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복지정책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11.04 1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 최 광 편집위원

최 광 편집위원
한국외대 경제학부교수
前 보건복지부 장관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앞날은 그 구성원의 의식, 구성원 상호 간의 경기규칙, 그리고 제도 등 세 가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문제를 야기하는 방향으로 점차 작동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은 실종됐고, 결과의 평등이 정의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인류를 빈곤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만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문제가 많은 체제로 각인되고 있다.

정책 대립과 이념 대립

복지정책 관련 논쟁의 핵심은 복지정책의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의 선택이다. 최근 제기된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그리고 유상이냐 무상이냐 하는 문제는 복지의 개념, 목적, 수단을 두고 사회 구성원 간에 전개되는 논란으로 이 논란의 밑바탕에는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복지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바탕이 되는 이념 논쟁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사실 국가정책 특히 복지정책에 관한 논쟁의 대부분은 가치판단(value judgement) 즉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다. 주어진 어떤 문제에 대한 공청회에서 두 사람의 전문가가 완전히 다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많은 경우 이들의 견해 차이는 그들이 알고 있는 정책의 원칙과 이론에 대해 합일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비대한 정부는 곧 개인 자유의 침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사상과, 국가가 소득재분배를 통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주의 사상 간의 이념 대립이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좌파들이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면서도“복지 논쟁에서 이념 수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최근 무상복지의 정치 쟁점화는 복지제도 자체에 관한 논쟁이기보다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라는 두 좌파 정권의 집권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자유주의 성향과 반시장경제 정서라는‘좌파적 가치의 덫’,  그리고 우리 사회의 좌파적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다.

국가를 법 위에 두는 우(愚)를 범하면서 우리나라의 진보 좌파 정치가나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국리민복만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각인시키는 한편 복지의 확대를 반대하는 보수 우파논객들을 피도 눈물도 없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 비판해 왔다.

사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우파 논객들은“인간은 아는 것이 얼마 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도 아주 빈약하다”는 지적 도덕적 겸손을 덕목으로 삼는데 비해 진보 좌파들은 인간이 이상적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 낼 만큼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지적 자만과 지적 허세에 빠져 있다.

무상복지의 근원과 문제점

이념과 정책은 같은 맥락이다. 이념을 떠나 정책이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을 달리 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 각기의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불완전하나 역사에서 답이 구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좌파(진보)의 공상적 사회주의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 모두 실패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세 부담 증대를 통해 복지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는 복지정책의 추구 이전에 사회제도와 기본질서의 확립을 통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서 보람을 찾고 장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가지며 자신이 열심히 일해 얻는 경제적 과실을 향유하며 만족하고 보람을 갖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해 크고 작은 목적을 위해 그 재원을 사용한다. 정부 지출의 목적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분배를 개선하고, 경기를 조절하고 낮은 출산에 대처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분명히 바람직하고 인도주의적이고 고상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것일까? 왜 복지 지출은 계속 확대되고 복지 사업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가? 거의 모든 복지 정책들이 무엇 때문에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가? 먼저, 사람들은‘내 돈’을 쓰는 경우‘최대한 절약할 유인’을 가지지만‘남의 돈’을 쓰는 경우에는 그러한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마련된 돈을 가지고‘나를 위해’쓰는 경우 돈을‘가장 가치 있게 쓰려는(value for money, VFM) 유인’을 가지지만‘남을 위해’쓰는 경우에는 그러한 유인을 가지지 않는다. 복지관련 정부 예산 지출 그 핵심 내용은 타인의 돈을 나를 위해 쓰거나 또 다른 남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여기서 타인의 돈은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세금을 쓰는 일 즉 예산과정에 정책담당 관료들과 정치가가 개입한다.

국회의원들은 타인의 돈을 자신들을 위해 또는 다른 타인의 지출을 위해 투표한다. 정책을 관리하는 관료들도 그 어떤 타인의 돈을 또 다른 타인을 위해 지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복지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지출이 낭비되고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복지비를 충당하기 위해 조세를 부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민들은 공공재와 공공서비스(국방과 치안) 공급을 위해 조세를 부담하거나, 저소득층이나 빈곤층들에게 소득재분배 목적으로 제공되는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조세를 부담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시민들은 다른 사람의 복지가 아니라“자신의 복지비용을 자신이 충당하기 위해 조세를 부담하는”다소 기이한 상황에 직면에 있다. 이를“자기복지비 자기조달(tax-welfare churning)” 또는“조세-복지 중첩(tax-welfare churning)”현상이라고 부른다.

