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우울과 허탈의 <도가니>
분노와 우울과 허탈의 <도가니>
  • 미래한국
  • 승인 2011.11.03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미의 문화공감

글림/권예림
광주인화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도가니>가 관객 4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 <도가니>와 소설 <도가니>, MBC PD수첩을 연이어 보는 동안 분노와 우울, 허탈이 마구 교차했다. 세상에 발표된 시점으로 본다면 PD수첩을 먼저 보고 소설, 영화 순서로 봐야 하는데 거꾸로 본 셈이다. 영화감독이 “소설의 50% 밖에 표현하지 못했고 소설은 실제 사건을 50%밖에 못 그렸다”고 했는데 충격은 영화, 소설, PD수첩 순이었다. 사회에 미친 파장도 같은 순서이다.

PD수첩은 실제 피해를 당한 장애학생들과 과거에 피해를 당한 졸업생들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화면에 등장시켰고, 소설은 영화보다 더 적나라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사건의 25%도 담지 않았다는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극적으로 구성한 덕분이다.

중첩된 범죄에 처벌이 경미해 관객들 폭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한 현실을 대변하는 안개, 절박함과 처절함을 담은 청각장애인의 괴성, 그럼에도 순진무구한 소년소녀들의 눈동자가 ‘날 것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뿌리 깊은 부패 사슬과 교육자의 탈을 쓴 파렴치한 성폭력범들의 실상을 보면서 관객들은 총체적 피로감과 절망감을 안고 극장을 나섰고, 그것이 분노로 폭발했다.

소설 <도가니>에서 기간제 교사 강인호가 성폭력 실상을 듣고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경악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장애를 갖고 있는 어린 학생들, 그 중에서도 부모조차 장애가 있어 방학 때도 집에 갈 수 없는 불우한 학생을 ‘여러 교사가 지속적으로’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만 해도 문제가 될 범죄가 중첩돼 있는 데다 처벌이 경미했다는 것에서 드디어 관객이 폭발했고, 그 분노가 뾰족한 송곳이 돼 성범죄에 둔감한 우리 사회를 찌르면서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도가니>에 등장하는 범죄를 짚어보면 인화학교 교장 이하 교사들의 성폭력과 폭행, 학생들에게 저녁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등의 공금착복, 제자들이 성폭행과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 대한 동료교사들의 묵인 등이 학교 내에서 이루어졌다. 학생들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외부에 알렸지만 묵살됐고, 시민단체가 나섰을 때도 교육청과 시청은 책임전가에 급급했다. 거기에 부패한 경찰과 전관예우에 의한 부당한 판결이라는, 우리 사회 총체적 부실이 영화 <도가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과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사들의 성폭력은 훨씬 강도가 심했고, 학생들 간의 성폭행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학교에 매년 국고에서 수십억원이 지원됐다.
한편에서는 사실을 왜곡해 선동하는 측면이 있고, 합의와 피해보상이 끝났는데 뒤늦게 문제 삼는 건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다. 경찰을 부도덕하게 묘사한 데 대해 당시 담당 경찰이 유감을 표하자 공지영 작가가 소설 속의 경찰은 가공인물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합의와 피해보상이 끝난 사건’ 운운하는 일부의 논리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장애아동을 성폭행한 후 힘없는 부모를 돈으로 매수한 일을 합의라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간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치는 성폭행범에 대해서는 합의제도나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성폭력 중에서도 아동 성폭력의 망령이 떠다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 성폭력을 그린 <도가니>는 인화학교 폐쇄, 도가니법 제정 등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6년 전 잠깐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듯하다가 묻혀버린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공지영 작가, 그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제안했다는 배우 공유 씨,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 영화를 보고 공분하여 대책마련을 호소한 관객이 함께 이룬 성과이다.

성폭력범보다 더 나쁘게 묘사된 기독교인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불편한 점을 짚는다면 시종일관 기독교인들을 ‘진실에 눈감고 정의에 등 돌리는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사람들’로 그린 일이다. 화면에서 주인공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십자가이고, 추악한 범죄자인 설립자의 아들 형제는 장로이다. 형제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들은 법원 뜰과 법정에서 기도하고 판사가 지역사회에 헌신한 공로를 참작해 경미한 판결을 내릴 때 환호한다. 그 장면은 묘하게도 영화가 고발하는 성범죄에 박수를 치는 형국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어쩌면 성폭력범들보다 더 나쁘게 그려진 사람이 기독교인들이다. PD수첩과 소설은 교회가 피해학생들을 돕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교인들을 ‘우리 장로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뇌아’로 희화화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진보진영’ ‘보수꼴통’ 등의 단어로 아예 대결 구도를 확고히 하면서 인화학교 비리와 관련해 사학법을 비중 있게 다룬다. 지역사회 엄호 아래 벌어진 인화학교의 극단적 범죄를 사학법 개정과 연관 짓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극소수의 악랄한 예를 선량한 다수에 적용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 <도가니>는 ‘성폭력’이라는 추악한 범죄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여러 면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이 영화가 각광받는 것은 재판이 끝난 지 6년이 지난 지금 학교 폐쇄 등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어기고도, 세금을 내지 않고도, 부정부패를 하고도 활개 치며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람들은 <도가니>로 변화시키며 울분을 달래고 있다. 

이근미 본지 편집위원·소설가 www.rootlee.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