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시위 중인 지구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
[심층분석] 시위 중인 지구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
  • 미래한국
  • 승인 2011.10.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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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지구촌 곳곳에서 분노가 폭발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청년 실업과 생활고로 촉발된 이집트의 이른바 ‘아랍의 봄’ 시위는 중동지역을 넘어 5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상륙했다. 500만의 실업자와 45%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에 항의하는 수만명의 마드리드 시민들이 ‘인디그나도스(Indignados:분노의 운동)’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8월에는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처음 발생한 폭력시위가 영국 청년 실업 문제로까지 불거지면서 버밍엄과 브리스톨 리버풀 등 대도시로 번졌고 10여만명이 참가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시위로 번져갔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도 수만명의 시민들이 생활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제위기 뒤에 숨어 있는 정치문제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세계 어느 언론이나 전문가도 세계금융의 중심지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발생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대표적 경제전문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8월 29일 “미국에도 점점 확대되는 소득격차, 중산계층의 생활수준에 대한 위협, 정치부문과 기업부문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긴 하지만 가두 시위나 소란으로 번질 가능성은 없고 언론매체 또는 투표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두 달 뒤 보란 듯이 미국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발생했다.

이러한 글로벌 시위의 공통점은 각국의 경제난이다. 2008년 지구촌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들면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복지가 축소됨에 따른 항의표시라고 할 수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최신호에서 “그들(시위자들)은 아무것도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으며, 미국 공영 NPR방송은 “높은 청년실업률이 수년간 고착되면서 ‘잃어버린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각 나라들이 처한 현실과 그 시위의 양상을 좀 더 살펴보면 이러한 분노와 시위에 대한 해석이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정부의 실패를 감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간 해외자금 유입과 이민 유입으로 인한 노동력 공급 확대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1994~ 2007년중 경제는 연평균 3.5% 성장(잠재성장률 3% 추정)함으로써 세계 9위의 경제대국(2008년)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도이치방크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9월, 스페인의 1인당 GDP(2006년 2만9,638달러)가 이탈리아(2만9,517달러)를 제치고 G7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며 5~6년내 프랑스, 독일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장밋빛이던 스페인 경제가 무너진 이유 

 
그러나 2008년 스페인은 금융위기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스페인은 오랜 기간 동안 근로자의 임금을 노동생산성이 아닌 물가에 연동해 왔고 산별협상을 통해 생산성이 다른 직종에도 동일한 임금상승률을 적용해왔다. 심지어 2009년 경기침체기에도 과거 물가 상승분을 고려해 임금이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결과는 스페인의 산업 경쟁력의 와해였고 만성적인 무역적자였다. 전체 근로자의 25%에 달하는 정규직은 철밥통이어서 해고되지 않았으며 75%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일일 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 2중구조의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2007년 이전까지 양호하던 재정적자비율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그 증가율이 GDP대비 -3%비율에서 2010년에는 -14% 가까이 치솟았다. 싼 유로화를 빌려온 기업들은 정규직을 고용할 필요가 적은 주택건설에 골몰했고 은행들은 가계 담보대출에 나섰다.

유럽 최고의 80%가 넘는 주택보유율은 다름 아닌 엄청난 가계부채로 가능했다. 거품이 터지자 건설사들이 도산했고 비정규직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청년실업률은 17.9%(2006)에서 37.8%(2009)로 치솟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지만 정작 그들이 비난하는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과 은행이었다. 스페인의 시위대 ‘Democracia Real YA’는 엉뚱하게도 은행의 국유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0월 15일 약 20만명의 시위대가 로마를 비롯 각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로마 시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부상자만 135명에 이르고 민간 피해를 제외한 공공재산 피해도 100만 유로(한화 16억원)에 육박한다고 시 측은 주장한다.

로마 시위대 역시 경제적 불평등의 주범으로 유럽 중앙은행과 국제 투자펀드를 지목하고 비난했다. 스페인 시위대와 연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가장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이탈리아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주장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10월 18일 자유기업원(원장 김정호) 주최로 서울 롯데호텔 사파이어홀에서 열린 ‘이탈리아 재정위기, 그 원인과 교훈’ 세미나에서 알레산드로 드 니콜라 아담스미스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는 서구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당인 이탈리아 공산당이 있었고 가장 거대한 노동조합인 CGIL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사회개혁이 단행됐고 노동자들은 정부가 부르주아의 ‘비즈니스 위원회’로서 모든 이에게 가능한 최선의 공공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죠. 이때 이탈리아에는 ‘이상한’ 복지포퓰리즘의 씨앗이 심어졌고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제2의 프랑스 폭력혁명이 필요하다”

알렉슨드로 드 니콜라 이사장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공산당과의 타협과정에서 복지가 가난한 사람뿐 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대부분 사회주의 정당들이 국유화를 포기하는 대신 보건, 연금, 교육, 공공서비스 부문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원에 초점을 맞췄고 중도우파 정당들도 이런 정책들을 지지하고 종종 더 확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이들과 마찰이 벌어지고 미흡한 공공제도 등이 문제를 일으키며 또 한번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갖가지 이유로 연금혜택을 더 빨리, 더 많이 누리려고 하고 있다. 즉 기득권층은 그동안 정부가 해왔던 대로 복지혜택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피지배층은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추가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본질이 월가나 국제자본이 아니라 그들 내부의 문제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경우 불합리한 노동시장으로 인한 산업경쟁력의 파탄과 높은 가계부채, 그리고 이탈리아의 경우 사회 계층들간에 국가복지의 시혜를 둘러싼 이기주의의 만연이 사회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월가를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위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알고 있는 이들 시위들의 정체가 모두 한눈에 조망될 수 있다.