자기복지비의 자기조달 현상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되고 있다. 정부가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그 돈으로 복지혜택(현금이나 현물서비스)의 형태로 되돌려 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아니면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처분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가? 자기복지비 자기조달 현상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자립심과 독립심을 파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없애려면 시민들이 애써서 벌어들인 소득을 자신이 처분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개인’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이 선포되고 캐나다에서 ‘정의로운 사회(Just Society)’의 건설이 표방됐을 때 정책 담당자들은 국민들이 세금 납부를 통해 빈곤계층에게 소득을 조금씩만 이전해 주면 사회의 빈곤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의도 하에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부의 예산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복지관련 예산, 특히 이전지출적 예산이 모든 선진국에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에서도 빈곤이 사라졌다는 통계는 찾을 수 없다.

빈곤의 퇴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국가나 제3자의 도움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경제이론에서는 물론이고 수많은 나라의 현실정책의 경험에서 잘 증명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다 보면 모든 일이 정부가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정부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살피고 이를 제대로 인식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 민간 또는 시장이 잘 할 수 있는 일들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복지제도와 재분배정책을 도입할 정도로 정부가 커지기 전에 빠른 성장의 덕택으로 이미 선진국이 됐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 큰 정부를 바탕으로 재분배 복지정책을 국가정책의 최우선으로 설정한 나라치고 선진국이 된 나라가 없다. 일각에서는 오늘날 선진국들이 재정규모가 크고 복지제도가 잘 돼 있기에 우리도 선진국을 지향하는 마당에 정부 규모를 키워 각종 재분배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적 구호로서 무척 매력적이고 대중 영합적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큰 정부로 야기되는 국가 자원의 엄청난 낭비 가능성과 낭비가 초래하는 피해를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는 집단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

흔히 국가의 정책이 농민을 도와주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육성해야 하고, 여성 대학생 근로자를 지원 보호해야 한다고들 한다. 정부정책에서의 배려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잡을 경우 두 가지 결함이 나타난다.

첫째로 농민 여성 중산층 근로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에 남는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지원을 받아야 된다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

둘째로 농민 근로자 중소기업인 중에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 수준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집단을 대상으로 혜택을 부여하면 전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혜하기에 세금이 낭비 된다. 급식이든 등록금이든 저소득층 학생에게나 무상이나 반값이 필요한 것이지 재벌 회장의 손자인 학생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정책과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기업이 발흥하고 기업투자가 활성화되면 경기가 회복되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복지확대는 저절로 가능해진다. 최근 10여 년간의 정책기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의 투자를 억제 저해하면서 경기 일자리 복지를 앞세우는 데 있다.투자의 활성화는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우리나라에로 유인해야 가능하다. 외국 자본과 기술의 국내 유입은 나라 전체가 경제 특구화되면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위험과 불확실 요인 제거하면서 기업투자 애로 요인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인도 중국 등 최근 잘 나가고 있는 나라의 경우도 그 배경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외국 기업과 기술의 유치에 성공한 때문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해 돌아다니고 있는 600조 원 규모의 유휴자금을 기업 투자에로 유도해야 한다.

초당적 장기재정복지위원회(가칭)를 설치하자

우리의 국가채무 수준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경쟁국과 비교해도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사실이 지적돼야 한다.

첫째, 우리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하게 높다는 점이다.
둘째, 현재의 복지제도와 재정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국가채무 수준이 크게 확대될 내용이 들어 있으므로 각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재정건전성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심각한 낮은 출산과 급격한 고령화 그리고 남북통일과 관련해 국민 부담이 크게 증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세 가지 요인이‘정책의 장’에서 논의될 때는 심각성이 부각되나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정치의 장’에 오면 당리당략, 무책임, 인기영합주의로 점철돼 문제가 개선되기는 커녕 개악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그리고 최근의 무상(無償) 무료(無料) 복지로 인해 야기될‘한국병’을 예방하기 위해 국회 내에‘장기재정복지위원회’(가칭)를 초당적으로 설치할 것을 건의한다. 이 위원회는 국회의원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고 국회예산정책처의 사무적 지원을 받는다. 이 위원회는 재정의 장기적 건전성과 관련한 제도와 정책을 연구해 국민과 국회에 제시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할 것이다. (미래한국)

※본 글은 한국재정학회(10/14) 발표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