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서민금융이 사라진 대한민국… 왜?
[분석] 서민금융이 사라진 대한민국… 왜?
  • 미래한국
  • 승인 2011.07.22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 성장한 펀드·사채시장이 자본 흡입

최근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시작으로 각 지역 저축은행의 불법대출과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한 직접 사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잠잠하던 저축은행의 불법과 비리가 터지자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행여나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정치권, 사법기관, 언론은 모두 쥐죽은 듯 엎드려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12년 동안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경제지표와는 달리 서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진 이유를 찾다보면 외환위기 후 급속히 성장한 몇몇 금융기관이 ‘성장의 과실’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과 KTB투자증권, 솔로몬금융그룹은 어떤 기업인가?

국내에 뮤추얼 펀드를 처음 도입한 회사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은 1997년 창업했다. 창업주인 박현주 회장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일고-고려대를 졸업한 뒤 1986년 당시 ‘고수’인 이승배 상무에게 증권 업무를 배우기 위해 동양증권에 입사한다. 박 회장은 얼마 뒤 동원증권으로 옮긴다. 여기에는 김정태 前 국민은행장(당시 동원증권 인사담당 이사)이 박 회장의 맏형과 광주일고 동기였다는 점도 일부 작용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대단한 능력자라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실적이 떨어지는 지점을 맡아 불과 2년 만에 전국 1위로 올려놓았다. 박 회장은 이때 동원증권에서 승승장구한다.
마흔이 채 되기 전인 1997년 박 회장은 그가 가르친 후배들을 모아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그가 처음 ‘대박’을 친 것이 바로 ‘다음 커뮤니케이션즈’로 24억 원을 투자해 1,000억 원을 벌었다.

박 회장은 이 돈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다. 당시 ‘자산운용(Asset Management)’ 분야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였다. 박 회장은 여기다 ‘뮤추얼 펀드’를 처음 도입한다. 소수의 사람들(투자신탁업법에서는 100명, 증권투자회사법에서는 50명 이하)이 투자한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이를 회사처럼 운용해 수익을 올리고 수익을 배당한다는 방식이다.

박 회장의 명성 덕인지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는 판매 2시간 30분 만에 500억 원이 모두 팔렸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은 미래에셋은 1999년 미래에셋투자증권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외국계 기관투자자인 CDIB로부터 294억 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자산도 1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2000년 ‘박현주 2호’가 라이코스에 투자했다 실패한 뒤 미래에셋은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현주 2호’는 ‘IT붐’이 꺼질 시기에 IT기업에 집중 투자해 수백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이런 실패에도 미래에셋의 성장세는 멈출 줄 몰랐다. 성장세를 보이던 해외국가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를 내놔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랩(Wrap Account) 상품도 내놨다. 금융상품 판매고는 2001년 3월 2조 원, 2002년 10월 4조 원을 돌파했다. 해외 지사도 속속 설립했다. 2004년 8월에는 SK자산운용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2007년에는 적립식 펀드를 내놔 ‘문턱’을 낮춘 덕에 큰 인기를 끌었다. 2007년 10월에는 해외운용자산 규모가 10조 원을 돌파했다.

 

벤처캐피탈 수익으로 증권·자산운용사 설립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래에셋이 만든 ‘인사이트 펀드’가 중국과 브릭스(BRIC's)국가에 집중 투자한 탓에 큰 손실을 보면서 ‘펀드런’이 일어나는가 싶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TOP 5’ 증권사로 건재하다. 현재 펀드운용자산이 70조 원을 넘어선다.