“평화적 방법으로는 불평등을 초래하는 1%의 월가 부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 우리에게는 프랑스혁명과 같은 폭력이 필요하다.”

지난 주 ‘월가를 점령하라’의 LA지부 대변인은 그렇게 외쳤다. 그의 주장은 유튜브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됐다.

또 다른 시위자는 중국 인민해방군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최근 회사에서 해고됐다는 그 청년은 1%의 부자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시위대들이 ‘모택동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월가 시위대에게는 역사의식이나 사회적 이념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들에게는 금융자본만이 그들의 적일 뿐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1%의 부자들과 정치권과의 결탁과 관련해서는 의회나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비난이 전무하다.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이 시위를 처음 계획하고 동원했던 주체가 다름 아닌 ‘반기업’ ‘반소비’ 활동을 주장하는 애드버스터(Adbuster)라는 상업좌파 잡지였다는 사실이다. 2011년 8월경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애드버스터라는 잡지는 ‘월가를 점령하자’라는 제안을 잡지에 실었고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뿌렸다. 이 잡지는 기업들의 광고를 ‘정신적 공해’라며 ‘TV보지 않는 주간’이나 ‘쇼핑하지 않는 날’과 같은 반기업, 반소비운동을 모토로 하고 있는 잡지였다.
 

'월가를 점령하자’라는 캠페인도 사실은 잡지의 마케팅 차원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잡지가 기업의 광고를 적대시하면서도 자신들의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블랙슈즈’라는 신발을 만들어 팔면서 독자들에게 그 신발을 사서 신도록 광고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상업좌파(Comercial Left)의 수법이라는 비판이 인터넷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상업좌파 잡지 ‘애드버스터’가 촉발한 월가 시위 

월가 주코티 공원에 처음 모인 수십명의 사람들은 바로 이 애드버스터의 독자들이었다. 이들의 소식이 뉴스를 타자 이메일을 받았던 독자들이 더 모여들었고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이해한다’라는 표현으로 시위는 탄력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월가 점령 시위대가 보여주는 그들의 지적 수준은 ‘UFO여 나를 데려가다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가 ‘프랑스 혁명’이나 ‘마오이즘’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이유는 이 애드버스터라는 잡지가 반자본주의 이념을 상품화해서 팔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시위를 둘러싸고 정작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은 유럽대로 정치적 계산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민주당 의회선거위원회(CCC)가 10일 트위터와 이메일을 통해 시위대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점은 시위대를 차기 대선전에서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보여준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깊어간다는 점에서 민주당으로서는 ‘빈 집에 소 들어 온’ 횡재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반면에 공화당은 당황감과 함께 시위대에 대한 무시를 전략으로 삼고 있다.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주 “시위대가 폭도로 변질되면서 미국인들 사이 대결의 함정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시위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 밝히자 공화당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시위대가 ‘계급투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허먼 케인은 “시위대는 반자본주의와 반시장주의자들”이라고 공격했다.

월가 시위대를 둘러싼 논쟁은 유럽에서도 진행 중이다.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내정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젊은이들은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했고,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은행시스템이 잘못 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그리스에 구제 금융을 꺼리는 은행들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이야 어떻든 미국에서 벌어지는 월가 시위는 유럽 각국의 재정문제로 인한 정부의 실패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는 미국의 1극체제에 도전하다 실패로 접어든 유러존 국가, 특히 PIIG(포르투갈.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라고 불리는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알리바이도 작용하고 있다.

美 공화당 민주당, 유럽의 상이한 반응…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의 여론이다. 미 <타임>지가 지난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월가 시위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율은 54%에 달했다. 부정적인 답변과 관심 없다는 답변은 각각 23%였다. 다만 시위대의 주장에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월가와 로비스트들이 워싱턴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에는 86%가 동의했으며 ‘미국의 빈부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라는 주장에는 79%가 동의했다.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에도 68%가 지지를 보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미국 정치에 끼칠 영향력에 대해서는 30%만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비관적이거나 냉소적인 답변은 67%였다.

이러한 미국인들의 여론은 월가 시위대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민주주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그들의 행동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각과 표현은 자유지만 행동과 실천은 법안에 있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사고는 유럽의 그것과 사뭇 달라 보인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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