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베트남 분쟁의 전략적 교훈
중국·베트남 분쟁의 전략적 교훈
  • 미래한국
  • 승인 2011.07.1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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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국제정치학자들은 미소 냉전이 끝난 이후 전통적인 대결 지역인 서유럽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 왔는지 모르지만 아시아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는 냉전 종식 이후 오히려 더욱 불안정한 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 냉전이 끝난 이후 동아시아 각국은 냉전시대보다 더욱 심각한 국제 갈등을 경험하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들은 예외 없이 냉전시대보다 훨씬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간행한 세계 정치를 전망하는 저서에서 키신저 박사는 아시아에는 전쟁이 해소됐다고 말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냉전 후 동아시아 각국 오히려 갈등 심화

 
지난 20여년 탈냉전시대의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회고할 때 아시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실로 증명됐다. 군함의 함포가 불을 뿜고 폭격기가 날고 탱크가 진격하는 모양의 진짜 전쟁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에는 언제라도 진짜 전쟁으로 비화 할 수 있는 불씨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태평양 지역 전체가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영토분쟁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첫 번째 포성은 바다로부터 들려올 것이다’ 라는 예측도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바다(서 태평양)는 여러 국가들의 영토적 이해가 얽혀 있는 곳이다. 항상 있어온 일이지만 최근 그 강도가 상당히 높은 남지나해 영토분쟁이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야기됐다.

5월 26일 중국은 중국 어선으로 하여금 원유를 탐사 중이던 베트남의 페트로 베트남사 소속 탐사선의 케이블을 절단하게 했다. 물론 중국 어선은 중국 해군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베트남은 중국 어선의 케이블 절단 사건에 대해 “중국 어선의 케이블 절단 행위는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베트남 주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얼마 후 남지나해의 남사제도(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 주변에서 베트남 어선이 중국 군함 3척으로부터 위협사격을 받았고, 베트남 정부가 중국대사관에 즉각 사격을 중지하도록 요구하는 항의문을 보내 군사행동을 비난했다. 이 같은 항의에 대해 중국은 인접국들에 대해 미확정 분쟁 수역에서 허가 없이 원유를 탐사하는 것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해적 마크를 부착한 중국의 5성 홍기를 앞세워 가두시위를 벌이며 중국을 규탄했다. 사고 인근 해역에서 베트남 해군은 실탄 사격 연습을 했고, 베트남 정부는 동원령까지 발해 중국과 일전을 불사할 각오를 보이기도 했다. 같은 시기 필리핀은 미국 해군과 함께 남지나 해상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전개하기도 했었다.

중국이 먼저 베트남 탐사선 케이블 절단

남지나해 수역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 6개국이 영유권 분쟁에 개입돼 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이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은 남지나해 전역을 중국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남지나해의 거의 전부가 중국의 바다이며, 당연히 남지나해에 있는 모든 섬이 중국의 섬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중국의 주장은 지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대단히 제국주의적인 것이다. 지도에서 보듯 남지나해는 중국 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으로 둘러싸인 바다이며 당연히 남지나해에서 자국의 영토권을 주장하고 행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남지나해가 전부 자기 바다라니 중국은 이 지역에서 야기되는 모든 영토 분쟁에서 자동적으로 분쟁 당사국이 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동지나해,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영토 분쟁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동지나해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센카쿠(尖閣)열도 (釣魚島 : 중국 명칭 댜오위다오) 분쟁과 남지나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갈등은 언제라도 군사력이 동원되는 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베트남 동원령 준비하자 중국 한발 물러서

일단 중국과 베트남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비화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 같았던 이번 중국-베트남 분쟁이 실제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은 배경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전략적 교훈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약소국 베트남이 보여준 총력전을 결행할 수도 있다는 의지였다. 6월 13일 베트남의 응웬 떤 중 총리는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한 동원령 관련 법안에 서명했다. 비록 즉각적인 동원령은 아니지만, 베트남이 동원령을 준비하고 나선 건 중국을 향해 이번 분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은 더 이상 이 사건을 확대하는 부담을 감수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미국의 존재다. 미국의 존재라는 요인은 베트남의 결의보다 중국-베트남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더 중요한 요인이다. 만약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아시아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의 구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자마자 미국의 항공모함은 남지나해를 향해 발진, 군사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이미 미국 민주당의 짐 웹 상원의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 중국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상원에 제출해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영토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동안 미국에 대해 소원했던 일본의 민주당 인사들이 미국에 합동 해군 훈련을 탄원한 적이 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직후 한국이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협력할 때, 중국의 한 외교관은 ‘미국만 없다면 한국을 손 봤을 것’ 이라는 악담을 한 적도 있었다. 날로 그 행동이 거칠어지는 중국에 맞서 중국 주변의 국가들이 더욱 긴밀하게 미국과 협력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더 나아가 대국과 맞선 소국 베트남은 작은 섬 하나라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해 그리고 대국의 협박에 굴하지 않기 위해 온 국가가 단결해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또다시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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