박 회장과는 달리 M&A 전문업체(부티크)에서 거대 증권사로 변신한 회사도 있다. 운용자산이 10조 원이 넘는 KTB투자증권이다. KTB투자증권을 설립한 권성문 회장은 경북 구미 출신이다. 권 회장은 원래 M&A부티크인 한국M&A 대표였다. 한국M&A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한세실업, 미래와 사람 등을 인수해 ‘턴어라운드(부실기업을 인수해 우량기업으로 만든 뒤 매각하는 기법)’하는 형태로 거액을 벌었다.
한국M&A는 이 돈으로 1999년 한국종합기술금융을 인수해 KTB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벤처캐피탈 활동을 시작한다. KTB네트워크가 당시 투자했던 기업으로는 옥션, 잡코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권 대표 개인 돈도 투자했다. 2001년 옥션을 미국의 이베이에 매각해 600여억 원의 차익을 남겼고, 2005년에는 잡코리아를 미국계 인터넷 취업업체 몬스터 닷컴에 매각해 6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KTB네트워크는 이런 벤처캐피탈 활동의 성공으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특히 KTB네트워크 측은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의 고속성장에 자극을 받았는지 스타 펀드매니저 장인환 씨를 KTB자산운용 대표로 영입하기도 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와 KTB네트워크는 벤처캐피탈과 펀드의 장점을 결합해 많은 고객을 끌어 모은다. KTB네트워크는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곧 KTB투자증권 그룹으로 변신한다.
채권추심업체에서 대형 금융그룹으로 변신한 회사도 있다. 솔로몬금융그룹이다. 솔로몬투자증권의 전신은 솔로몬 신용정보다. 솔로몬 신용정보의 임 석 회장은 1962년 전남 신안 출생이다. 퍼시픽웨스턴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 정책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김대중 前 대통령의 사조직인 ‘연청’ 중앙회 기획실장으로도 활동했던 임 회장은 같은 해 한맥기업이라는 옥외광고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1999년 한맥기업에서 번 돈과 국민, 조흥, 한미, 하나 은행 등으로부터 유치한 자금으로 솔로몬 신용정보라는 채권추심업체를 설립한다. 몇 년 뒤인 2002년 유명 IT벤처였던 골드뱅크가 인수했다 내놓은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게 된다. 임 회장은 신용금고 이름을 솔로몬상호저축은행으로 바꾸고 활동을 시작한다. 금감원 대변인 출신 김영재 씨(現 칸서스자산운용 회장)를 회장으로 영입한다. 2005년에는 부산 소재 한마음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해 규모를 키운다. 2007년 KGI증권을 인수해 솔로몬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꾼다. 현재는 자산 5조 원 규모, 계열사로 솔로몬신용정보, 솔로몬캐피탈, 솔로몬저축은행, 솔로몬투자증권 등을 거느린 금융 그룹을 이루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대부업체의 비상

앞서 설명한 회사들이 불과 10년 만에 재계에 우뚝 서게 된 것은 ‘시기를 잘 만나’ 큰 이익을 본 것으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양지’의 회사와는 달리 원래 ‘음지’에서 활동하던 업체들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양지’로 나와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경우도 있다. 바로 대부업체들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이자제한법을 준용해 연 25%가 넘는 고율의 이자를 받을 경우에는 처벌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함께 외국계 기업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이자제한법을 폐지, 한동안 연 수백%의 이자를 받는 사채업자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런 ‘폐해’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2002년 대부업법을 제정하게 된다.

