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과 ‘역사투쟁’을 시작하면서
유령들과 ‘역사투쟁’을 시작하면서
  • 미래한국
  • 승인 2011.07.0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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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Modern Times)’ 읽기

 
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면서 더욱 그러하다.

사실 한 국가가 자신의 역사를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국가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협회’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보다 심각한 것은 국사의 필수과목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 보수우파진영이라는 비참한 사실이다.

국사 과목의 필수화가 꺼림칙한 이유

인정하기 싫지만 현재 국사, 특히 근현대사는 좌파진영에 거의 장악돼 있다. 따라서 현행 교과서와 현재의 교사진을 그대로 둔 채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만든다는 것은 좌익진영의 이념적 헤게모니를 강화시키는 역할만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젊은 층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좌파진영에 빼앗겼다. 그나마 경제학을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 상당한 반격이 이뤄지고 있다. 자유기업원과 하이에크소사이어티 등의 맹활약으로 자유시장 이론이 나름대로 기반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 분야는 아직 그러하지 못하다.

많은 좌익 청년들의 심장을 사로잡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인 조정래의 ‘태백산맥’ 끝부분을 보면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멸상태에 놓인 빨치산 잔당들은 ‘현실투쟁’에서 패배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투항하지 않는다.

이들은 투쟁방식을 전환시켜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이제 ‘현실투쟁’은 ‘역사투쟁’으로 바뀌었다. 이 소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빨치산 잔당들은 역사투쟁을 다짐하며 사라진다. 바로 이들의 완강한 역사투쟁의 결과물이 오늘날 문제의 역사 교과서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은 보리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는 농민들을 보면서 농민들이 ‘고기국에 쌀밥을 말아먹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빨치산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현실투쟁에서 패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아니 바로 염상진과 같은 ‘이상주의자’들이 건설한 국가가 있다. 바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김일성도 말했다. “쌀이 공산주의다”라고. 그런데 염상진이나 김일성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볼 때 ‘친일파’ 장교에 불과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이 꿈꾸던 ‘고기국에 쌀밥을 말아먹는 지상낙원’을 건설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태백산맥 염상진과 김일성의 꿈을 이룬 박정희

대한민국은 ‘현실투쟁’에서 승리했다. 춘궁기만 되면 아사자가 속출하던 세계 최고 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12위 수준의 경제대국이 됐다. 아니 거창한 숫자를 나열할 필요도 없다. 못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 문제가 되고 있는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끈질긴 ‘역사투쟁’의 결과로 마치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로 폄하하는 시각이 유령이 돼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한 한 독자로부터 “젊은이들의 두뇌와 심장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손주들에게 바로 ‘미래한국’을 구독시켜 주는 것 자체가 그러한 운동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씀했다.

그리고 “대학 다니는 손주놈과 말싸움을 하다가 서로가 권하는 책을 한 권씩 읽고 그 책에 대해서 토론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손주놈은 ‘태백산맥’을 선택했는데 나는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를 권했다. 한국사 책을 권했으면 했으나, 너무 난해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경우, 혹은 입장이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폴 존슨은 현대(Modern)의 개념을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도덕적 상대주의’가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공학이 바로 나치즘과 공산주의이며 이러한 유토피아주의가 얼마나 큰 해악을 인류에게 끼쳤는지에 대해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건설된 모택동-체게바라 실험장 

또 저자가 ‘반둥 세대’(Bandung Generation)라 언명한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른바 ‘제3세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제3세계의 모든 문제를 제국주의 탓으로 환원시켜버리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속편한 자기 합리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 좌파의 대표 이데올로그 리영희는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극찬했다. (리영희의 문화대혁명 찬양을 지금 중국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뭐라고 할까?) 그리고 지금도 체 게바라의 사진이 달린 T셔츠를 입고 서울 강남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따분한(?) 현실에서 벗어나 스릴(?) 넘치는 게릴라 투쟁을 전개한 게바라가 멋있게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잘 살던(첫 번째는 아르헨티나) 쿠바는 현재 중남미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의 하나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회공학적 실험에서 ‘몰모트’로 전락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염상진, 게바라, 모택동이 꿈꿨던(아니 내세웠던) 이상 사회는 이들의 ‘실험장’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건설됐다.

그런데도 염상진, 게바라 유령과 역사투쟁을 전개해야 하다니… 어쨌든 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권해 주기를 바란다. 다행히 번역본도 나와 있다.(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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