서 고전한 이유로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40~50대 중산층들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재의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정부가 서민들과 중산층들로부터 동시에 비난받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 내 뉴타운 사업의 연이은 좌초 또한 부동산 매매시장의 침체와 무관하지 않다. 매매시장이 활성화됐다면 신규분양에 대한 걱정도 적었을 것이고, 뉴타운 사업도 좀 더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도 최소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낙후된 지역의 주거환경을 대폭 개선시키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뉴타운 사업이 곳곳에서 중단되면서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도 내년 총선에서 고전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산층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부동층’이다. 이들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줬으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을 선택했다. 여당으로서는 이들의 표심을 잡지 못하면 내년 총선도, 대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중산층에게 있어서 부동산 정책은 이들의 재산 증감과 직결되는 민감하고도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지금은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시켜서 전세대란을 완화시키고, 매매가격 폭락에 신음하는 중산층들에게 퇴로를 열어주지 못한다면 내년에 있을 두 번의 큰 선거는 정부와 여당에게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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