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약발 안듣는 오바마노믹스, 미국 경제는 어디로?
[분석] 약발 안듣는 오바마노믹스, 미국 경제는 어디로?
  • 미래한국
  • 승인 2011.10.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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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재정지출 ‘백약이 무효’

 

헐리웃 첩보영화에는 시한폭탄이 단골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항상 그렇듯이 파란선과 빨간선 가운데 하나를 잘라야 한다. 타이머는 빠르게 폭발시간에 다가가고 주인공은 갈등한다. 파란선이냐, 빨간선이냐... 영화의 재미는 주인공이 두 눈을 질끈 감고 한 가닥의 선을 잘라 멈췄던 시한폭탄이 재작동하는 순간이다. 

 지금 미국의 경제가 시한폭탄처럼 작동하고 있다. R로 상징되는 경기 퇴조를 막기 위해 오바마는 재정지출 확대냐 아니면 세금감면과 긴축재정이냐라는 선택에서 재정확대 카드를 썼다. 이제까지 1.6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쏟아부었다. 내리 꽂던 경기는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8일에는 추가로 4470억 달러의 고용창출 재정지출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뉴욕 다우지수는 오히려 하락했다. 美연준위가‘트위스터’라 불리는 장단기 채권 교체매매로 시장에 내년 6월 말까지 4000억 달러를 공급하기로 한 22일에도 시장엔 찬바람만 불었다. 오바마가 시한폭탄의 전선을 잘못 선택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자 이번에는 두 가닥의 전선을 모두 자르는 선택을 했다. 근로자의 소득세 감면과 재정지출을 모두 시행하는 그야말로‘트위스터’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적 재정지출 ‘백약이 무효’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지난 8일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 오바마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강한 어조와 패기로 연설을 했다. 지난 대선 때 보여주었던 ‘Yes We Can’의 강단 있는 태도는 분명히 계산된 것이었다. 블룸버그의 인기 있는 경제 에디터 코이(Coy)는‘경제란 다름 아닌 자신감이라는 것을 오바마가 보여주려 했다’고 평가했으나 그의 결론은‘약발은 다 됐다’였다. 코이는 그 이유로 오바마가 제시했던 일자리 창출 성적표가 목표에 미달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안 되는데 뭘 더 기대하라는 거냐’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의 실업률은 오바마 집권 초 8%에서 꾸준히 늘다가 4월 이후 9.1%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미국 노동부는 8월의 신규 고용증가가 지난 66년 만에 처음으로 제로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공표하기도 했다. 오바마 정권을 지지하는 흑인사회는 더 불만이 많다. 흑인층의 실업률이 20%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 대도시 지역의 경우에는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노믹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60%에 달한다. 당연히 2012년 오바마의 재선에는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은 케인즈 경제학에 있다. 현재의 불황은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보고 공공지출을 늘려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의 입장은 다르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지 않고는 민간투자와 소비를 촉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을 깎고 지출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서로의 시각이 다르니 4000억 달러라는 경기부양 자금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시각은 판이하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망상    

다시 경제평론가 코이의 표현을 빌리자면‘민주당은‘간에 기별도 안간다’라는 입장인 반면, 공화당은 ‘먹고 죽자는 거냐’라는 입장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은 치열하다. 지난 10일 로버트 배로(Barro)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 뉴스에서 기업들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도록‘장기적으로 재정균형을 이루려는 방향성이 중요하다’며 법인세를 폐지하고 대신 소비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단기 부양책은 효과가 없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제임스 갈브레이드(Galbraith)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세금감면은 효과가 없다’며‘공공섹터에 대한 투자와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이 논쟁은 각자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 배로 교수가 1980년대 불황을 극복한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을 주장한다면 갈브레이드 교수는 1930년대 불황기에 적용된 뉴딜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정책은 전혀 다르다. 레이거노믹스가 공급 중시 경제, 즉  기업의 세금감면과 규제개혁으로 기업의 투자와 이윤확대를 장려했다면 뉴딜정책은 수요관리, 즉 공공지출로 가계의 이전소득을 높이는 정책을 취했다.

문제는 재정지출 확대라는 케인즈 방식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시카고대 경제학박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 경제의 체질이 바뀌어 버린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죠. 가장 큰 변화는 대공황 이후 현재까지 선진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들이 재정적자를 무서워하지 않고 남발하면서 국가부채규모를 엄청나게 늘렸다는 점입니다. 불황 때 재정적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나면 빚이 늘어나는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죠. 호황 때 세금을 더 거둬 빚을 갚지 않고 복지 재정 등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느라 돈을 쓰면서 빚을 줄이지를 못하니 한번 쌓인 빚은 계속 유지가 되다가 불황이 오면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 빚이 더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입니다.”

  미국 재정부채로 경기침체를 예견한 밀턴 프리드만 교수

윤 교수의 분석을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팬티의 고무줄이 탄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황일 때 재정적자를 내고 호황일 때는 긴축을 해서 수요를 관리했어야 하는데 늘 재정확대만 해오다 보니 과도한 부채로 재정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배경에는 바로‘복지’와 같은 공공지출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케인즈 이론대로라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큰 정부는 계속 커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문제가 바로‘정부의 실패’다.