대부업법이 제정되면서 대형 사채업자들이 ‘양지’로 나와 버젓이 TV광고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여당과 정부는 “연 수백%를 넘는 고리사채업자들을 법의 테두리 내로 끌어들여 관리감독을 하도록 하는 게 그나마 사채업자에 의한 서민 피해를 줄이는 길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허용한 최대 이자는 연 70%. 정부는 시행령으로 이를 연 66%로 약간 낮췄다. 수백% 하던 이자가 66%로 ‘낮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이자였다. 이런 모습을 본 일본계 소비자 금융 업체들은 한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대부업체들은 자국 내에서 채무자 명의로 몰래 생명보험에 가입해 채무자가 사망하면 보험금을 수령하거나 치매환자에게 불법대출을 해준 뒤 변제를 강요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가 하면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취재하던 언론인의 전화를 불법 도청하는 등의 행동이 발각돼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이후 갈 곳을 찾던 일본 소비자 금융 업체들은 국내 진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계 업체임을 숨기기 위해 자신들의 자금을 국내 은행 등에 예치한 뒤 이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들이 일본계라는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후 일본계 소비자 금융 업체들은 국내 대부업계를 장악했다.
현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A&P파이낸셜의 경우 일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J&K캐피탈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J&K캐피탈 오너는 재일교포 최 모 씨다. 그 외에도 웰컴크레디트, 산와머니, 원캐싱 등도 국내 대부업계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라는 리드코프라고 해서 일본계 대부업체보다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한다거나 대출이 쉬운 것도 아니다.
아무튼 이런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들어와 케이블 TV 광고 등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면서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대부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대부업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저축은행들도 끼어들었다. 2009년 말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약 1만8,000여 개, 대출 규모는 6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5월 한 언론은 국세청 자료를 인용해 “대부업체들의 전체 수입이 최근 5년간 무려 143%나 급증하고 개별 업체들의 평균 수입도 84%나 증가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언론이 인용한 국세청 자료는 전체 대부업체 중 5%에도 미치지 못하는 600여 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2009년 총 수입은 2조501억 원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65%(386개) 업체가 있는데 이들의 수입이 1조9,486억 원(전체의 9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업체들의 평균 수입도 2005년 18억6,600만 원에서 2009년 34억2,800만원으로 84% 증가했다고 한다.
그 사이 대부업체의 이자 상한선이 연 66%에서 49%로 줄어들었다. 2010년 7월에는 49%에서 44%로 상한선이 또 줄었다. 최근에는 국회를 중심으로 39%로 줄일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이자 상한선이 점점 낮아지고 2009년 이후 경기침체로 대부업 사용자 중 연체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대부업체들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대부중개업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최근 서민들은 휴대전화로 날아드는 ‘고객님께서는 당일 3,000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십니다’라는 문자메시지나 스팸전화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스팸전화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삼성캐피탈’ ‘한마음금융’ ‘LG캐피탈’ ‘미래종금’ 상담원이라고 주장하며 그럴싸한 이야기를 해댄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해당 대기업이나 외환위기 이후 모두 사라진 종금사를 사칭한 대부중개업체들이다. 여기에 속은 서민들은 대부업체의 최고 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받은 뒤 ‘수렁’에 빠지게 된다.

대부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중개업체들은 자신들이 영업한 사람이 대출받아 갚는 이자 중 일부를 수수하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이자율은 상한선에 가까워진다. 일부 대부중개업체들은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무차별 신용정보조회를 해 신용등급을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런 대부중개업체들의 불법 영업은 지금도 별 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로 급성장한 ‘신주류’, 누가 키웠나

한편 대부업체의 활황에 끼어 함께 공생하는 자들도 있다. 바로 저축은행이다. 최근 금융감독당국이 내놓은 저축은행 영업실태 자료를 보면 저축은행들이 대부업체에 대출해 준 자금이 7,00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저축은행은 대부업체들에 연 30%가 넘는 이자를 물려 돈을 빌려주고, 대부업체는 여기에다 10% 이상의 이자를 붙여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도 분명 불법과 탈루가 존재하겠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감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지금까지 언급한 대형 펀드와 벤처캐피탈, 저축은행, 대부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새로운 주류세력’이다. 이들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는 다양하다. 그 중 대부분은 ‘영남 패권이 사라지더니 호남 패권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KTB네트워크를 제외한 업체들 다수가 호남 출신 창업주와 창업공신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최근 드러난 부산저축은행 경영진들 사이의 연결고리처럼 지연과 학연으로 맺어진 경우도 많다. 이들이 성장하게 된 종자돈이 사채자금이나 조폭자금 혹은 정치 비자금이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명확히 밝혀진 사실이나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저축은행의 부실과 비리가 금융감독당국의 문제라는 게 속속 드러나면서 짧은 시간 동안 수 조 원 규모로 성장한 ‘신주류 금융기업’들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금 당장에는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지만 신흥재벌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생각하면 그 화살이 언제 이들을 향할지 알 수 없다.

전경웅 객원기자·뉴데일리 기자  enoch2051@hanmail.net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