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퓰리즘에 억눌리는 과학기술 R&D 투자
票퓰리즘에 억눌리는 과학기술 R&D 투자
  • 미래한국
  • 승인 2011.08.1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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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박성현 편집위원
 

모든 국민이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과학기술 경쟁력은 꾸준한 R&D 투자로부터 이루어지고, 특히 창의적 기초과학연구에 대한 투자는 정부의 몫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러나 최근 내년 R&D 예산을 짜고 있는 정부 부처나 지난 4월에 의욕적으로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활동을 보면 심히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     

 정부 R&D 예산을 살펴보면 2005년에 7.8조 원에서 2009년 12.3조 원, 2010년에 13.7조원, 2011년에 14.9조 원으로 지난 6년간 매년 12% 정도의 투자가 확대됐으며 이는 국가경쟁력 진흥을 위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매우 고무적인 정부의  일관된 노력이었다. 올해 국과위가 출범하면서 정부 R&D 예산에 대한 배분·조정 권한을 갖게 됐다.

각 부처가 국과위에 제출한 내년 정부 R&D 예산 요구액은 16조9,9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11% 증가한 것으로 지난 6년간의 추세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나, 이런 규모의 R&D 예산규모가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할지는 최근 정부와 국회의 동향으로 보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정부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票퓰리즘) 정책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반값 등록금’ 재원 확보를 위해 내년에 1조5,000억 원 가량을 마련하고자 하며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복지정책 예산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과학기술 R&D 투자 의지가 퇴색돼 가고 있다.

지난 8월 2일 국과위는 ‘2012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국과위는 각 부처에서 제출한 16조9,900억 원 중에서 국방·인문사회 R&D 예산을 제외한 11조3,700억 원을 심의해 이 중 7,200억 원을 삭감(6.3%)하고 최종 10조6,500억 원으로 배분·조정했다.

R&D 예산이 축소되고 있는 이유

이 예산은 국방.인문사회 R&D 예산을 제외한 올해의 9조9,000억 원에 비해 7.6%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증가분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2,100억 원), 한국형 발사체 사업(404억 원) 등의 대형 국책사업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느끼는 체감연구비 증가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국방·인문사회 R&D 예산도 상당 부분 삭감될 것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인문사회 R&D 연구비는 올해에 비해 내년에 20% 정도 삭감하는 안을 교과부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년간 매년 12% 정도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가 내년을 계기로 해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의 내년 R&D 예산은 표(票)퓰리즘 정책에 눌려서 동결되거나 미미하게 증액된 수준으로 결론지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 R&D 예산의 결정 과정을 보면 국과위는 조만간에 이번 예산 배분.조정안을 기획재정부(기재부)에 보내고, 기재부는 내년 예산안을 9월 말까지 편성해 10월 초 국회에 보내고, 국회는 이를 심의해 11월 경에 확정하게 된다. 기재부가 국과위 안을 얼마나 반영할지도 관심사항이다. 구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기재부 몫으로 예산을 일부 조정할 수 있다. 이 예산안이 국회에 가서도 또한 일부 조정될 수 있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결국 내년 정부 R&D 투자규모는 국과위 안보다는 일부 삭감돼 국회를 통과할 개연성이 크다.    

국과위의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개인기초연구 지원예산은 올해(7,500억 원)에 비해 500억 원만이 증액 (교과부 요청 1,300억 원 증액)된 8,000억 원으로 심의 통과됐다. 개인기초연구비가 지난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26.1%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 증가율은 6.7%로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는 MB정부가 출범하면서 2012년까지 약속한 개인기초연구 지원예산 1조 5,000억 원, 이공계 연구자 연구비 수혜율 35% (2010년 27.5%) 달성을 포기한 것이다. 또한 정부 R&D 연구비 중 기초연구의 비중을 2012년에 35%로 하겠다는 약속도 지키기 어렵게 됐다. 선진국의 기초연구비 비중은 대략 50%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기초연구비 비중은 2009년에 27.6%, 작년에 29.2%를 보였고 2012년에 30%를 넘길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한다. 개인기초연구비는 우리나라 3만4,000여 명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을 위한 풀뿌리 기초연구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과학기술 연구 인프라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번 국과위를 통과한 내년 기초연구지원사업 예산 중에서 특별히 아쉬운 것은 학문후속세대 사업의 증액이 없다는 것이다. 학문후속세대 사업은 박사학위를 한 신진연구자들이 국내와 국외에서 연수과정을 거치는 사업으로 매우 인기 있는 사업이다. 특히 올해에는 국외 학문후속세대 사업 선정자가 150명으로 제한돼 매우 높은 경쟁률을 보였는데, 이런 사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더욱 확대돼야 한다.  

무엇이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

정부 R&D 예산을 결정하는 권한의 배분.조정권은 국과위가, 편성권은 기재부가 가지고 있어 최종 국회를 통과할 때 국과위 안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관심사이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R&D 예산을 결정하는 권한이 국과위와 기재부로 나뉘어 있어 설명할 곳이 많아지고 절차가 복잡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국과위가 위상 정립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애초의 설립 취지를 살리려면 R&D 예산에 관해서는 기재부의 편성권까지도 국과위에 주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 R&D 투자는 계속 확대돼야 한다. 특히 기초연구의 투자는 가장 확실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막대한 국고를 쓰는 것은 절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최대의 복지정책은 일자리 창출이며, 일자리 창출은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으로 실현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초과학연구 관련 R&D 투자는 과학기술 강국 건설에 긴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며 결국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가장 확실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이다.

우리의 후손이 좀 더 풍요롭게 살고, 미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 정부는 과감히 R&D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과위에서 제출하는 정부 R&D 예산안이 기재부 혹은 국회에서 좀 더 증액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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