케인즈의 이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결정하는 공무원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전지전능함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 예로  지난 2월 미국 에너지부(DOE)로부터 5억4000만 달러를 지원받은 캘리포니아의 태양광 전기판 회사 솔린드라(Solyndra)는 파산했다. 이 회사는 오바마 정부가 대체에너지 개발사업과 녹색 일자리(green jobs) 창출 기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사업이었다. 장대홍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구태의연한 케인즈식 개입정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바마와 그의 지지자들이 경제불안을 진정시킨 공로는 인정받아야 하겠죠. 그러나 그들은 정부개입에 의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치명적 자만’에 빠졌는데 허약해진 경제가 생산력을 회복하도록 환경을 만들고 기다리는 대신 조급한 경기부양, 무모한 일자리 만들기, 그리고 큰 비용이 드는 규제강화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돼 버린 겁니다.”

 9·11 경제적으로 과잉 대응한 부시정부

장대홍 교수는 그러한 경제의 불확실성의 원인으로 지나친 통화팽창, 과잉규제, 국가채무와 조세부담의 증가를 지목한다. 결국 가계와 기업이 불안으로 몸을 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이 모든 현상이‘불행하게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경계해 온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처방은 어떻게 가능할까.

2001년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故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후버연구소와 인터뷰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에 대해 경고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9·11 테러 이전부터 미 정부가 매년 통화공급률을 10%대에 유지하는 비교적 높은 공급과잉을 보이고 있었던 데다가 테러로 인한 급격한 재정지출이 향후 美경제를 불황으로 이끌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프리드먼의 이러한 예상은 IMF의 경고로도 이어졌다.
2004년 IMF보고서는 눈덩이 처럼 늘어가고 있는 미국 재정적자는 궁극적으로 전세계 이자율의 인상을 초래해 투자와 경제성장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며 미 의회 예산국에서 전망했듯이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게 되면 세계 이자율은 10년만에 가장 높은 폭인 1.5% 또는 1% 가량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또한 IMF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단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의 거품과 2001년 9·11 테러 사태의 영향에 완충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 경기에 도움이 되고는 있지만 향후에는 경기가 회복되고 의료비 및 사회보장비 지출증대와 부시 행정부의 세금 감면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나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프리드먼 교수와 IMF의 경고는 불행하게도 오바마 정부에 들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현재 14조 달러에 이르고 있고 미 국내총생산(GDP)의 98%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케인즈적인 재정확대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대개 어느 나라든 재정적자가 GDP 대비 90%선에 이르면 불황으로 접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오바마 정부의 재정지출 내역이 대개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복지에 맞춰져 있어 긴축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연구해온 장대홍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경기부양정책의 실적 부진은 이미 예고돼 있었습니다. 투입된 자금의 2/3가 실업수당 연장지급, 세금감면, 학비 및 의료비 보조, 메디케이트 지원, 지방정부 보조금과 같은 구호 프로그램(relief program)에 집중됐죠. 이들은 주로 실업자, 저소득층과 중간층, 교원노조,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소득지원의 성격을 가진 정부지출입니다. 사회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기여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도 못하고 줄어드는 일자리를 막지도 못한다는 것이죠. 주로 오바마와 민주당의 정치적 이해에 맞물린 선심성 지출의 성격이 강합니다.”

 

기업과 가계에 정부 빚 해결 의지 보여야

장대홍 교수의 분석은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2010년 기준으로 GDP의 30%선에 달한다. 지난 달 한국을 방문한 그리스의 하치스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30%선은 결코 안전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치스 교수는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1980년 GDP 대비 28% 수준이었으나 불과 10년 만인 1990년 89%까지 올라갔다”며“2010년 초엔 140%에 도달했고 지금은 150%를 넘어섰다”고 했다. 복지논쟁에 빠져 있는 한국이 그리스의 길을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 미국경제는 결단의 시기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최근 미 공화당은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게 더 이상 과도한 재정지출을 하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미 미국의 이자율은‘제로’상태에 머물러 있고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국가 부채만을 늘릴 뿐 효과가 없다는 인식은 미국 경제계에 만연해 있다. 그런 인식이 존재하는 한 기업들은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으며 따라서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경제란 대다수가 믿는 쪽으로 움직인다는‘합리적 기대 가설’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데 그 합리적 기대를 미 정부는 (-)가 아닌 (+)로 돌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가운데 강력한 방법이 바로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이고 1980년대 엄청난 재정적자로 불황에 빠져 있던 미국을 구해낸 자유주의 경제 정책이다. 

“알 카에다가 공격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 경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장이 복구하도록 내버려 둬야 해요. 부시 정부는 복구를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을 쓰면 안 돼요. 대신 기업의 세금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앞으로 깊은 불황에 빠지게 될 겁니다.”

2001년 레이거노믹스의 주역 故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팔순 나이에 후버연구소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노학자의 표정은 어두웠으나 그의 예지는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가장 좋은 경제 처방은 바로 작은 정부이며 시장이라는 진리를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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